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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부모들의 ‘테니스 드림’

자녀들 성공 위해 미국행 러시 … 헌신적 뒷바라지 속 샤라포바 등 성공적 결실

  •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러시아 부모들의 ‘테니스 드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휩쓸고 있는 한국 선수들 덕분에 한국에서 ‘골프 붐’이 일어났듯, 최근 러시아에서는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미녀군단은 최근 그랜드슬램대회를 잇따라 휩쓸었다. ‘시베리아 사이렌’으로 불리는 마리아샤라포바(17)는 7월3일 영국 윔블던대회 결승에서 미국의 ‘흑진주’ 세레나 윌리엄스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러시아 여자선수가 윔블던 단식에서 우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여자 세계 랭킹 10위 안에 4명 포진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도 러시아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친구 사이인 아나스타샤 미스키나(22)와 옐레나 데멘티예바(22)가 결승에서 맞붙어 미스키나가 우승하는 ‘집안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 여자 테니스의 독주는 7월5일 발표된 여자프로테니스(WTA) 랭킹에 그대로 나타난다. 10위 안에 무려 4명이 포함돼 있다. 15위이던 샤라포바는 윔블던 우승으로 일약 8위로 뛰어올랐다. 러시아 여자선수 중 최고 랭커는 4위의 미스키나. 랭킹 100위 안에 무려 14명이나 들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나 10대 후반이어서 당분간 러시아 여자 테니스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전망이다.

러시아 여자선수들은 뛰어난 기량뿐 아니라 빼어난 ‘미모’로도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러시아 여자선수들의 인기가 WTA대회의 흥행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국제테니스연맹(ITF)은 샤라포바의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 여부를 놓고 논란을 겪었다. 러시아는 일찌감치 미스키나와 데멘티예바, 나디아 페트로바,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로 구성된 여자 테니스팀을 확정했다. 그런데 윔블던 우승으로 새로운 ‘코트의 요정’으로 떠오른 샤라포바를 뒤늦게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인 것. 샤라포바가 올림픽 무대에 서야 테니스가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격론 끝에 규정대로 샤라포바를 제외하기로 결정했지만 샤라포바의 높은 인기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183cm의 키에 59kg의 샤라포바는 윔블던 우승 전에도 대표적인 테니스 ‘몸짱’ ‘얼짱’으로 주목을 받았다. 코트 밖에서 더 인기가 높은 러시아의 미녀스타 안나 쿠르니코바(23)의 뒤를 이을 ‘테니스 요정’으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이제는 샤라포바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다. 미국인 투자가 마크 피셔(44)가 지금까지 샤라포바를 남몰래 재정적으로 후원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당사자들은 완강히 부인했지만 혹시 연인 사이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다.



우리 LPGA 스타들의 눈부신 성공담 뒤에는 헌신적인 부모의 뒷바라지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러시아 미녀 테니스 스타들의 성공 뒤에도 역시 부모의 정성이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샤라포바의 아버지 유리는 엔지니어였지만 테니스광이었다. 샤라포바가 5살이 될 때부터 직접 테니스를 가르치다 재능을 발견하자 함께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테니스를 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스포츠 강국이지만 유독 테니스는 별 볼일 없었다. 테니스가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종목이어서인지 옛 소련 당국이 테니스 육성에는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그러다 열렬한 테니스팬인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 되면서 테니스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직접 테니스를 즐기기도 했고 크렘린컵 대회까지 만들었다. 이 때문에 테니스는 ‘대통령 스포츠’로 불렸고, 고위관리와 상류층이 앞다투어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만큼 ‘부자들이나 즐기는 비싼 스포츠’로 받아들여졌다. 어쨌든 옐친 전 대통령은 러시아 테니스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후원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지금도 러시아 선수들이 활약하는 국제대회를 찾아다니면서 관람하는 것을 취미 삼아 여생을 보낼 만큼 테니스를 사랑한다.

쿠르니코바는 성공 후 부모와 불화

대통령의 관심 덕분인지 몰라도 1990년 중반부터 러시아에는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와 마라트 사핀 같은 남자 스타들이 탄생했다. 여자 테니스에도 쿠르니코바가 등장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러시아 테니스 스타들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선수 생활도 미국에서 시작했다. 왕년의 테니스 스타였던 어머니에게 직접 테니스를 배운 사핀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미국 등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혹독한 겨울이 긴 러시아에서는 1년 내내 연습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스포츠 마케팅의 중심지는 역시 미국이어서 미국에서 운동을 시작해야 세계무대에 빨리 서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도 러시아 테니스 스타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다.

샤라포바의 아버지 유리도 딸을 ‘제2의 쿠르니코바’로 만들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넉넉한 살림이 아니어서 단돈 700달러를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 샤라포바는 겨우 9살. 유리는 미국에서 테니스 레슨 강사를 하면서 딸을 뒷바라지했다. 지금도 직접 딸의 매니저를 하고 있다. 러시아 여자 테니스를 얘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쿠르니코바 역시 극성스런 부모 덕분에 세계적 스타가 됐다. 아버지 세르게이와 어머니 알라는 5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쿠르니코바의 재능을 알아보고 세계적 선수로 키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결국 쿠르니코바는 16살 때 윔블던 4강에 들었고, 한때 세계 랭킹 8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쿠르니코바는 코트 밖에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한창 뛸 나이인데도 벌써 사실상 은퇴 상태다. 연예계 등에서 유혹의 손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연인인 스페인 가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28)와 함께 조국 러시아를 방문해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라틴 팝의 황태자인 이글레시아스는 ‘쿠르니코바를 위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을 열었다. 이글레시아스는 20세기를 풍미했던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로 지난해 아메리칸 뮤직상을 받은 정상의 라틴 팝 가수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쿠르니코바의 남성편력이 워낙 심해 이 커플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온갖 염문을 뿌리던 쿠르니코바는 지난해 ‘알고 보니’ 이혼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러시아 출신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인 세르게이 표도로프와 비밀결혼을 했다가 이혼했다는 것이다. 쿠르니코바는 지금은 운동선수라기보다 연예인에 가깝다. 광고모델과 뮤직비디오 출연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대회에서 받는 상금보다 훨씬 많다. 가끔 대회에 나가는 건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성을 유지하고 언론의 눈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한 ‘마케팅 기법’일 뿐이라는 비난까지 나오는 판이다.

쿠르니코바는 LPGA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처럼 ‘효녀’는 아닌 모양이다. 최근 부모와 재산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쿠르니코바는 현재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500만 달러짜리 호화주택에 연인인 이글레시아스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쿠르니코바의 부모가 이 저택에 대한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 이 주택을 구입할 때 세 사람이 3분의 1씩 소유권을 가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제 부모 몫인 3분의 2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쿠르니코바의 부모는 그동안 딸이 비밀결혼과 남성편력, 누드사진 촬영 등 끊임없는 스캔들을 일으켜 속이 매우 상하다가 마침내 “더 이상 함께 못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LPGA 선수들이 더욱 예뻐 보인다.



주간동아 444호 (p62~63)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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