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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남북정상회담보다 6자회담에 무게 … 경협·인도적 지원은 계속 ‘절제된 냉대’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노무현 대통령을 관심 있게 지켜봐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노 대통령은 왼쪽 깜빡이를 그대로 켜둔 채 우회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왼쪽 깜빡이만 보고 여전히 좌회전을 하려고 한다.”

요즘 노 대통령의 ‘우회전’이 화제다. 이 문제는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과제 중 하나인 남북회담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칠레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2004년 11월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기착한 노 대통령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왼쪽 깜빡이 켜둔 채 우회전”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 방침을 밝히는 자리인 올 1월13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은 낮다”고 단언했다. 더 나아가 “물건도 자꾸 사자고 매달리면 값이 비싸지죠?”라며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는데 빨리 하자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노 대통령은 6자회담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열리는 것. 당연히 주역은 미국과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 일본과 공조하기로 했으므로, 노 대통령은 미국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셈이 된다. 노 대통령은 왜 전임 대통령과 달리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올인’하지 않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성격이 거론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참고 기다리는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북한이 서해 연평해전을 일으키고 우리 영해로 북한 상선을 무단 통과시켜도 참고 기다려주었다. 북한이 해달라는 것도 대부분 들어주었다. 정부 돈으로 직접 북한을 도울 수 없자 대북 사업에 전력하는 현대그룹으로 하여금 5억 달러를 지원케 했다.

반면 노 대통령에게는 ‘할 테면 해봐라’는 식의 사나이 기질이 있다. 언론과 충돌을 빚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대북 문제를 다루는 데도 그대로 투영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이전부터 해오던 지원과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지원은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달리 ‘플러스 알파’를 줄 의향은 없는 상태.

“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2004년 11월13일 미국 LA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 취임사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전제로 ‘북핵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하여금 미국이 아닌 한국 주도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남북 접촉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 와중에 성사된 것이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 합의에 따라 결정된 남북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지난해 5, 6월 열린 남북 장성급 회담이었다.

대북사업 우군 없고 미국도 견제

이 회담에서 우리는 북한이 절실히 요구하던 군사분계선에서의 심리전 중단이라는 빅 카드를 양보해줬다. 그리고 서해에서 남북 함정 간 교신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어 후속 회담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서해의 경계선은 NLL(북방한계선)이 아니고 자기들이 정한 해상분계선이다’는 논리로 서해교전을 일으켜 일거에 당국자 회담을 중단시켰다.

서해교전 직후인 지난해 7월 말 베트남을 경유해 한국에 들어온 468명의 대량 탈북자 사건도 북한을 자극했다. 그에 앞서 김일성 사망 1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해 7월7일, 정부는 방북 초청을 받은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 등으로부터 자발적인 방북 포기를 받아내 김일성 사망 10주기 기간에 누구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게 했는데, 이것도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 시기 북한 방송에서는 북한 통일연구원의 관계자가 등장해 노 대통령을 ‘그놈’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도 정부는 이전부터 해오던 지원과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지원을 계속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접촉을 차단하자 노 대통령은 상당한 불쾌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그때부터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너무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며, “그 후 노 대통령은 ‘그렇다면 네 맘대로 해봐라. 나도 더는 봐줄 수 없다’며 북한에 대해 ‘절제된 냉대’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LA 발언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은 “북한 입장에서 핵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일리가 있지만 핵을 갖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라는 뉘앙스로 발언한 것인데, 이것이 ‘노 대통령은 좌회전을 하려고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던 사람들 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남북정상회담에 올인하는 것으로 잘못 비쳤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 김 전 대통령에게는 현대가 있었지만, 노 대통령에게는 그러한 우군이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하나만으로도 10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다. 삼성이 김대중 정부 때의 현대처럼 적극적으로 대북 사업에 뛰어든다면 참여정부로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그렇게 할 의사가 전혀 없다.

“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참고 기다리는 성격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승부사 기질이 있어 정상회담 성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3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비밀리에 황장엽씨를 만나 심도 있게 북한 사정을 들은 적이 있다. 대북 투자에 부정적이던 삼성은 이후 더더욱 대북 사업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삼성이 몸을 사리니 다른 재벌 회사들도 대북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참여정부는 대북 사업을 펼칠 적극적인 우군을 얻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미국의 견제가 거론된다. 동서 냉전이 유지되던 시절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을 COCOM(공산권에 대한 수출통제체제)에 가입시켜 전략물자의 공산권 수출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러한 통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94년 COCOM이 폐지되자, COCOM보다는 약하지만 재래식 무기 체제의 수출을 통제하는 바세나르 협정(WA)을 96년 체결했다.

COCOM이 존재하던 시절의 전략물자 통제 제도도 여전히 살아 있다. 70년 설립된 핵비확산조약(NPT), 78년 만들어진 핵공급국그룹(NSG, 원자력과 관련된 물품 규제), 75년 설립된 생물무기금지협약(BWC), 84년의 생화학무기비확산체제(일명 호주그룹), 87년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97년 설립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 등이 바로 그것으로, 이 제도들은 북한 등 적성국가로 전략물자가 흘러가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다.

한국은 이들 통제제도에 모두 가입했으므로 북한과 경제 교류를 하더라도 이 제도에서 금지하는 물자는 북한에 제공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 국제 제도를 수용해 전략물자 수출입을 통제하는 ‘대외무역법’을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전략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국제법은 물론이고 국내법까지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안팎의 통제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 미국의 ‘보이지 않는 통제’다. 미국 국내법인 수출통제관리법(EAR)은 ‘미국산 기술이나 부품이 10% 이상 들어간 물품을 북한 등 적성국가에 판매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규제를 어길 기업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1987년 6월 일본에서는 잠수함용 저소음 대형 스크루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는 공작기계를 옛 소련에 수출했다가 적발된 도시바의 사장이 퇴임하고, 총리가 미국에 사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2월에는 한국 D무역회사가 대량살상무기(WMD) 부품 제작에 쓰일 수 있는 밸런싱 머신 4대를 리비아에 수출했다가 적발돼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일본이나 한국 같은 제3국 기업과 정부 처지에서는 미국이 수출통제관리법을 발동하기 전에 자국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욱 나은 조치일 것이다.

“北, 할 테면 해봐” 노무현의 배짱

황장엽씨와의 면담 이후 대북사업을 극력 회피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

이러한 미국의 보이지 않는 통제는 남북 교류의 마당이 돼야 하는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에 진출할 기업으로 아예 이러한 각종 규제에 걸리지 않을 기업만 선정하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냄비나 봉제 같은 단순 가공 공장만 진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업체들을 보내는 데도 정부는 미국과 사전 협의를 함으로써 후환을 없애고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 서두를 수도

‘돈 많은 재계’는 도와주지 않고, ‘힘 있는 미국’은 눈을 부라리며 바라보고 있으니, 깨끗함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 참여정부가 확실히 북한을 밀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별것도 아닌 핑계를 대며 회담에 성의를 보이지 않자, 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을 기점으로 ‘배가 불러서 우리가 당신네를 도우려고 하는 줄 아느냐?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봐라’며 절제된 냉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북한을 조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나 그 부품을 싣고 가는 북한 선박을 공해상에서 검색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라는 대북 통제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3척의 핵잠수함만 배치하던 괌 기지에 10여 척의 LA급 핵잠수함을 배치했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전자폭탄, JDAM, 동굴파괴탄 등 초정밀 첨단 무기를 선보인 것도 북한에게는 대단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일어난 용천 대폭발 사고도 북한을 두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2기 부시 행정부는, 코소보전 이후 보스니아 사태를 해결하고 여중생 사망 문제로 매우 나빠진 한미관계를 해결한 힐 주한미대사를 6자회담에 참석하는 미국 측 수석대표로 임명했다. 힐 대사는 6자회담에서 북한을 거칠게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므로 북한으로서는 그들에게 유리한 미-북 양자회담 성사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1월14일 북한 외교부의 김계관 부상은 북한을 방문한 미 하원대표단에 ‘방어용’이고 ‘영원히 보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단 상태에서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정부와 양자회담을 하기 위한 북측의 몸부림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미국은 물론이고 참여정부까지도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미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의도적인 냉대를 하는 데 호흡을 척척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냉대는 자칫 북한을 중국 쪽으로 밀어붙여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 위원장 이후의 북한 정권이 중국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다면, ‘한국과 미국 세력이 압록-두만강까지 진출하는 것’을 염려해 동북공정을 준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의 핵심 브레인은 “그러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적어도 북한 주민만은 우리 쪽으로 기울어지게 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전부터의 지원과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북한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을 우리 쪽으로 확실히 잡아 끌어당기는 것은 아직 달성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절제된 냉대가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여금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아무리 핵을 갖고 있다고 떠들어도 미국이 꿈쩍하지 않고 자꾸 조여오면, 김정일 정권은 한국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오히려 정상회담을 조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라며 “이제 참여정부를 붉은 안경을 쓰고 보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58~60)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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