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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시간의 여신1

외로운 오늘이 원천강으로 가는구나

조선 무속 연구에 채록된 '시간의 여신'…부모 나라 찾아가는 여행길서 '세 가지 부탁' 받아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외로운 오늘이 원천강으로 가는구나

우리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과 땅을 떼내고 우주를 만든 여신 마고, 쉐멩뒤, 그 아홉 아들딸인 울뤠마루, 보름웃도, 동백자…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인간세상을 창조한 별왕 형제… 그 가운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신이 운명과 시간의 여신인 ‘오늘’이다. 탐라신화의 ‘오늘이 이야기’는 ‘조선무속의 연구’에서 유일하게 채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시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하늘과 땅을 떼낸 마고가 우주 공간의 운행과 더불어 시간을 흐르게 했음이 분명할 터.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떼낸 신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가 맞붙어 있는 하늘 우라노스와 땅 가이아를 떼내려고, 자신의 아비인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버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낫은 우리 마고와 같은 신격으로 보이는 여신 가이아가 자기 뱃속(지구의 중심)의 ‘힘줄의 근원’에서 결정을 뽑아 그걸 날카롭게 다듬어서 만들어준 것이다. 크로노스의 낫을 ‘천공의 낫’ 또는 ‘시간의 낫’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하늘 땅을 떼낸 데서부터 시공간이 시작했기 때문이겠다. 크로노스를 그린 그림에는 낫을 들고 선 크로노스 곁에 해시계나 모래시계가 등장하는데, 낫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속성을 보여주며 시계는 시간 자체를 상징한다. 그에 비해서 우리 신화의 시간은 ‘오늘’이 중심이다. ‘오늘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간 자체의 이름으로 신이 된 오늘이, 매일이는 있지만 어제 내일이는 없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제는 ‘어제의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의 오늘’일 것이다. 자, 오늘이를 만나보자.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옥 보석같이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고요하고 쓸쓸한 들에 외로이 나타나니 그를 발견한 세상사람들이, “너는 어떠한 아해냐?” 묻더라. “나는 강님들에서 솟아났습니다.” “성이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냐?” “나는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하니, “어찌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느냐?” “내가 강님들에서 솟아날 때부터 한 마리 학이 날아와 한 날개로 요를 만들어 깔아주고, 한 날개로는 이불을 만들어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입에 야광주를 물려주어 그리저리 살려주니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왔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나이도 모릅니다.” 이러저러 사람들이, 너는 난(태어난) 날을 모르니 오늘을 난 날로 하여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라.

외로운 오늘이 원천강으로 가는구나

원천강을 찾아 떠나는 오늘이. ‘마리 이야기’로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성강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늘이’의 한 장면이다.

오늘이 어떻게 나이가 있나

이야기의 시작을 그냥 읽으면 정말 재미없다. 신화의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오늘을 난 날로 하여 이름이 오늘이라! 오늘은 시간이므로 오늘은 태어난 날이 오늘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것은 이야기의 문맥에서 ‘모른다’이지만 실제로는 ‘없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성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더군다나 나이도 모른다. 즉, 나이도 없다. 오늘이 어떻게 나이가 있겠는가? 여러 백성들에게 이름을 지어 얻은 오늘이. 학을 부모 삼아, 강님들의 걸어다니는 짐승, 날아다니는 새들을 벗 삼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어느 날 박이왕의 어머니 백씨 부인을 만난다. “너는 오늘이가 아니냐?” 처음 보는 부인이 대뜸 이름을 부른다. “네, 오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너의 부모 나라를 아느냐?” “모릅니다.” “너의 부모 나라는 원천강이라.” 오늘이 벌렁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묻기를, “원천강은 어찌 갑니까?” “원천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이 모여 있는 곳이지. 계절의 향기와 바람이 시작되고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란다. 하지만 인간인 네 몸으로 가기가 쉽지 않을 게다.” 옥 보석같이 예쁘장한 줄만 알았던 오늘에게서 뚝심이 묻어난다. “그래도 가겠습니다.” “네가 정 원천강을 가려거든 서천강가의 흰 모래땅으로 가거라. 거기 가면 별충당이라는 정자에서 글 읽는 도령이 있으니, 그 도령에게 길을 물으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야.” 오늘이 강님들을 떠나는구나. 자신을 키워주던 학을 남겨둔 채, 외로운 오늘이의 벗이 되어준 날짐승, 들짐승을 뒤로 한 채 끝도 없이 펼쳐지는 흰 모래땅의 바람을 맞으며 기약도 없이 가는구나.

장상•연꽃나무•이무기의 부탁

오늘이 얼굴에 모랫가루가 딱지처럼 눌러 박힐 때쯤 서천강가의 흰 모래땅에 당도하니 과연 젊은 도령이 별충당이라는 정자에 앉아 글을 읽고 있다. 쉬지도 않고 글을 읽는 도령과 문밖에서 종일토록 서 있는 오늘이. 그러다 날이 저물어간다. 오늘이 정자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길을 디디며, “지나가는 사람인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석양의 붉은 노을만 정자를 더욱 붉게 비출 뿐 도령은 글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이 마음을 다독이고, “나는 오늘이라는 사람입니다.” 푸른옷동자가 그제야 글 읽기를 멈추고 돌아보며, “나는 장상이라 하오. 옥황의 분부가 여기 앉아 언제든지 글만 읽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부모 나라가 원천강이라고 하여 그곳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이가 대답하니 푸른옷동자가 친절한 말로,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올라와서 이곳에서 쉬었다가 날 새거든 떠나십시오.” 오늘이 정자에 올라 고맙다는 말을 건넨 뒤 백씨 부인을 만난 사실을 말하며 길을 인도해줄 것을 간청하니, “여기서 모래땅을 며칠 더 가다보면 연화못이 있는데, 못가에 오늘님 키의 세 배쯤 되는 연꽃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연꽃나무에게 물으면 알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튿날 날이 새자 떠날 채비를 하는 오늘이에게 푸른옷동자가 부탁을 한다. “원천강에 가거든 왜 내가 밤낮 글만 읽어야 하고 성밖으로 외출 해서는 안 되는지 이유를 물어다가 전해주십시오.” “꼭 그리하겠습니다.” 오늘이 연화못을 찾아서 또다시 몇 날 며칠을 모래땅을 걷다보니 푸른옷동자 말대로 과연 연화 못가에 연꽃나무가 있더라. 오늘이 연꽃나무에게 다가가서, “연꽃나무야, 말 좀 물어보자. 어디로 가면 원천강을 가느냐?” “웬일로 원천강을 가는고?” “나는 오늘이라는 사람인데 부모 나라 원천강을 찾아가노라.” “반가운 말이로구나. 그러면 나의 팔자나 알아다 주시오.” “무슨 팔자이뇨?” “나는 겨울에는 움이 뿌리에 들고(뿌리만 살아 있고), 정월이 나면 움이 몸 중에 들었다 이월이 되면서 가지에 가고, 삼월이 나면 꽃이 되는데 윗가지에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아니 피니 이 팔자를 물어줍서.” “그러면 원천강은 어찌 가느냐?” “가다보면, 청수 바다가 있을 것이오. 그 바닷가 모래밭에 몸길이 스무 자가 넘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누어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을 터이니, 이무기에게 물어보면 좋은 도리가 있을 것이오.”



오늘이가 연꽃나무와 헤어진 뒤 몇 날 며칠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니, 푸르디푸른 청수바다가 펼쳐진다. 청수 바닷가 모래밭에 천년 묵은 이무기가 불이 뿜어져나올 것 같은 눈을 하고 고개를 꺼덕꺼덕, 몸을 비틀비틀, 꼬리를 꿈틀꿈틀 바닷가 모래밭을 지치며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이무기의 모양새에 지레 질린 오늘이는 겨우 용기를 내 말하기를, “이무기님, 어찌하면 원천강을 찾아갈 수 있는지 인도해줍서.” 이무기는 눈앞에 작고 가냘프게 생긴 계집아이를 무심히 바라보더니, “길 인도하기는 어렵지 아니하나, 어찌하여 원천강을 찾아가는가?” “부모 나라를 찾아 서천강가 흰 모래땅을 지나 연화못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럼. 내가 길을 인도하는 대신 나의 부탁도 하나 들어주시오” “그러면 부탁은 어떤 것입니까?” “다른 이무기들은 야광주를 하나만 물어도 용이 되어 승천을 하는데, 나는 야광주를 셋이나 물어도 용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는지 원천강에 가거든 물어다 주시오” “잊지 않고 그리하겠습니다.” 이무기는 거대한 몸을 지치더니 오늘이에게 등을 내민다. 오늘이를 등에 태운 이무기는 청수바다에 굉음을 내며 뛰어든다. 끝없는 청수바다를 사흘 밤낮을 헤엄쳐 건너편에 오늘이를 넘겨주는구나. 이무기가 오던 길로 돌아가며 오늘이에게 원천강 가는 길을 일러주는데, “이 길로 따라 가다보면 매일이라는 낭자를 만날 터이니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오.” 이무기와 작별하고 몇 날 며칠을 걸어가다 보니 서천강가 흰 모래땅에 장상 도령이 거처하던 별충당과 똑같이 생긴 정자에서 장상 도령처럼 앉아서 글을 읽고 있는 웬 처자가 보이더라. 오늘이가 장상 도령을 본 듯 반가운 마음에 덥석 통성명부터 한다. “오늘이라 합니다.” 하지만 저번의 장상 도령처럼 이 처자, 오늘이가 안중에 없다. 오늘이 더 가까이 다가가, “원천강을 가는 길을 인도하여줍서.” 글 읽던 처자가 그제야 눈을 돌려 오늘이를 맞는다. “당신은 오늘이고 난 매일이니 우린 인연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원천강은 어찌 가십니까?” “부모 나라를 찾아 원천강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매일이가 흔쾌히 오늘이 길 인도를 승낙하면서 부탁을 한다. “원천강에 가면 왜 내가 항상 글만 읽고 살아야 하는지 내 팔자를 물어다 주세요.” “꼭 그리하지요.” 오늘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작별할 때 매일이 일러준다. “이 길로 가다가 산을 여러 번 넘으면 우물이 있고, 거기에 하늘의 궁녀가 울고 있으리니 그들에게 물으면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외로운 오늘이 원천강으로 가는구나

오늘이가 연못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 ‘오늘이’의 한 장면.

바가지의 구멍

오늘이 또 길을 가는구나. 끝도 없는 길을 또 가는구나. 가다보니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산 끝자락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구나. 그 산을 넘고 넘어 넘어가니 산이 또 앞을 가로막고, 그 산 너머 산이 또 가로막는구나. 산을 삼세번 넘으니 아닌 게 아니라 우물가에서 하늘의 궁녀들이 흐느껴 울고 있구나. 오늘이 다가가 궁녀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저희들은 전에는 하늘 옥황의 시녀였답니다. 우연히 득죄하여 우물을 푸고 있습니다. 우물을 다 퍼내기 전에는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는데 아무리 퍼내려고 하여도 푸는 바가지에 큰 구멍이 뚫려 있어 조금도 물을 밖으로 퍼낼 수가 없습니다.” 말을 마친 궁녀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오늘이에게 도움을 청하니 오늘이가 말하길, “옥황의 신인이 못 푸는 물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어찌 풀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 있으니 그리 해보겠습니다”. 오늘이는 정당풀을 베어와 풀을 뭉쳐 베개처럼 만들고 그것으로 바가지의 구멍을 막았다. 거기에 송진을 녹여서 막은 곳을 칠한 다음 볕에 말렸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옥황상제에게 축도한 뒤 그 바가지로 물을 푸니, 순식간에 물이 말라붙거늘 궁녀들이 사지에서 살아나온 듯이 기뻐하는구나. 궁녀들이 너무 고마워서, 오늘이가 청하는 원천강 가는 길을 안내하며 길동무해주겠다고 나선다. 오늘이는 궁녀들을 따라 또 길을 간다. 산을 수없이 넘고 강을 서너 번 넘어 며칠을 더 가니 배처럼 구불구불 만리장성으로 쌓인 별당이 보였다. “여기가 원천강입니다. 부디 오늘님 가는 곳마다 행복하십시오.” 궁녀들은 축도를 하고 오늘이에게 작별을 하며 바삐 옥황으로 제 갈길을 가는구나. 오늘이는 원천강으로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세 가지 부탁도 받는다. 장상의 부탁과 매일이의 부탁은 같은 것으로 보고 세 가지 부탁이라고 하였다. 오늘이가 여행에서 만난 문제들과 문제풀이의 해법이 바로 시간의 열쇠임이 분명하다. 다음 회에 함께 풀어보자.



주간동아 441호 (p60~62)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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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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