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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22명 모두 금쪽 같은 내 새끼”

서울SOS어린이마을의 김경숙씨 … 결혼도 포기하고 고아들 키우며 한평생 헌신의 삶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22명 모두 금쪽 같은 내 새끼”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22명 모두 금쪽 같은 내 새끼”

1월25일 외출하는 아이들을 배웅하는 김경숙씨.

서른 살에 8명 아이들의 엄마가 됐다. 서른아홉에는 큰딸을 시집보냈다. 이듬해에는 첫 손자의 배내똥을 받아냈다. 그리고 50대에 갓 들어선 지금 모두 22명의 아들딸과 5명의 손자손녀, 그리고 사위와 며느리들을 두었다. 서울SOS어린이마을(이하 SOS마을)의 ‘9동 어머니’ 김경숙씨(50)는 이처럼 ‘자식 부자’다.

SOS마을은 고아나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아동복지시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트리아에 가장 먼저 설립된 이후 전 세계 131개국 1580여개의 시설을 둔 민간 사회복지단체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1963년 대구에서 처음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과 순천에서도 개원했다. 김씨가 20년째 어머니로 지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신월3동의 SOS마을은 83년 설립되어 현재 121명의 아이들과 14명의 어머니가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29살 때 8명의 아들딸과 첫 인연 ‘고생 반 보람 반’

SOS마을이 여느 아동복지시설과 다른 점은 자연스런 가족 형태로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이다. 각각 독립된 2층 양옥집에는 한 명의 어머니가 있고, 서로 나이가 다른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형제자매를 이루며 살아간다. 어머니들이 출퇴근 없이 24시간 365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가족 형태다. SOS마을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의 보육교사가 갖춰야 할 조건에 한 가지 조건을 더 갖춰야 한다. ‘평생 미혼으로 살 것’. 항상 아이들 곁을 지키는 ‘진짜 엄마’가 되기 위함이다.

1월25일 찾아간 김씨의 보금자리는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거실엔 김씨가 자신의 적금을 깨 구입한 중고 피아노와 TV·컴퓨터가 있고, 아이들 방마다 침대와 책장·책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 태권도 대회 사진, 미술학원에서 그린 그림…. 벽마다 아이들 사진과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현재 이 집에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큰딸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아들까지 3남 3녀가 살고 있다. 김씨는 “여느 가정집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는 걸 말리고, 컴퓨터 게임과 TV 시청을 못하게 하느라고 전쟁이 벌어진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봉사하는 삶에 대한 동경이 컸어요. 직장생활하면서 시집가라는 부모 성화에 시달리던 스물아홉 살 때였죠. 성당에서 가톨릭 소식지를 읽다가 무릎을 쳤어요. SOS마을 어머니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부산에 살던 김씨는 “사표를 내고 한걸음에 대구로 올라갔다”고 했다. 대구 SOS마을에서 5개월 동안 어머니가 되기 전 수련단계인 ‘이모’ 실습을 한 뒤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무려 8명의 아들딸을 둔 어머니가 됐다.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22명 모두 금쪽 같은 내 새끼”

김경숙씨 집에 놀러 온 SOS마을 어린이들과 김씨의 자녀들.

처음엔 어색했다. 버스를 타면 아이들은 그를 골려주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엄마” “엄마”를 외쳐댔다. 승객들은 젊은 여자가 꽤 큰 아이들을 두었다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김씨의 결정에 강하게 반대했던 부모는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보자’고 했다. 그러나 도시락을 깜빡 잊고 등교한 딸아이 학교에 도시락을 전해주러 들락거리면서, 매일 밤 자정 넘어 연탄불을 갈면서, 정부미로 지은 밥이 쉽게 누렇게 되는 것을 속상해하면서, 아이들에게 ‘짠순이 엄마’란 볼멘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 학원비를 대기 위해 자신의 월급을 쏟아부으면서 그는 점점 진짜 엄마가 되어갔다.

“휴가 때마다 생후 6개월 되던 때 버려진 아들을 안고 고향엘 내려갔어요. 자는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엄마, 우리 아들 예쁘지?’ 그러면, ‘니 속으로 낳은 자식이 더 예쁠 거다’면서 눈을 흘기셨죠. 그러면서도 ‘이왕 키우는 거 잘 키워라’고 말씀하셨어요. ‘금쪽 같은 내 새끼’란 제목의 드라마도 있죠? 저도 그래요. 제 속으로 낳진 않았어도 22명 모두 정말 금쪽 같은 내 새끼예요.”

SOS마을 아이들 대부분은 고아가 아닌 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양육을 포기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인 것. 입소한 직후 새로운 엄마와 형제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어려운 일 아니냐는 질문에 김씨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과거 살던 곳보다 넓고 깨끗한 이층집에 만족해한다는 것. 시설 적응 문제보다 급선무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 치유다.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학대와 방치를 겪고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큰아버지에게서 학대받았던 승환(가명·9)이는 입소 당시 결핵과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았다”면서 “가려운 곳을 박박 긁다 잠옷에도 피가 묻곤 해서 많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독립해서 나간 아이들도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각 가정마다 한두 명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이곳으로 들어온 경우다. 김씨의 막내딸 윤경(가명·11)이는 태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김씨 품에 안겼다.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라고, 김씨는 “윤경이를 위해서라면 내 피를 모두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는 얼마 전 윤경이에게 어떻게 엄마와 딸로 인연을 맺게 됐는지 설명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달려가 보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가 있었다고. 엄마는 시집가서 아기 낳은 윤경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줄 때까지 살고 싶다고. “진실은 감출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며 “윤경이는 제 나이에 걸맞게 이해했으리라 믿는다”고 말하는 김씨의 두 눈은 금세 촉촉해졌다.

SOS마을은 여느 시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각자 독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김씨 또한 지금까지 13명의 아이들을 독립시켰다. 그러나 아이들은 SOS마을과 김씨를 자신의 고향집으로 여기고 쉴새없이 들락날락한다. 김씨 또한 독립했다고 해서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을 멈추지 않는다. 자취하는 아들집에 찾아가 밑반찬을 해주고, 손자손녀들 얼굴 보러 결혼한 아이들 집을 찾는 것은 휴가 때마다 김씨가 하는 주요 일과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야간대학을 다니며 대기업 대리로 일하는 큰아들 원석씨(가명)는 명절 때마다 집에 찾아와 동생들에게 용돈을 준다. 김씨는 “전자레인지도, 청소기도 원석이가 엄마 위해 사다준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큰딸 민영씨(가명)에 대해 김씨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꿋꿋하고 성실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결혼 후 봉투마다 1000원짜리 지폐 석 장씩 넣어놓고 생활비를 아껴 쓰는 모습을 보고는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고. 김씨 집 전화번호는 17년째 똑같은 번호다. 집 떠난 아이들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전화번호는 절대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22명 모두 금쪽 같은 내 새끼”

큰딸과 함께 6명의 아이들의 옷을 널고 있는 김경숙씨.

그러나 김씨는 가끔씩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멋 내는 데만 몰두하고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 “이놈의 자식, 자꾸 그럴래?”라며 눈물 찔끔 날 정도로 매섭게 호통쳐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와 함께 하는 숙제를 받아온 뒤 시무룩해져 있는 아이들을 볼 때 괜스레 미안하다. 아이들을 매섭게 혼낸 뒤엔 ‘엄마 몰래 아이들을 다독여주는 아빠가 있었으면 좋을 걸’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결혼도 안 하고 평생 남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볼 수 있느냐’는 주위의 호기심과 존경, 감탄이 뒤섞인 시선을 받는 것 또한 부담스러운 일이다.

SOS마을 어머니의 정년은 만 55세. 김씨에게는 앞으로 6년의 시간이 남았다. 친자식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22명의 아이들을 길러낸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김씨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절반은 즐겁고, 절반은 힘든 일이었어요.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힘들지 않게 사는 사람 있나요. 내 아이들에게 평생 어머니로 남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해낸 게 아닐까요. 사실, 사랑을 주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받은 사랑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독립한 아이들이 집 전화번호와 같은 뒷자리 번호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가정이란 울타리가 되어줬구나’ 싶어 가슴 뭉클해져요.”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34~35)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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