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0

2004.09.02

“우리는 골든 제너레이션”

‘올림픽 8강’ 한국축구 젊은 피들 … 검증된 실력에 경험 쌓으면 2006, 2010월드컵 주연 ‘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최원창/ 굿데이 기자 gerrard@hot.co.kr

    입력2004-08-27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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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골든 제너레이션”

    8월21일 테살로니키 카프탄조글리오구장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파라과이와 치른 8강전에서 한국의 조재진(오른쪽)이 파라과이 문전에서 헤딩슛을 하고 있다.

    스포츠 사회학자 빌 머레이는 ‘세계축구사(A history of the world game)’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유고’라고 평했다. 척박한 환경에도 수준급 선수가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는 것을 빗댄 것. 머레이의 평가는 정확하다. 한국 축구는 한두 명의 탁월한 선수들에 의존해 아시아의 지존 자리를 지켜왔다.

    1998년 처음 월드컵에 출전한 일본이 99년 세계청소년대회 준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 등을 거두며 승승장구한 것은 나카타 히데토시,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 등으로 대표되는 ‘골든 제너레이션(황금세대)’ 덕이다. ‘세대’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등장이 유소년 축구에 대한 체계적인 투자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올림픽팀은 아테네올림픽 축구 파라과이와 치른 8강전에서 2대 3으로 분패,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신화를 쓰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아테네올림픽을 통해 비로소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게 됐다. 조재진 이천수 최성국 김동진 김정우 김영광 등이 성장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왜 이들을 한국의 ‘황금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황금세대’라는 말이 축구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때는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 후이 코스타(AC 밀란) 등 포르투갈의 ‘젊은 피’가 89년, 91년 세계청소년대회를 연거푸 우승하고 나서다. 이들은 10여년이 흐른 뒤 변방에 머물던 포르투갈 축구를 유로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과 유로2004에서 세계 톱클래스로 견인했다.

    #왜 이들을 황금세대라고 불러야 하는가



    올림픽팀 선수들을 황금세대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아테네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하나의 ‘세대’로 지칭되려면 K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어야 한다.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에서 4강 기적을 이뤘던 ‘박종환 사단’ 출신 선수들은 김판근을 제외하곤 국가대표팀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축구의 흐름을 뒤바꿀 ‘세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

    올림픽팀 선수들은 K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까지 한국은 프로리그에서 검증받지 못한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팀 선수들은 전원이 프로리그 출신이다. 이들은 이미 거칠기로 소문난 K리그에서 3~4년간 활약하며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특히 김영광 최성국 등은 지난해 UAE 세계청소년대회에서 8강에 오르며 큰 대회 성공 경험을 쌓았고, 이천수와 조재진은 스페인과 일본 무대에서 활약하며 기량을 키워가고 있다.

    올림픽팀 선수들은 2001년 올림픽 상비군이 짜여지면서 틈날 때마다 손발을 맞춰왔다. 축구협회 역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김호곤호가 출범한 후 해외 전지훈련만 4차례를 다녀왔을 정도. 한국이 조별 예선이 도입된 60년 멜버른올림픽 이후 6번째 도전 끝에 조별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대표팀은 ‘오버래핑의 귀재’ 박경훈, ‘등지기의 달인’ 이태호, ‘컴퓨터 링커’ 조광래 등 특출한 선수가 많았던 강팀이다. 이들이 은퇴한 후 한국 축구는 엇비슷한 기량의 선수들로 구성돼왔던 게 사실이다. 아테네올림픽 멤버들은 잃어버렸던 ‘다양한 개성’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림픽팀 선수들에게 황금세대란 별칭을 가장 먼저 달아준 곳은 일본이다. 일본 언론은 지난해 7월과 9월, 일본 올림픽팀이 한국과 맞대결을 펼쳐 일방적인 열세 끝에 1무1패를 기록하자 ‘한국판 황금세대가 출현했다’면서 놀라워했다.

    황금세대로 불리는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성장세에 가속도를 낸다면 2002년 한일월드컵 뒤 하강곡선을 그려온 한국축구가 머지않아 세계의 중심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날 태어난 인연’ 조재진과 이천수

    조재진은 키만 멀대같이 크고 온몸에서 촌티가 흐르던 16년 전의 한 축구선수와 많이 닮았다. 바로 ‘황새’ 황선홍이다. 신체 조건이 비슷한 데다 황선홍의 은퇴 직후 혜성처럼 나타나 더욱 기대를 모았다.

    이런 까닭에 조재진의 별명은 ‘젊은 황새’다. 이 말에는 그가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져온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 있다. 사실 조재진은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미완의 대기’로만 평가됐다. 또래에서는 ‘동급 최강’을 자랑했지만 세계 수준에 필적하려면 저돌성과 골 결정력, 위치선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조재진은 아테네올림픽 조별예선 말리전에서 짜릿한 2개의 헤딩골로 킬러의 본색을 드러내보였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보여준 이천수의 기량은 그야말로 절정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당돌한 성격답게 힘든 경기에서도 제 기량을 맘껏 펼치며 동료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2002년 월드컵 때보다 한층 성장했음을 보여줬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 무대였던 2003~2004 시즌엔 잦은 부상으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천수는 올림픽을 통해 부활의 기회를 잡았다.

    공격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이 두 공격수는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1981년 7월9일) 태어났다. 99년 당시 고교축구를 양분했던 부평고(이천수)와 대신고(조재진)를 이끌며 라이벌 체제를 구축했던 이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한국 공격수 계보를 이을 준비를 끝냈다.

    #‘꺼꾸리와 장다리’ 최성국 남궁도 vs ‘포스트 2002’ 조병국 김치곤 박용호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은 한국 공격의 불을 붙이는 다이너마이트 구실을 맡았다. 조별예선에서는 후반 조커로 투입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을 흔들었고, 8강전 이후에는 선발 스트라이커로 투입됐다. 최성국은 올림픽 기간 동안 지난해 세계청소년대회보다 한층 효율적이고 팀워크에 바탕을 둔 플레이를 한다고 평가받았다. 최성국은 본프레레호(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이동국 차두리 설기현 등 큰 체구의 공격수들의 틈새를 메우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궁도는 올림픽을 통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예고했다.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갖춘 남궁도가 올림픽 경험을 잘 되새긴다면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리는 한국 축구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의 은퇴와 최진철의 은퇴 선언으로 세대 교체는 수비 부문에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선수가 조병국이다. 조병국은 이미 코엘류호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수비라인의 차세대 기둥이다.

    조병국과 동갑내기인 박용호는 슬럼프로 인해 한동안 올림픽팀에서 주전자리를 내놓기도 했지만, 올림픽을 통해 부동의 오른쪽 스토퍼로 자리를 잡았다. 박용호는 최진철의 공백을 메울 후보에 꼽히고 있다. 그리스전에서 퇴장을 당한 게 옥의 티인 김치곤은 터프한 공격수들을 상대로 강렬한 몸싸움과 끈기를 선보이며 믿음직한 수비를 펼쳐보였다.

    이들 수비 트리오가 2년 뒤 독일월드컵에서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의 뒤를 이어 ‘뉴 스리백 라인’을 형성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아테네올림픽에서 ‘김 트리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리스와 치른 첫 경기에서 한국을 구한 건 김동진이었다. 1명이 퇴장당한 상황에서 선제골을 넣은 것. 김동진의 첫 골이 없었다면 한국은 8강에 진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김동진은 말리전에서도 0대 3으로 몰린 후반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를 조재진의 머리에 두 번이나 적중시켰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날개, 때에 따라서는 중앙수비수까지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인 김동진은 멀티맨의 전형인 유상철의 판박이. 특히 팀이 필요할 때 한 방 터뜨려줄 수 있는 해결사 기질을 갖춘 것까지 유상철을 꼭 닮았다.

    올림픽 직전 김정우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줄곧 올림픽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왔지만 와일드카드 김남일의 합류로 벤치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남일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전화위복의 기회를 잡았다. 김정우는 멕시코전에서 통렬한 중거리 슛으로 승리를 잡는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3년 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김정우가 차세대 한국 축구의 기수가 될 거라고 예언했던 게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올림픽팀 막내둥이 김영광의 조별예선에서의 눈부신 선방은 많은 축구팬들을 감동시켰다. 한국은 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94년 미국월드컵까지 골키퍼의 실수로 인한 어이없는 실점으로 탈락을 거듭한 아픈 기억이 있다. 김영광은 김병지, 이운재의 뒤를 이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골문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김영광이 세계 톱클래스의 골키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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