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8

2004.06.10

홀로서는 지방문화 “얕보지 마라!”

대구·광주·청주 등지서 대중음악·영화인들 활동 활발 … 지역문화 지킴이로 주민 사랑 듬뿍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6-02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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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서는 지방문화 “얕보지 마라!”

    대구에서 데뷔한 4인조 록밴드 JEIMS

    우리의 목표는 ‘동네 밴드’입니다. 지방 투어 공연을 하면서 서울 무대에 서기는 하겠지만, 활동 본거지는 대구가 될 것입니다.”

    5월15일 대구광역시 중구의 한 클럽에서 데뷔 쇼 케이스를 연 4인조 록밴드 ‘JEIMS’의 프로듀서 전충훈씨는 “언제 서울로 진출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규 앨범과 뮤직 비디오를 발표하고 본격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 그룹으로서는 이례적인 선언이었다.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과 지방 식민지로 구성돼 있다고들 하잖아요. ‘대구에서 활동할 거라도 제대로 뜨려면 일단 서울 물을 먹고 내려오라’는 충고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우리 밴드의 멤버와 프로듀서, 제작자, 투자자는 모두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거든요. 왜 굳이 다른 곳에 가서 ‘승인’을 받고 와요. 내 지역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음악 활동을 할 겁니다.”

    전씨의 대답은 ‘지방문화 분권’을 외치는 일종의 ‘독립선언’이었다.

    ‘JEIMS’는 데뷔 전 대구지역 시민 축구단인 ‘대구 FC’의 응원가를 불러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실력 있는 우리 밴드’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상태. ‘실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들의 독립선언을 뒷받침한 셈이다.



    ‘지방 열등감 극복’ 의미 있는 시도

    홀로서는 지방문화 “얕보지 마라!”

    대구에서 열린 '컨템포러리 재즈 페스티벌'

    “서울은 지방의 거의 모든 자원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이처럼 갈수록 주변화되고 있는 지방에서 어찌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2001년 9월 대학교수, 연구원 등 전국의 지식인 2757명이 발표한 ‘지역 지식인 선언문’에는 ‘지방 식민지민’으로서의 좌절과 분노가 켜켜이 서려 있다. 특히 전국 예술공연장과 극장의 50% 이상이 서울에 모여 있는 현실에서 지방 주민들이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과 열등감은 상상외로 크다. 최근 바로 이 ‘식민지’의 중심에서 ‘서울공화국’에 반기를 드는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젊은 문화 생산자들은 ‘서울에 올라올 능력이 안 되니 지방서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편견을 뒤집으며 곳곳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역시 대구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록밴드 ‘아프리카’는 송골매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했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밴드. 그들이 발매하는 앨범은 아직 정규 유통망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판매만으로 전국에서 수천장씩 팔려나간다. “서울의 언더그라운드는 이미 주류가 되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대구의 클럽이 좋다”며 대구백화점 플라자에서 매달 한 번씩 정기 공연을 여는 밴드 ‘아프리카’가 대구 지역의 문화 아이콘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2년 7월부터 지역의 예술영화전용관인 ‘광주극장’과 함께 영화제를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시네마테크 ‘영화로 세상보기’도 ‘지구를 지켜라’처럼 서울에서조차 외면받은 영화들을 재개봉하고, 감독 초청 행사를 여는 등 의미 있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북 청주의 영화모임 ‘씨네 오딧세이’는 해마다 인권, 독립영화, 청소년, 한국영화, 일본영화 등을 주제로 20여 차례에 걸쳐 영화제를 열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70, 80대 노인들이 몰려 사는 청원군 문의면 소전마을 등 영화에서 소외된 지역 마을을 돌며 영화제를 열어 서울 중심의 문화단체는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지역 문화 지킴이’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광주광역시의 코마밴드는 지난해 3월 ‘Courage of Mania’라는 싱글 앨범을 발매해 지역보다 수도권에서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을 정도로 전국 밴드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1995년부터 세계 각국의 유명 재즈 연주자들을 대구로 초청해 ‘대구 컨템포러리 재즈 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음악평론가 권오성씨는 이 같은 지역 문화단체들의 선전에 대해 “뿌리 깊은 지방 열등감을 극복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높이 평가했다.

    홀로서는 지방문화 “얕보지 마라!”

    광주의 인디밴드인 '코마밴드'

    “우리나라에서 예술과 문화 영역의 주도권은 모두 서울이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화와 관련해 일자리를 구하려는 이들은 대학 졸업생이든, 예술가든, 연예인이든, 언론인이든, 교수든 서울만 바라본다. 지역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자기 지역의 생산품을 무조건 열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내면에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길 수 있겠는가.”

    지방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와 문화에 대해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 고질적 서울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게 권씨의 주장이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도 “우리나라는 제2의 도시인 부산에 사는 사람들조차 스스로를 ‘시골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다”라며 “서울=중앙, 지방=주변부라는 도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면화하고 있는데 이 같은 ‘피해의식’이 사라지려면 다양한 지방문화가 자라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소식 다루는 ‘전라도 닷컴’ 호평

    이에 발맞춰 지역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서울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담는’ 언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000년 10월 전라도 지역 일간지 출신 기자들이 모여 만든 웹진 ‘전라도 닷컴’(www.jeonlado.com)은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짜임새 있는 내용으로 호평받다 2002년 오프라인 잡지까지 내면서 호남권 최초의 ‘온-오프라인 통합 발간’ 잡지가 됐다. ‘땀냄새 묻어나는 전라도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잡지에 담은 것이 독자층을 넓힌 비결’이라고 말하는 ‘전라도 닷컴’의 황풍년 편집장은 “지방지 기자로 일하며 ‘전라도적인 것’이 무엇인가, 전라도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세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전라도 닷컴’을 끌어가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전라도 닷컴의 소개란에는 “전라도, 마음속에 사무치는 이름입니다. 그 크고 아름다운 이름을 마음에 품고 일할 수 있어서 저희는 기쁘고 보람되고 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라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듬뿍 담긴 인사말이 올라와 있다.

    ‘업그레이드 대전’을 표방하고 있는 ‘대전 포유’도 ‘대전을 제대로 알린다’는 모토로 아파트 밀집 지역에 무료 배포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방문화 독립’을 외치는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는 원래 지역문화가 어느 나라보다 풍성했던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주의 ‘곰나루 축제’나 안성의 ‘바우덕이 축제’처럼 지방 소도시에도 모두 그곳만의 독특한 문화 연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자치’를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지방 분권을 가져오는 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정덕 전북대 교수는 “문화는 예술을 포함해 정신적인 영역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진정한 문화 분권은 지역에 공연장 몇 개를 더 짓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방 주민들 각각이 자기 지역에서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을 때 생겨난다. 각각의 지방이 스스로의 주체가 되어 능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신의 지역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 일고 있는 지역의 문화 자치 바람을 북돋워주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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