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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여검사 100명 시대 ‘조용한 변화 바람’ … ‘공안·특수부’ 금녀의 벽도 허물어져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현재 검찰 내 여성의 비율이 7%에 그치고 있지만 신세대 여성들은 검사직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아직까지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기사화될 부분이 남아 있습니까?”

여성 대통령론이 회자되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란 키워드가 거의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이미 여성 군장성이 배출됐고 여성 장관과 국회의원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검찰은 여성에게 유달리 인색했다.

올 초 사법연수원 33기가 임관하면서 여검사 100명 시대가 개막됐지만, 아직도 전체 검사 1514명 중 여성 검사가 7%에 그치고 있다. 여성 검사장 탄생을 위해서는 적어도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변화의 실마리 또한 시나브로 보이고 있다.

8월16일 평검사 인사에서 단연 눈길을 끈 인물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치된 이지원 검사(40·연수원 29기)였다. 1999년 광주지검 특수부에 현직 여검사 ‘넘버3’ 격인 김진숙 검사(40·연수원 22기)가 배치된 적이 있지만 최고 수사통의 집결지라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여검사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거대한 ‘사건’이었다.

‘육아문제’ 여검사들에게 최대 걸림돌



이검사는 “남자 검사들이 들으면 서운해할지 몰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좀더 섬세한 수사를 할 수 있고 인간적인 배려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최근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밝힌 ‘부드럽고 인간적인 수사’라는 검찰수사의 새 원칙에 여성이 더욱 적합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전통적으로 검사는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직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폭탄주’로 대변되는 검찰 문화는 그 같은 선입관에 걸맞은 ‘최악’의 근무여건을 제공했다. 평균 퇴근시간이 자정에 이르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남성이 대다수를 이루는 검ㆍ경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옮겨다녀야 하는 데 따른 육아문제 등…. 여검사 1호 격인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단 5년 만에 검사직을 내던지고 판사로 전직한 예에서 증명되듯, 여성에게 검사를 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90년대 초까지 지속됐다.

“2000년에 임관한 연수원 29기는 역차별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최초의 기수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 여검사가 29명에 불과했지만 단번에 21명이 충원되면서 검사 사회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셈이지요.”(청주지검 충주지청 홍영은 검사)

여검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배려는 여검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부메랑이 돼기도 했다. 초기에는 여검사에게 야간 당직근무도 시키지 않았을 만큼 여성인력 활용에 자신감을 내보이지 못했던 검찰은, 차츰 여검사 수가 증가하자 이 같은 특권적 요소를 하나씩 없애나갔다. 대표적인 특권이 여성의 가장 큰 고민인 가정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여검사는 재경지역에서 근무케 한다’는 원칙이다.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여검사들의 네트워크는 강고한 편이다. 1년에 한 번씩 전체 여검사 워크숍이 열리고 검찰 인트라넷에서도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서울서부지검 김용자 검사(왼쪽)와 후배인 김명선 검사.

남자 검사들한테서 ‘역차별’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이 같은 배려 뒤에는 여성 검사에 대한 차별이 숨어 있었다. 최근까지도 여검사의 90% 이상이 형사(조사)ㆍ공판부에 근무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직무에 투입돼온 것. 거의 모든 여검사는 소년, 여성(가정폭력) 업무로 일을 시작해 그 분야를 전문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금도 고참 여검사 가운데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서운함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폭탄주 문화 바꾼 것도 여검사들의 功?

그런 관례는 2000년대 여성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폭발적 증가와 2003년 여성 법무부 장관의 등장으로 차츰 깨지기 시작했다. 2003년 서울지검 공안2부에 서인선 검사(30·연수원 32기)와 대전지검 공안부에 강형민 검사(36·연수원 28기)가 배치되면서 공안부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다. 올 6월 인사에서는 검찰 첫 여성 부장검사인 조희진 검사(42·연수원 19)가 탄생하면서 활동 폭을 넓혀나갔다. 특히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여검사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았는데, 검사 임용 면접에서 조희진 검사를 심사위원에 포함시키는 등 여검사 배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언젠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지휘한 사건이 있었는데, 결국 부장께서 사건을 배당하지 않더군요. ‘너같이 순한 검사 앞에서 자백할 피의자가 어디 있겠냐’고 하신 말씀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재경지역 A여검사)

최근 공안·특수부의 벽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이란 존재는 검찰 조직에서 ‘기피 대상’으로 꼽히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자기 부서에서는 여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부장검사가 존재했을 정도. ‘전투력’과 ‘수사력’을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 생리상 불가피하다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지금은 초임 검사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30%에 육박한 상황이어서 그 같은 ‘편견’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어느 조직이건 여성이 3분의 1이 되면 차별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판사 사회는 이미 그런 단계를 지났지만 검찰은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광주지검 목포지청 김윤선 검사)

공식적으로 첫 여성 공안부 검사로 기록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서인선 검사는 “공안부 업무라고 잔뜩 긴장하고 갔지만 업무 강도에서 형사부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이익단체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여성에게 더 적합한 업무라고 생각됐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 중견 검사는 “공안이나 특수수사라고 특별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 자체로 ‘권력’이고 알짜부서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나눠주지 않았다는 면이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보직 이외에 여검사의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는 역시 육아문제를 꼽을 수 있다.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검사 업무는 판사와 전혀 다른 ‘유목민’ 생활과 다를 바 없기 때문.

“여검사는 제 손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애당초 검사에 임용되면서부터 좋은 아내나 좋은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기혼 여검사들이 대다수일 정도로 상황은 열악하다. 역으로 생각하면 현재의 여검 사들은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검찰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온 셈이다. 차츰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면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들의 희망이다.

일은 힘들지만 여검사들이 쉽게 검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검찰직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인 이영주 검사(37·연수원 22기)는 “여성 가운데서도 직무 자체의 매력, 특히 검찰조직의 끈끈한 동료애와 선후배 관계에 매료되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검찰은 지금 ‘女風前夜’
이 같은 경향은 본격적인 남녀 평등시대인 70년대생에 이르러서 더욱 거세졌다. 젊은 여검사일수록 “우리 회사(!)가 너무 좋다”며 “검사의 어떤 점이 남성적인지 잘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사람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고,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어떤 위치에서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검사’가 최고라는 것.

여검사 수가 늘면서 ‘군대’ 같던 검찰의 모습도 확연하게 변화했다. 우선 폭탄주를 강권하는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주량에 따른 음주문화로 바뀐 것도 순전히 여검사들의 공로(?)인 셈이다. 한 여검사는 “당당하게 몇 년째 물폭탄으로 회식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검사라는 직책이 과거와 같이 강압적으로 군림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자기 직무에 충실하는 것과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 해소가 오히려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여검사 비율은 전체 7%에 그치고 있지만 여검사가 절반에 이르는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취재 도중 만난 한 현직 검사장은 검찰의 여성인력 활용이 장기적으로 검찰개혁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보통의 남자 검사라면 승진과 보직에 신경 쓰며 조직 내 정치에 몰입하는 권력 지향성을 내보이곤 하지만, 여검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만나야 하는 피의자나 고소ㆍ고발인들에 대해 ‘애정’을 내보이곤 합니다. 어떤 이는 검찰 내에서 될 수 있으면 오래 일하면서 여성 진출의 발판이 되겠다는 소망을 내비친 기억이 인상에 남습니다.”

2004년은 ‘여성검사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주간동아 450호 (p36~38)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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