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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人기행③ | 윤선도

자연 벗 삼아 ‘茶와 詩’ 한평생

집권세력 견제로 번번이 정치적 좌절 … 해남·보길도 등지서 은거의 삶

  • 정찬주/ 소설가

자연 벗 삼아 ‘茶와 詩’ 한평생

자연 벗 삼아 ‘茶와 詩’ 한평생

윤선도가 머물렀던 보길도 녹우당.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오랜만에 뱃고동 소리를 듣는다. 배 한 척이 심호흡을 하고 있다. 서둘러 배에 오른 나그네는 바닷바람을 쐬며,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20여년의 유배와 19년의 은거생활을 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일생을 떠올려본다.

윤선도의 시련은 나이 30살에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조야(朝野)를 깜짝 놀라게 하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시작된다. 그는 서인 이이첨 등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렸다가 오히려 반격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된다. 이후에도 집권세력인 서인의 난정(亂政)에 맞서 왕권강화를 주장하다 번번이 좌절하곤 한다. 이를 보면 그의 기질은 차를 즐긴 조용한 품성에다 타고난 반골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그네는 윤선도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좌절 속에서도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고,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많은 단가와 시조를 남겨 정철(鄭徹) 박인로(朴仁老)와 더불어 조선시대 삼대 가인(歌人)으로 불리고 있다.

많은 단가·시조 남긴 ‘조선의 歌人’

윤선도는 권력 지향적인 인간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자연 귀의를 갈망했다. 그의 귀의처는 관향(貫鄕)인 해남 금쇄동과 보길도 부용동이었는데, 그에게 시(詩)와 차(茶)는 자연과의 합일을 위한 매개체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보길도를 처음 찾은 것은 51살 때였다. 병자호란으로 강화도에 피난 중인 원손대군과 빈궁을 구출하고자 가복(家僕) 수백명을 배에 태우고 갔으나 왕자 등은 이미 붙잡혀가고 없었다.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내려갈 작정으로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보길도에 닻을 내리고 격자봉 계곡을 찾아 들어가 그곳 일대를 부용동이라 이름 붙이고,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齋)라 하였던 것이다.



자연 벗 삼아 ‘茶와 詩’ 한평생

부용동 계곡의 세연정.

이후 해남 금쇄동을 오가며 은거하던 윤선도는 66살에 효종의 친서를 받고 실로 18년 만에 상경했지만, 그를 배척하는 서인의 모함에 맞서 칭병(稱病)하며 남양주 고산촌(孤山村)에 머물다 곧 해남으로 돌아가고 만다. 고산촌에 머문 인연으로 호가 고산이 되었고, 이때의 심정을 읊조린 다시(茶詩) 한 편이 전해지고 있다.

‘가파른 산이 인가에 가까우니 풍속도 경박하구나/ 착하고 아름다운 그대 말씀 일찍이 자랑했네/ 좌우 둘레는 첩첩 높은 산봉우리 솟았고/ 앞뒤로는 긴 모래밭 펼쳐 있네/ 거친 차와 궂은 밥도 더 먹지 못하겠네/ 끝내 뜻 맞지 않아 기대한 희망 멀어졌으니/ 오래도록 부용동 옛집이나 추억하려네.’

서인들의 횡포로 조정이 잘못돼가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차라리 부용동으로 돌아가 동천석실(洞天石室)에 앉아 차 마시며 정조를 지키고 싶다는 희원의 시다.

보길도 선착장에서 내려 곧장 부용동에 올라가 계곡 물이 휘돌아 흐르는 세연정(洗然亭)에 들렀다가 보길도의 주봉인 격자봉 아래 자리잡은 낙서재 터를 둘러본다.

낙서재에서 유서를 읽다가 눈이 침침해지면 맞은편 산중턱에 있는 동천석실에 올라가 차를 마셨을 법하다. 부용동 8경 가운데 ‘동천석실의 저녁연기(洞天石室暮煙)’가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땀을 흘리며 동천석실에 올라보니 숙박 취사를 할 수 없는 작은 정자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면 차 달이는 연기가 틀림없었을 듯하다. 석실 앞에는 차 부뚜막이었던 바위가 있고, 찻물을 기른 석천(石泉)이 있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오우(五友), 즉 물 바위 솔 대나무 달이라는 자연을 벗 삼아 선비로서 수신(修身)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연은 그런 그에게 이슬과 바람과 햇볕, 그리고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품은 차를 선사했던 것 같다.

보길도 가는 길

해남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보통 2시간 간격으로 보길도 가는 배가 있다. 보길도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고 승용차도 함께 승선할 수 있다.



주간동아 449호 (p64~64)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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