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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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묻지마 골프’ 수출하나

  • 이조년/ 골프칼럼니스트 huskylee1226@yahoo.co.kr

    입력2004-07-16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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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뜨거운 ‘묻지마 골프’ 수출하나

    ‘묻지마 골프’가 성행하고 있다.

    ‘묻지마 골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제주도를 중심으로 ‘묻지마 골프’가 성행한 적이 있다. 경제학에 불황일 때는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화장이 진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골프에서도 경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공교롭게도 묻지마 골프가 성행한다.

    묻지마 골프는 여행사나 인터넷을 통해 남성 2명, 여성 2명이 만나서 골프 치고 저녁 먹은 뒤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에 들러 서로 마음 맞으면 하룻밤 같이 지내고 헤어지는 걸 말한다. 이들의 만남에서 서로에게 신상명세를 묻는 행위는 결례다.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등을 묻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골프와 섹스만 즐기면 된다는 것.

    외환위기 이후 한때 묻지마 골프가 돌림병처럼 번지면서 여행사들도 이 때문에 시달려야 했다. “묻지마 골프가 가능하느냐”는 노골적인 문의를 수없이 들어야 했고, 제주도에서 아마추어 골프대회라도 열리면 참가자들은 반드시 남자나 여자 등 파트너를 요구하곤 했다.

    이번엔 해외에서다. 골프를 키워드로 한 인터넷 채팅이나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묻지마 골프에 대한 제의를 볼 수 있다. 지원자들이 줄을 잇는다. 파트너들과 묻지마 골프를 즐기고 돌아와서는 공항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진다.



    L여행사 K과장의 말을 빌리면, 해외로 골프 여행을 나가는 부부 중 절반가량이 의심이 가는 관계라고 한다. 부부라고는 하는데, 여권을 보면 주소지가 서로 다르다. 여행하다 항의를 해와 나중에 집으로 연락해주겠다고 하면 정색하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클레임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해외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준비하다 보면 참가하는 부부나 남녀 쌍들의 주소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남자끼리 오는 골퍼들은 여자끼리 오는 골퍼들과 팀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현지에서 눈이 맞으면 그날부터 부부 행세를 하면서 골프를 즐긴다. 동남아 지역으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개인이 출발하는 묻지마 골퍼들이 많아 이들을 포함하면 해외 골프투어는 묻지마 골프가 상당수일 것이라는 게 여행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묻지마 골프의 주범은 물론 일부 여행사와 인터넷 게시판이다. 최근엔 술집까지 끼어들었다고 한다. ‘접대비 실명제’ 이후 매출이 떨어지자 손님 유치 차원에서 여종업원들을 해외 원정시키는 신종 비즈니스가 등장한 것.

    가뜩이나 국내 골퍼들이 해외에서 어글리 코리언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묻지마 골프의 창궐은 국가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킨다. 골프가 몇몇 몰상식한 골퍼들로 인해 더 이상 손가락질을 받아선 안 된다. 경제가 불황일 때 묻지마 골프가 성행한다는 현상 역시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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