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8

2004.08.19

국제땅 잃고 꿈 잃은 ‘인도 수몰민의 비애’

나르마다강 댐 건설로 수십만명 터전 잃어 … 주정부, 재정착 지원 뒷전 ‘주민 어쩌나’

  • 뉴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4-08-13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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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 사이에 마을이 사라졌다. 조용히…. 지난 70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낳고, 길러내고, 품에 안고 살아왔던 동네가 물밑으로 잠겨버렸다. 높이가 92m인 나르마다 사가르(Narmada Sagar) 댐의 완공으로 인도 마디야 프라데시주 하르수드(Harsud)와 인근 249개의 촌락, 광대한 삼림이 수몰되었고, 삼림과 강을 생활의 터전으로 하던 17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쫓겨났다. 총 면적 9만1348ha(2억7000만평)가 넘는 광대한 지역을 물속에 집어넣고서야 12만ha의 땅에 물을 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르마다 사가르 댐은 나르마다강에 건설되는 댐들 중 두 번째 규모지만, 수몰지구의 면적이나 인구 등 댐 건설에 따르는 희생으로 볼 때는 최대 규모다.

    세 개의 주를 지나며 인도 중부를 관통해 아라비아해로 흐르는 나르마다강은 마디야 프라데시주 마이칼라 지역에서 발원하여 장장 1312km를 흐르며 유역에 울창한 삼림과 평원을 거느리고 있다. 나르마다는 일찍이 힌두교도들 사이에서 성스런 강으로 추앙받았고, 주변의 부족민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을 제공해왔다. 특히 1112km의 강줄기가 마디야 프라데시주를 지나며, 전체 유역 중 87%가 그 주에 위치해 마디야 프라데시주에는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강이다.

    대규모 댐만 29개 ‘100년 프로젝트’

    그러나 이 지역은 강우량의 기복이 워낙 심해 수량이 일정하지 않고, 주변 지역도 농경지로 사용되는 땅은 그다지 넓지 않다. 특히 계속된 가뭄으로 마디야 프라데시주에서는 농민들의 자살사건이 속출하고 있으며 나르마다강의 수량도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줄어들었다.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아직도 관개시설이 미흡하며 전력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인도 같은 나라에서 치수(治水)는 커다란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0여년의 사전조사와 프로젝트 수립 과정을 거쳐 1960년 경제계획위원회의 정식 승인으로 시작된 나르마다강 유역 개발사업은 규모와 비용, 기간 등 모든 면에서 인도 최대의 프로젝트로 꼽힌다. 나르마다강과 지류에 대규모 29개, 중간 규모 135개, 소규모 3000개의 댐을 건설함으로써 전력을 생산하고 식수와 농업 및 산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인데 완결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리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초기에는 개발사업의 참여 주체인 각 주정부들 간 갈등이 심했으나, 함께 참여하고 있는 4개의 주가 나르마다 물분쟁재판소의 중재로 수자원 분배 비율에 합의하면서 갈등이 해소됐으며, 사다르 사로바르(Sardar Sarovar) 댐 건설에 세계은행의 자본 2억8000만 달러와 일본 정부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이미 완공된 나르마다 사가르와 바르기(Bargi)를 비롯해 현재 건설하고 있는 사다르 사로바르, 마헤슈와리(Maheshwari) 등 나르마다의 대형 댐들이 완공되면 270만ha의 농지에 관개 시설을 갖출 수 있으며, 생산 가능 전력은 3000Mw에 달한다(그러나 실제 생산 전력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750Mw 내외로 추산되며, 관개수로까지 완공되고 나면 370Mw로 떨어진다).



    거대한 토목공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나르마다강 유역 개발사업 또한 환경, 수몰지구와 이주민, 수자원 분배 등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인도의 환경운동가들과 단체들은 일찍이 ‘나르마다강 살리기 운동’을 시작해 거의 20년 동안 싸워오고 있다. 운동 초기에는 주로 환경친화적 방향으로 대형 댐들의 설계를 수정하고 댐 높이를 낮추기 위한 법정투쟁을 벌여왔으나, 개발사업이 40여년간 진행된 데다 이미 완공된 댐들도 있는 상황인 탓에 점차 인권운동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1985년부터 나르마다 유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야말로 풀뿌리 수준의 운동을 조직, 지도하고 있는 사회운동가 메다 파트카르(Medha Patkar)는 최근 인터뷰에서 “개발계획의 진행상황 점검과 수몰지구에서 이주해야 할 주민들의 재정착 문제가 운동의 주요 이슈”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땅 잃고 꿈 잃은 ‘인도 수몰민의 비애’

    ‘나르마다강 살리기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작가 아룬드하티 로이.

    철거민들의 재정착 문제는 각 주마다 서로 다른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27만명에 달하는 철거민을 재정착시켜야 하는 마디야 프라데시 주정부는 가구당 2ha의 농지와 500㎡의 정착지, 건축비, 가축 구입비 등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또한 3만명의 철거민이 발생할 예정인 구자라트 주정부는 과거의 토지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개인당 2ha의 농지와 임시 거주지를 마련해주도록 정해놓았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실현될 수도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두 주정부 모두 이렇게 나누어줄 농지가 없기 때문이다. 구자라트 주에서 정착지로 내놓은 아주 적은 땅도 너무나 척박해 이곳으로 이주한 철거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마디야 프라데시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수몰지에 대한 현금 보상안을 추가로 내놓았는데 이 경우 철거민의 20%를 차지하는 부족민들은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점유해오던 땅에 관습적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이 땅이 그들 소유임을 입증할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 소유의 땅이 없어 농업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도 빈손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의 철거민 보상과 정착 기준은 ‘재정착 후 최소한 과거에 누리던 정도의 생활 수준은 돼야 한다’고 돼 있다. 사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에 투자한 이후 전 세계의 환경, 인권단체들의 압박에 시달리던 세계은행은 1991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개발사업과 재정착 문제를 정밀조사한 뒤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도 “개발에 따른 사람들의 충격에 대해서는 적절한 고려가 없고, 인도 정부의 이주민 재정착 정책이 세계은행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내렸다. 결국 세계은행은 93년 나르마다 개발사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세계은행의 후퇴 이후에도 인도 정부는 나르마다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은 꾸준히 진척되고 있지만, 철거민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나르마다강 살리기 운동가들은 현장에서 평화시위를 주도하고 각 NGO(비정부기구)와 언론에 알릴 자료를 준비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반면 인도 정부는 13년 안에 3만20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또 다른 댐 건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철거민이 발생할까? 발전과 보존이 조화롭게 자리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쯤일까? 진정으로 인간을 고려하는 개발은 불가능할까? 이런 물음은 우리 사회도 안고 있는 딜레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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