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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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TV 광고 흠집내기 전쟁

공식·비공식 총동원 상대 후보 비난 한창 … 골치 아픈 정책 무관심 유권자도 한몫

  • 워싱턴=김승련 동아일보 특파원 srkim@donga.com

    입력2004-10-29 12: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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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장악하는 현상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특히 11월2일 치러질 미국 대통령선거는 “방송 토론으로 시작해 방송 광고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TV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미국은 TV 광고 대전(大戰)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모두 3편의 공식 광고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 선거는 대선을 8일 앞둔 10월25일 현재 거의 하루에 한 편꼴로 새로운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중앙당에 해당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국위원회가 만드는 공식 광고만 따질 때 그렇다는 것이다. 광고 맨 뒷부분에 3∼4초가량 “나는 조지 W. 부시다. 나는 이 광고 내용을 승인했다”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공식 광고다.

    하루에 한 편꼴 새 광고 등장

    부시 대통령(www.georgewbush.com)과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www.johnkerry.com)의 홈페이지는 기존의 광고 가운데 효과가 높았던 것을 중심으로 TV 광고 동영상을 저장해놓고 있다.

    TV 광고는 공식 광고에서 그치지 않는다. 두 정당을 지지하는 외곽단체가 만들어내는 광고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발전을 위한 유권자 기금’ ‘진실을 위한 쾌속정 참전용사들’ 등은 공화당, ‘무브온(move on)’ ‘미디어 펀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단체다.



    정당과 외곽단체가 쏟아 붓는 광고비도 천문학적인 액수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25일 “선거를 2주 앞두고 각 정당은 약 1500만 달러를 광고비로 썼다”고 보도했다. 8년간의 경제호황 속에서 치러지는 바람에 커다란 쟁점이 없었던 2000년 대선에서도 부시 후보와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은 모두 1억6000만 달러를 광고비로 썼다.

    아무리 광고 홍수라지만 전국의 유권자 누구나 선거광고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정당은 ‘집중과 선택’의 원리에 충실했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3대 격전지를 포함한 9개 접전 주에서 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주별로 1표라도 더 얻으면 승자 독식 원칙에 따라 선거인단을 몽땅 가져가는 만큼 공화당이 확연히 앞서는 텍사스나, 민주당과 진보주의의 텃밭인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선거광고비를 투입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전국에 3차례 생중계된 대통령선거 TV 토론을 전후해서만 선거광고를 내보냈을 뿐이다.

    이번 광고 전쟁의 특징은 ‘초반 정책 홍보형 긍정광고, 선거 막판 상대비방 광고’라는 고전적 등식이 깨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남남갈등’ 못지않은 국론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비방광고’는 일찌감치 등장했다.

    일찌감치 네거티브 전략 등장

    두 후보의 광고 논지는 3차례 벌어진 TV 토론에서 나타난 대로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대통령은 자신이 유일하다며 ‘최고사령관론’을 내세웠다. 또 세금을 적게 거둬 가정마다 돈을 더 쓰도록 해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작은 정부론’도 강조했다. 한편 케리 후보는 의료보험 확대, 이라크전쟁 중단 등을 주요 홍보 소재로 앞세우고 있다.

    선거광고는 후보자의 정책 주장 및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을 참신하고 감각적인 언어와 영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대다수 유권자에게 ‘정리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순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선거가 박빙으로 접어들면서 이런 ‘순진한’ 내용의 광고는 뒷방 신세로 전락했다. 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광고가 전면에 등장한 것.

    민주당을 가장 흥분시킨 공화당의 광고는 9월23일 공개됐다. 공화당은 이 광고에서 케리 후보를 ‘갈대 같은 남자’로 묘사했다. TV 광고 속에서 케리 후보는 왈츠곡 ‘푸른 도나우강’에 맞춰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나지막한 소리로 “케리는 이라크전쟁에 찬성했다가 반대했고, 또 찬성으로 돌아섰다가 지금은 반대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화면에는 ‘존 케리, 바람 부는 대로’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민주당도 즉각 ‘반격’ 광고 제작에 나서 이튿날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1000여명 넘게 사망한 참상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유치한 광고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맞불을 지폈다.

    광고 전쟁의 와중에 눈에 띄는 다른 특징은 사실관계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 캠프는 이달 초 케리 후보가 테러를 ‘골칫거리(a nuisance)’라고 발언한 것을 꼬집는 광고를 만들었다. “테러가 골치 아프다니요. 케리 후보처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개념 설정부터 잘못한다면 절대 테러리스트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케리 후보가 인터뷰했던 뉴욕타임스 주말판 잡지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의 발언은 꼭 그렇지만 않다. 그는 “미국은 테러가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던 과거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전직 검사로서 내가 잘 안다. 불법도박이나 성매매는 절대 근절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이 범죄 조직화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공화당 캠프가 이런 내용을 적절히 ‘편집’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광고를 만든 셈이다.

    민주당 광고도 ‘내 멋대로 재단’이란 점에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케리 후보가 직접 등장해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추진되면 중산층은 더 많이 내고, 부유층은 덜 낸다”는 광고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광고문구는 유권자인 시청자를 호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소득자 20%가 전체 세금의 63%를 낸다. 중간 20%(상위 40~60%)는 전체 세금의 10.5%만을 부담한다. 민주당의 광고는 중간층 20%가 2000년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세금부담 증가치는 0.002%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언론은 “민주당이 이런 사소한 수치를 갖고 전체를 오해하기 쉽도록 광고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50% 양분 선거 후유증 깊은 우려

    美 대선 TV 광고 흠집내기 전쟁

    86%는 토론프로그램 참가자가 A후보를 평가하는 말을 100% 문장 사용했다면 그 가운데 86문장은 그 후보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뜻이다.

    유권자 기만에 이르는 이 같은 선거광고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미국 정치는 경박화(輕薄化)하고 있다. 큰 땅덩어리에 따른 제약 때문에 대면 접촉도 어렵다. 결국 유권자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한편 미국의 공식 선거광고는 시간이 30초로 제한된다.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방대한 세금정책, 안보정책, 무역정책 등의 내용을 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간단한 한두 줄의 카피로 정책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아예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셈이다.

    전통적으로 대선 후보가 내놓는 정책에 대한 분석 기능은 권위지로 통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 신문이 맡아왔다. 그러나 깊이 있는 장문의 분석기사 하나를 위해 20∼30분씩 투자할 독자는 극소수로 제한되어 있다. 1억2000만명에 이르는 ‘실제 투표자’는 골치 아픈 정책 내용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선거 전문가들은 기만적인 선거광고 자체보다 ‘선거 후유증’에 더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건 간에 네거티브 광고로 흠집이 난 대통령이 50%에 이르는 반대파 국민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선거 후 4년간 미국은 만신창이가 된 리더십으로 세계를 이끌 수밖에 없다. 그 ‘1등 공신’은 2류 정치 광고라는 점에 이견을 달긴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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