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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설 민심

“휴~ 이래저래 욕먹을 각오 해야죠”

경기침체 장기화 흉흉한 민심 ‘정치 혐오’“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국회의원들 귀향 인사 걱정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휴~ 이래저래 욕먹을 각오 해야죠”

“휴~ 이래저래  욕먹을 각오 해야죠”

원주시 호저면을 방문해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는 이계진 의원.

미군 부대가 떠나는 동두천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양주의 중소기업들도 매기(買氣)가 없어 울상이다. 그만 싸우고 경제를 살리라는 지역민들의 성화 때문에 지역구를 돌아다니기 힘들었다.”

2004년 10월 초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경기 동두천·양주)이 얘기한 추석 민심 기행이다. 그의 발언은 언론에 소개되며 작은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인 9월24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았던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가 한 상인에게서 “오라는 손님은 오지 않고…. 소금을 확 뿌리고 싶다”는 ‘언어 테러’를 당했다.

당시 ‘IMF 때보다 더하다’는 추석 민심은 하늘을 찔렀고, 그런 유권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심적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수도권 K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민심에 부담을 느껴 추석 연휴 동안 의정활동을 명분으로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05년 1월 말, 정치인들은 또다시 설 민심 앞에 섰다. 평소 지역구를 내 집 드나들듯 해온 그들이지만 지금은 지역구민을 만나는 게 왠지 두렵다고 한다. 정 의원의 설명이다.

“(추석 때보다) 더 나빠졌다. (동두천) 민심은 흉흉하고, 상권은 죽은 지 오래됐고….”



정 의원은 17대 국회 출범 초부터 경기북부 개발 문제와 관련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 무력감에 빠진 정 의원은 “주민들이 욕을 하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며 체념했다. “그렇게 해서 지역민들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다면 얼마든지 욕을 먹겠다는 생각”이다. 한 측근은 “지역 분위기가 오죽했으면…”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덧붙였다.

충청권 출신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K의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지난해 추석 연휴를 끝낸 뒤 “송편보다 욕을 훨씬 많이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도 없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지역 민심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유지는 “우리당이 행정수도를 선거에 악용했다”며 K의원을 다그친 것이 지난해 말.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된 배경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며 달랬지만, “정부 여당은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도 살펴보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했느냐”는 힐난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K의원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다.

“지역민들은 행정수도 이전 실패에 따른 좌절감이 엄청나다. 선거 때 유권자들을 이용했다며, 만나면 노골적으로 화를 낸다. 그들이 모인 자리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어떻게 민심을 잡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휴~ 이래저래  욕먹을 각오 해야죠”

범천동 중앙시장을 방문,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는 이성권 의원.

“사람들 만나기 두려워” … 연휴 기간 잠행 ‘배짱파’도

영남권 중진 P의원은 명절 연휴 기간에 외유를 가거나 다른 약속을 명분으로 지역을 잘 찾지 않는다. 이번 설도 당일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만 하고 지역을 떠날 예정이다. 아예 만나지 않으면 한번 욕을 먹고 말 것이라는 ‘배짱 스타일’이다. P의원 측근의 설명이다.

“가급적 설 동선(動線)을 줄여 유권자들과의 대면을 피하는 것이 지역구 관리에 유리하다. 피할 수 없는 자리에 가더라도 다음 약속을 핑계로 자리를 빨리 뜨고, 설사 대화를 하더라도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명절 연휴를 ‘해피하게’ 보내는 노하우다.”

이런 잠행족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 정치인들이 이처럼 유권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데에는 과거와 다른 정치자금 문화가 한몫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돈줄은 말랐지만, ‘인사’를 해야 할 곳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수입은 한정됐고, 쓸 곳은 많다보니 자연스레 유권자들과의 직접 대면이 주는 부담은 배가된다. P의원의 측근은 “과거 같으면 후원받은 선물 꾸러미라도 들고 갈 수 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불가능해 오로지 몸 하나로 지역민들의 모든 불만을 삭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몸이 얼마나 고달프겠느냐”고 말했다.

“장사가 안 돼 점포세를 내고 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학비를 마련할 수도 없다. 부모로서 할 도리를 못해 괴롭다.”

한나라당 이성권 의원(부산진을)은 지난해 추석 때 지역의 한 상인에게서 들은 이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을 돌며 서민들과 직접 부닥치며 그들의 애환을 나누려고 한다. 그러나 이 의원은 팍팍해지는 서민들의 생활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팽배하지만, 그들의 심리를 안정시킬 현실적 수단은 없다. 이 의원은 이런 서민들 앞에서 무력감을 곱씹는다.

“참여정부의 정책적 기조가 갖는 한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전반적 구조와 세계경제 흐름이 서민경제를 피폐화하는 요인인데, 의원 한 사람이 이를 무슨 수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조금만 참자” 희망 살리기로 위로 예정

지난해의 경우 그래도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 없는 것이 서민들의 현실. 경북 구미가 지역구인 김성조 의원은 갈수록 희망을 잃어가는 지역 주민들의 피폐한 삶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는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제로(0)’에 가까운 서민들의 희망수치를 되살리는 작업에 열중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나라가 무너지는데 이념 색깔 공방만 하고 있느냐”는 지역 기업인의 따끔한 충고를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는 “민심은 개혁 구호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강원 원주)도 같은 코드로 이번 설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청와대와 여당이 민생과 실용코드로 돌아섰으니 조만간 아랫목과 윗목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 것이다. 조금만 참자”는 격려를 통해 얼어붙은 서민을 위로할 예정이다. 그는 IMF와 비교하며 좌절하는 지역 상인들의 심리적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감이 상당하다.

지난해 추석 때 세 번씩이나 지역구를 돌며 참여정부의 정책과 현안을 지역구민들에게 설명했던 채수찬 의원(전북 전주덕진)도 이번 설 연휴 동안 ‘희망 쌓기’에 시간을 더 투자할 계획이다. “총론이 아니라 각론,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는 자성론을 바탕에 깔았다.

지난해 추석 때 “재래시장이 다 죽는다”는 지역민들의 요구에 직면했던 우리당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갑)도 설을 앞두고 또다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민원 때문이다. 그의 지역은 유난히 재래시장이 많아 7개의 상설재래시장이 장사를 한다. 시장 상인들 가운데 일부는 “시장이 하도 낡아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가게로 스며들고, 냄새도 지독하다”며 한 의원에게 매달렸다. 한 의원은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재래시장특별법이 ‘손님 만나기 힘들다”는 시장 상인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구에 위치한 7개 재래시장의 아랫목에까지 온기가 전달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부담이 적지 않다. 이번 설 연휴를 통해 한 의원은 상인들에게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계획이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민심이 정치와 정부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62~63)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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