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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화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

전통문화 행사 형식 빌린 축제·문화제 봇물 …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과 연대하기도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진화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

진화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

10월3일 개천절에 열린 ‘대한민국 여성축제’. ‘난자야 나오너라, 세상속으로’라는 올해의 주제를 상징한 조형물. 창조적 생명체로 여성의 의미를 조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사임당, 너는 여자로서 현모양처라는 최고의 명예를 얻었건만 어찌 이리 한을 품었느냐.”

“내가 율곡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창조적인 예술가임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10월3일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무당에 의해 불려나온 신사임당과 선덕, 허황후 등 6명의 여성 원혼은 자신들을 지혜와 창조력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여성’으로 기록한 남성 중심의 역사에 맺혔던 한을 쏟아냈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린 ‘대한민국 여성축제’의 ‘역사 속 여성인물 바로세우기’의 한 장면이다. 광장에 모인 여성들이 박수로 공감했고, 외국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이를 바라보았다.

광장에 현재 활동하는 여성 단체들 대부분이 부스를 차리고 나와 명실상부 대표적인 여성주의 축제로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문화 행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 챌 수 있듯이 최근 우리 문화 행사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는 ‘여성’이다.

지난 봄 ‘서울여성영화제’와 마지막 ‘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서막을 열었고, 8월에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달빛 아래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는다’가 열렸다. 9월에는 ‘월경 페스티벌’과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맹랑한 배꼽들 놀까? 놀자놀자!’, 10월에는 ‘여성실학축제-축제로 만나는 규합총서’와 제2회 ‘대한민국 여성축제’가 성황을 이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전시와 바자를 열었는가 하면, 대표적인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인 이프토피아가 10월에 여성들의 밤거리 축제를 연다.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 본격적인 여성주의 문화를 선보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은 12월에 ‘여성공간문화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성주의 운동의 주류가 90년대 후반 활발했던 여성학에서 성 정치와 욕망에 대한 담론이 폭발한 2000년을 전후해 여성주의 문화제와 퍼포먼스로 옮겨간 듯하다. 페미니즘 문화운동은 2003년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민통합과 양성평등 사회 구현’이라는 국정 과제와 문화관광부 내 여성문화 태스크포스팀 설치를 통해 한 목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한민국 여성축제’를 기획한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박옥희 대표는 “여성문화제는 법과 제도 분야에서 직접 여성운동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문화와 시선과 행동을 통해 여성주의를 보여줌으로써 대중적으로 연착륙할 뿐”이라고 말했다.

제목만 봐선 페미니즘 행사인지, 예술 행사인지 “헷갈려”



페미니즘 문화제와 축제가 봇물을 이룬 것도 흥미롭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이 행사들이 모두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내걸고 있지 않으며 ‘여성’만을 주장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제목만 봐서는 페미니즘 행사인지, 순수예술 행사인지, 가족 이벤트인지 알기 어렵다.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동안 ‘타파’의 대상이었던 한국적 전통을 가져온 것이 적지 않다. 페미니즘 문화운동에서 페미니즘은 숨어버린 것일까.

진화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

‘대한민국 여성축제’에서 ‘웅녀’에게 역사 속 6인의 ‘열혈여인’이 한을 풀어놓고 있다.

9월29일~10월3일까지 수원 효원공원에서 열린 ‘여성실학축제’는 18세기에 ‘규합총서’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써서 의·식·주 일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빙허각 이씨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빙허각 이씨의 삶을 그린 이동마당극, 규합총서에 따른 천연염색법이나 음식과 체질 궁합 알아보기 등이 모두 전통문화 행사 형식인 데다 테마가 된 ‘규합’이 여자가 머무는 곳을 의미해 ‘여성=집안살림’의 성역할을 강조하는 여성 가정 교양 행사처럼 보일 위험(?)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빙허각 이씨 연구자인 정해은씨는 “여성실학축제는 ‘규합총서’를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와 경험을 바탕 삼아 의식주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학문서로 조명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10월2일 열린 ‘명랑토크-여성의 눈으로 본 실학’은 여성실학축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행사였다.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진행한 이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빙허각 이씨뿐 아니라 시아버지인 세종이 준 열녀전을 뜰에 던져 쫓겨난 세자빈 봉씨, 자그마치 180권의 대하소설을 쓴 이씨 등 조선시대에도 적지 않은 열혈 여성들이 있었으나 이들이 모두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법적 한계가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주장을 폈다. 행사를 기획한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이혜경 대표는 “지금은 전통에서 여성주의적인 것을 끌어내는 시기다. 여성주의란 늘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고,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청객 중에는 공원에 왔다가 우연히 참석한 할머니들이 있었는데, 한 남자 대학생이 ‘공격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제시하는 자료의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 데 비해 이 할머니들은 “여자들이 모두 맞는 소리 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남성 권력을 휘두를 기회가 적었던 남자 대학생에게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다소 억울한 반면, 언제나 마지막 사회적 소수로 살아온 할머니들에게는 ‘맞는 소리’인 것이다.

페미니즘 위해 남성권력이 만든 제도 이용 ‘딜레마’

할머니들에게도 공감 가는 주장을 하면서도 페미니스트들은 그 이름 때문에 여전히 ‘피해의식’과 ‘과격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요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70년대 미국 백인 여성 중심의 급진적 여성운동을 연상시키는 페미니즘이라는 말보다 여성주의라는 말을 선호하고, 아예 ‘여성’으로 묶이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여성주의 문화 행사들이 명백하게 페미니즘적이면서도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진화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

여성주의 문화행사로 성황을 이룬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과 ‘여성실학축제’ 중 명랑토크 장면.

9월13~26일까지 열린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을 기획한 서나영씨는 “페미니즘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여성학 공부를 바탕으로 한 것도 아니다. 현재 공연되는 연극 중 ‘굿나잇 마더’를 제외하면 여자가 주인공인 연극도 여자가 연출하는 연극도 없다. 현실 자체가 페미니즘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연극’이라 하면 연극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운동 이전에 작품을 잘 만들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선 여성 연극인들이 계속 활동하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페스티벌을 기획한 동기”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라는 말이 나이·학력·인종·사회의식 같은 다양한 여성들의 차이를 ‘여성’이라는 한 가지 조건으로 환원할 우려가 있다는 점, 또한 최근 페미니즘 자체가 제도화되면서 여성계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여성주의 문화 행사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란 구호를 찾아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의 여성주의 문화운동은 인종과 계층, 신체적 장애, 성적 지향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과 연대하는 문화운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서울대 인문연구소 이남희 교수는 “지금은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들 사이의 연대로서 페미니즘이 해체하는 시기다. 그러나 해체란 여러 가지 색을 갖고 다시 모인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이 전략적으로 페미니즘보다 문화를 앞세우면서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대중성과 규모, 세련미를 추구하면서 남성들의 행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외형적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여성축제’도 꼭 서울 중심, 서울시청의 허가를 받는 잔디광장에서 열려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과도기적 현상이겠지만 여성주의 문화운동이 남성 기업들의 협찬을 얻고 남성 관료들의 결제를 받는-그래서 고시나 취업을 앞둔 일부 대학생들은 커리어로서 여성주의 문화행사에 참여한다고도 한다-대중문화 행사이면서, 동시에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좀더 치밀한 기획과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며느리가 여성운동가라서 ‘대한민국여성축제’에 참여했다”고 말한 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살림 잘 해놓고 여성운동하지, 안 하고는 못 나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딜레마는 여성 중심의 시각을 세우기 위해 남성권력이 만들어놓은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은 문화 행사이기 이전에 사회적 소수자의 정치적 시위다. “남성 ‘권력’을, 여성을 억압하는 적으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는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여성주의 문화운동이 대중성을 얻기 위해 여성주의적 창조력과 연대의 가능성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간동아 455호 (p70~7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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