주간동아 484

2005.05.10

추락하는 GM 날개가 없다

1분기 11억 달러 적자 ‘10년 내 최악’ … 판매 부진·직원 건보료 부담 급증 ‘재기 불능’ 시각 많아

  •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입력2005-05-03 1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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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잘 안 팔리고 직원 의료비 분담액은 지나치게 많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빈사 상태에 빠진 이유를 이렇게 자가 진단하고 있다.

    요즘 GM의 성적표는 처절하기만 하다. GM이 4월19일 내놓은 올해 1분기(1~3월) 기업 실적은 11억 달러의 적자였다. 분기 실적으로는 지난 10년간 최악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2억 달러 흑자였다. 매출액은 458억 달러로 1년 전보다 4.3% 하락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GM은 연초에 내놓았던 연간 실적 전망치를 거둬들였다. 전망이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GM의 주가는 12년 내 최저치를 맴돌고 있다.

    노조 기세에 밀려 복지 축소도 어려운 일

    릭 왜고너(52)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실적부진의 가장 큰 원인을 직원 건강보험료 부담에서 찾는다. 왜고너 회장은 ‘의료비 위기’라는 표현까지 썼다. GM의 직원 의료비 부담액은 2004년엔 52억 달러였고, 올해는 56억 달러가 될 전망이다. GM은 직원과 퇴직자 및 그 가족들의 의료비를 모두 부담하고 있다. 전·현 직원과 가족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자기 분담액도 내지 않는다.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 3사의 직원 복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돈을 잘 버는 데다 노조가 강해 이런 복지제도가 생겼다. 심지어 1990년대 이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레이오프(lay off·일시 해고) 근로자들에게도 5년간 본봉의 95%를 지급하게 했고, 퇴직 후에도 의료 혜택을 받게 했다.

    왜고너 회장은 의료 혜택을 줄이기 위해 UAW 측과 협상을 하고 있다. 노조 측은 아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만 “급격한 복지 축소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적당히 줄여줄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의료비 부담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월 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의 시각이다. 기본적으로 GM이 차를 잘 팔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북아메리카 시장에서 GM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1분기 북아메리카 시장에서의 적자는 15억 달러였다. 시장점유율은 25.4%.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때 50%가 넘었고 10년 전에도 33%였던 데 비하면 엄청난 추락이다. 게다가 유럽 시장에서도 적자다. 아시아에선 그동안 뜨거웠던 중국 시장이 냉각돼가고 있다.

    GM의 브랜드 중 하나인 뷰익은 타이거 우즈를 광고모델로 내세웠지만, 새 제품 라크로스 세단은 잘 팔리지 않고 있다. 뷰익의 고객 평균연령이 무려 63세. 뷰익에 친근감을 느끼는 고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안 팔리는 차를 더 팔기 위해 GM이 낸 꾀는 값을 깎아주겠다는 것이었다. 고객에게 리베이트나 무이자 할부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고객들은 차를 사러 몰려들지 않았다. 더 기다리면 더 깎아줄 것이란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1908년 설립된 GM은 1950년대 자동차업계의 카르텔이 작동하던 시대에는 업계의 확고부동한 선두였다. 당시 찰스 윌슨 회장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며,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 좋은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이런 시각이 GM의 몸을 무디게 했다고 월 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지적한다. 1960년대 외국산 차들이 미국에 밀려들고, 외국 자동차업체의 공장이 미국에 들어서기 시작할 때도 GM에 위기감은 없었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그리고 현대 등의 한국 업체가 한때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로 군림하던 GM을 쭈그려놓은 것이다.

    GM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으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GM 제품은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 소비자에게 외면당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누리는 도요타의 렉서스를 비롯한 외국 업체들이 내놓는 SUV는 연비가 높을 뿐더러 디자인에서도 앞서간다는 평가다. GM 측은 대형 SUV를 대체할 새 제품을 연말까지 내놓고 전지로 움직이는 ‘미래의 자동차’로 승부하겠다면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으로 GM을 회생시킬 것이라는 왜고너 회장의 메시지는 월 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많은 브랜드도 성장 발목 잡아

    분석가들은 GM이 지나치게 많은 브랜드를 운영한다고 지적한다. 뷰익, 폰티악, 새턴, 사브, 캐딜락, 시보레, GMC, 허머 등이 모두 GM의 브랜드다. 메릴린치의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 존 케이사는 “현재의 매출 수준으로는 이 많은 브랜드를 모두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모건 스탠리의 스테판 거스키 애널리스트도 “시장점유율이 줄어드는 상황인데 이 많은 브랜드를 먹여살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러 개의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은 연구개발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오히려 브랜드별 특성이 약해지고 투자비를 각각의 개발 및 마케팅 비용으로 쪼개 쓰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미국 시장에서 고객수가 GM의 절반인 도요타의 경우, 도요타와 렉서스라는 2개의 브랜드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야 사이언을 추가했을 뿐이다.

    업계에선 GM이 올스모빌 브랜드를 폐기한 데 이어, 뷰익이나 폰티악 중 하나를 또 없앨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2000년 올스모빌을 폐기하는 데 공식적으로 9억 달러, 소송을 제기한 일부 딜러들에게 별도로 5억 달러 이상을 지급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브랜드 폐기를 검토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월 스트리트의 기업 신용등급 평가회사들은 GM을 쓰레기 등급인 정크본드 바로 위 등급으로 평가한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경우 BBB- 등급을 주었다. 시장에선 이미 정크본드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GM 채권의 유통수익률은 미국 재무부 채권에 5%포인트를 더한 수준이다. 같은 등급의 스프린트 같은 회사가 재무부 채권에 2%포인트를 더한 수준인 것을 보면 사실상 정크본드 취급을 받는 셈이다.

    GM 태풍은 이제 시작이다. 월 스트리트에선 ‘GM 쓰나미’라고 부른다. 두 번째 파고가 더 무섭다고 걱정들이다. 그것은 GM 채권이 정식으로 정크본드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막대한 GM의 채권이 쓰레기가 된다면 이 채권에 투자한 연금펀드들, 각종 단체들, 채권투자 전문 뮤추얼펀드 등도 함께 쓰레기가 될 것이란 우려다.

    존 디바인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파산신청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파산신청 수법을 쓰는 기업도 있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부도난 항공사의 비행기는 타지만 부도난 자동차회사의 차는 누구도 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 스트리트에서도 GM의 현금 보유를 감안하면 부도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GM이 불행에서 벗어날 희망은 거의 없다고 본다. 미국에서 자동차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9%.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란 말이 요즘은 “GM에 나쁜 것은 미국에도 나쁘다”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한 칼럼니스트는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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