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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시뮬레이션 결과와 결정 엇갈려 … “추락 가능성 희박” 강조하고도 “진상규명 불능”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장선생 장례식 모습

지난 6월15일 언론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장준하 선생은 당초 알려진 대로 추락에 의해 숨진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언론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가 홍익대 기계시스템공학과 최형연 교수에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장선생 추락 및 상해발생 과정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다며 의문사위의 발표를 뒷받침했다. 장선생 사망에 대한 의문사위의 의견은 이 위원회가 발표한 6월11일자 보도자료에 더욱 상세히 나와 있다.

1번을 붙이고 있는 이 보도자료의 첫 번째 문장은 ‘관련자 진술, 장준하 시체 사진, 당시 촉진(觸診)의사 소견 등을 근거로 장준하의 추락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재구성해본 결과 이제까지 알려진 시체발견 장소에서 추락 사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고 적어놓았다. 장선생의 시신은 1975년 8월17일 경기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약사봉에 있는 한 절벽 밑에서 발견되었다. 지금도 이 절벽 밑에는 ‘오호! 장준하 선생’이라는 제목의 돌 비석에 ‘여기 이 말 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 풀 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라는 글이 쓰여 있다.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의 시신이 있었던 약사봉 절벽. 이곳에는 장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장선생 사망 한 달 후(1975년 9월17일) 세워진 이 비석의 글처럼 장선생의 사망원인을 확실하게 밝혀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장선생은 과연 의문사위가 내놓은 의견처럼 이곳에서 추락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사망한 후 누군가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한 최교수를 만났다. 최교수는 자동차가 충돌하거나 추돌할 때 차 안에 있는 승객이 입는 상해 등을 연구해왔다. 최교수는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을 때 여러 방향과 다양한 힘으로 인해 승객이 받는 충격을 연구해 H-모델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현대자동차와 BMW, GM, 혼다, 닛산, 삼성화재 등 여러 회사는 H-모델을 이용해 자동차 사고시 승객의 상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사고 피해자의 보상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안을 찾고 있다.

지난 3월 최교수는 홍익대 토목과의 오모 기사와 함께 이 절벽을 실측하고 실측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절벽 지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절벽 위에서 무게 70kg의 인체가 추락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절벽 위에는 바위로 형성된 협곡이 있어 장마철에는 제법 개울물이 쏟아지나 건기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만 흐른다. 절벽 밑에는 폭 1.6m 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어, 절벽에서 떨어진 물은 이곳에 고였다가 다시 아래로 흘러간다. 1975년 장선생의 시신은 이 평평한 공간에서 누운 자세로 발견됐다. 따라서 최교수의 시뮬레이션은 높이 14m, 경사 65도 정도의 절벽에서 떨어진 인체가 과연 다른 곳으로 튕겨나가지 않고 폭 1.6m의 평평한 공간에 놓여 있을 수 있느냐를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최교수는 모두 12가지 자세로 인체를 추락시켜보았는데, 이중 아홉 번은 폭 1.6m 공간에 인체가 놓였고, 세 번은 그곳을 벗어나 더 아래로 튕겨나갔다. 최교수의 시뮬레이션은 9대 3의 비율로 추락한 인체가 평평한 곳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온 것이다.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홍익대 최형연 교수

그러나 의문사위는 어찌된 이유인지 9가 아니라 3을 선택한 듯 ‘절벽 위에서 장선생이 떨어졌다면 평평한 공간에 시신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최교수는 “내가 한 일은 의문사위 요청대로 12가지 자세로 인체를 추락시켜본 후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었으므로, 이 사건과 관련해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의문사위가 장선생의 시신은 평평한 곳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내 시뮬레이션을 너무 발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9대 3의 비율이 나왔는데 왜 3을 선택했는가란 질문에 대해 의문사위의 M조사관은 엉뚱하게도 “내 기억으로는 시뮬레이션이 반반인가, 7(평평한 곳)대 5의 비율로 나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시뮬레이션 결과뿐만 아니라 시신에 있는 상처까지 분석해 그런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장선생 시신에는 골절상 찰과상 등 여러 가지 상처가 나 있었다. M조사관은 장선생이 절벽에서 추락했다면 이러한 상처가 생길 수 없다며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의문사위 결정에 객관성•공정성 ‘의문’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절벽을 향해 바라본 경우

최교수의 시뮬레이션은 절벽에서 추락할 경우 인체의 어느 부위가 어느 정도의 세기로 절벽과 충돌하면서 떨어지고 그로 인해 어떤 상처가 생길 수 있는지까지 밝힐 수 있다. 최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장선생 시신에서 발견된 실제 상처와 비교한 후 이를 점수화해 ‘최종 부합 점수표’를 작성했다. 이 점수표에서는 8번 자세(100점 만전 환산시 77.6점)-10번 자세(62.1점)-6번 자세(58.6점) 순으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8번과 10번 자세로 추락한 인체는 평평한 곳에 놓여 있었고, 6번은 평평한 곳을 벗어나 아래로 굴러간 경우였다.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8번 자세는 발을 아래로 한 엎드린 자세로 절벽을 내려오다 실족한 경우다.

따라서 앞서의 9대 3 비율까지 고려한다면 8번이 가장 유력한 추락 자세로 선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교수는 “절벽에 추락할 경우 사람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움켜잡거나 몸을 뒤틀 수 있는데 시뮬레이션에는 이러한 현상까지 입력할 수 없다. 따라서 완벽하게 추락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장선생은 대략 8번에 가까운 자세로 추락했을 것으로 본다. 내가 한 시뮬레이션이니 나는 내 판단에 대해 90점 정도를 줄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최교수가 내세운 8번 자세를 선택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의문사위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최종 부합 점수표’는 아예 실려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대신 의문사위는 최교수가 ‘좌상 및 찰과상 결과’란 제목을 달아 정리한 표에서 ‘좌상 및 찰과상 결과’라는 제목을 삭제하고 대신 ‘결과해석’이라는 제목을 집어넣어 보도자료로 내놓았다. 최교수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임의로 개작해버린 것이다.

기자는 반론권을 주는 차원에서 의문사위의 K조사관과 M조사관에게 이러한 문제 등을 질의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매우 당황해하며 “우리 말을 기사화할 것이냐. 당신은 취재를 목적으로 질문한다고 밝히지 않고 물었으니 우리 대답 역시 공식적인 것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하다가 “7월13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최종보고서 초안이 작성되니 그날 물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7월13일은 이 기사가 실린 ‘주간동아’가 발매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나 이들은 같은 대답만 거듭했다). 6월28일 의문사위가 발표한 ‘결정’ 내용도 매우 흥미롭다.

장준하 선생 추락사 재조사  의문 쌓이는 의문사委 발표
이날 의문사위는 ‘시뮬레이션 실험 등을 통해 추락사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해놓고도 ‘장선생 사망 진상 규명은 불능’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의문사위의 이러한 결정은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고 있는가. 의문사위의 조사와 결정에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면 ‘의문’은 의문사가 아닌 의문사위에 집중될 것이다. 추락사가 아니라고 해놓고도 왜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문사위의 관계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애매한 대답만 반복했다.



주간동아 444호 (p46~47)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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