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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이주 노동자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입·출국 자유로워 30만~100만명 거주 추정 … 높은 실업률에 이민·이주노동 매력 점차 상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2002년 4월 프랑스 리옹시에서 불법체류자들이 합법화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상 파피에(Sans papier: Without paper)’. 5월8일 그는 프랑스 샤를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 쪽으로 전철(R.E.R.)을 타고 이동하던 기자의 업무용 가방을 날치기했다. 지하철이 정차하기 직전 기자에게 말을 걸어 시선을 뺏은 다음 다른 동료 2명과 함께 가방을 낚아채 달아나버린 것이다. 기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30살 전후에 190cm는 돼 보이는 커다란 키, 떡벌어진 어깨. ‘상 파피에’는 어쩌면 북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자기 나라가 평온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었을 때 아마도 마을을 지키는 훌륭한 전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진국 프랑스로 건너와 전문 소매치기로 전락한 그의 눈빛은 병자의 그것이었다. 흐리멍텅하고 불안에 떠는 눈빛.

그는 왜 프랑스에 와서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하게 됐을까. 내전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조국을 더 빈곤에 빠뜨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탓일까. 이유가 무엇이 됐건 그는 조국과 프랑스 모두에서 뿌리 뽑힌 불법체류자다.

기자가 소매치기당한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을 때 경찰은 그를 ‘상 파피에’라고 불렀다. 이 말은 적법한 체류자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는 존재를 일컫는 프랑스어 보통명사다. 경찰은 이미 일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소매치기들이 주로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왜 경찰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았을까.

“프랑스 경찰은 상 파피에가 아주 위험한 짓을 하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잡으려 들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 ‘상 파피에’ 보통명사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전국불법체류자연대 자원봉사자인 디안느 아미나타(왼쪽)과 투레. 코트디아부르 출신인 투레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불법체류자를 위해 일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10여년간 지낸 한국인 동포 하석건 박사의 말이다. 프랑스 경찰이 상 파피에에게 크게 적대적이지 않은 까닭은 경찰 역시 상당수가 외국 이민자로 구성돼 있고, 근본적으로 불법체류자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단속이 강화돼 경찰에 붙잡히면 그들은 임시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 수용돼 있는 동안 경찰이 출신 국가와 교섭하는데 30일이 넘으면 교섭에 상관없이 다시 풀어줘야 한다.

“프랑스 경찰이 하는 게 그렇다니까요.”

상 파피에들에게 경제·법률 지원업무를 하고 있는 전국불법체류자연대(coordination national de sans papier)의 자원봉사자 디안느 아미나타(43)는 소매치기 사건을 듣고 “걱정 없다. 한국인은 돈이 많으니까”라고 농담을 건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처해진 삶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소매치기 상 파피에와 달리 아미나타는 싸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가는 상 파피에 출신이다.

세네갈 태생인 아미나타는 1989년 먼저 와서 살고 있던 남편을 찾아 방문비자만 갖고 프랑스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세 명씩이나 데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프랑스에 들어왔지만 남편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렸다. 체류허가증을 받기 전 이혼을 당한 그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그러는 동안 남편과의 사이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생겨 불법체류자 신세로 아이 네 명을 건사해야 했다.

“언제든 경찰이 체포해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늘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살았지요. 혼자였고, 불안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람을 오그라들게 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이는 몰라요.”

그러다 일자리를 구한 뒤부터 삶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파리 제18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4분의 1 정도의 급여를 받고 ‘가르송(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1995년 체류허가증을 얻어 합법적으로 프랑스 사회의 일원이 됐고, 지금은 노인들을 곁에서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이 끝나면 불법체류자연대에 나와 상 파피에들의 정착을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그가 전하는 상 파피에들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중국인 상 파피에 친구들이 요즘 명품 의류공장에서 바느질하는 삯으로 얼마를 받는지 아세요? 하루 5유로(7500원)예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이지요. 이런 것 문제 삼아도 주인이 내쫓으면 그만입니다. 근로감독관이 와서 문제 삼아도 사장이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돈 좀 찔러주면 그냥 가버립니다.”

외국인노동자 320만명 실업률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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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들로 북적이는 파리 북역 앞.

불법체류자연대가 설립된 때는 1996년 6월. 불법체류자들은 그해 3월부터 합법화를 요구하며 격렬한 거리 시위와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6월28일엔 생 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해 단식농성까지 벌였고, 프랑스 사회는 이 문제로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인기 여배우 엠마뉘엘 베아르 등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 사회단체들이 이들을 합법화하라고 지원하고 나섰지만 당시 알랭 쥐페 총리는 두 달만에 이들을 강제해산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원래 시위를 하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데 불법단체이기 때문에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홀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돕고 연대하기 위한 싸움이므로 우리는 즐겁게 했습니다.”

이 단체가 사용하고 있는 파리 미롱가의 5평 지하 사무실도 싸워서 얻었다. 마을 체육관에서 농성하자 이웃들이 불편함을 호소했고 급기야 도청이 사무실을 마련해준 것. 전화비와 전기세까지 도청에서 지원받고 있다. 공공기관이 불법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우리가 상 파피에들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바꾸고 사무실을 얻은 것 모두 투쟁의 산물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무기는 바로 싸우는 것입니다.”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시마드 일 드 파랑스 지역사무소에 상담을 받으러 온 외국인노동자들.

프랑스의 외국인노동자는 약 320만명(1999년 인구조사). 외국인노동자 실업률은 22%(2001년 OECD 자료)에 이른다. 매년 조금씩 변동은 있지만 이 수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불법체류자 수가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다는 점. 이주노동자, 이민자의 정착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시마드(CIMADE)에 따르면 불법노동자는 30만~100만명에 이른다. 이는 프랑스가 그만큼 입·출국이 자유롭고, 단기 방문자로 입국해 불법체류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프랑스에 들어오는 모든 이주민들을 관리하는 사회부 산하 국제이민사무소(OMI)도 불법체류자의 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프랑스의 외국인력 정책은 크게 이주 장려를 통한 노동시장 수요 충족, 인구 부족을 메우기 위한 외국인 가족의 영구이민 촉진, 그리고 이주 자들의 프랑스 사회통합 유도 등의 목적 아래 실시돼왔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예컨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실업률이 상승하자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등 제한조치들이 취해졌다.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높은 실업률 탓에 보수적인 파스쿠아 내무장관은 ‘이주 제로’ 정책을 도입해 이주의 큰 요인인 가족 재결합을 엄격하게 막고 프랑스 내 외국인학생들의 졸업 후 취업을 제한했다. 그리고 경찰의 외국인 추방권한을 확대했다.

이 정책은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시위와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스팽 정부는 당시 파스쿠아법 등 이주 관련법이 우수한 전문인력과 학생들의 프랑스 정착을 가로막아 국가에 귀중한 인적 자본의 손실을 가져왔다는 결론에 따라 권고안을 내고 97년 신이민법에 이를 반영케 했다.

10년에 한 번꼴 사면, 체제에 편입

이로 인해 1997년 합법화 과정과 외국인학생, 고도의 전문기술자들의 입국을 촉진하는 조치들을 단행했다. 특히 IT(정보기술)나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문호를 대폭 개방했다. 이는 정보통신과 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겨난 현상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OECD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 크리스토프 뒤몽 OECD 국제이민국 노동담당과장은 “최근 전문직의 이동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어 사무국에서 주요 주제로 관심을 갖고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이주민 가운데 40%는 여성이다. 산업화 초기에는 대부분 단순노무직이나 기술직수요가 많아 남성들이 단독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회가 서비스산업으로 바뀐 뒤 ‘가르송’이나 보모 등 여성 노동자들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자연히 여성 이주자가 많아졌다. 거기에다 먼저 정착하고 있는 남편과 재결합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이주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의 경우 매춘을 목적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보수적인 아시아권과 달리 프랑스 사회는 자유연애를 추구하기 때문에 매춘으로 인한 이주는 많지 않다. 종교적인 요인도 있어 성 문란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아랍권 출신 여성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 출신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춘은 개인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배경에 반드시 불법조직이 있다는 것. 시마드의 일 드 프랑스 지역사무소장인 제롬 마르티네즈(34)는 “프랑스 남부와 동유럽 국경 등지에 진을 치고 있는 불법조직들은 힘이 막강해 지중해상 NATO군을 동원할 정도다”며 “매춘 여성들은 그런 조직들의 강제에 의해 매춘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피해자고, 따라서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최근 이주자로 인한 사회긴장을 해소하고 그들이 보편적 문화규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통합 문제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지원장치가 마련돼 있는데, 설령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이라 해도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부모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아이들은 무상으로 정규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지원도 받을 수 있다. 불법체류자라 해도 기초자치단체장 앞에서 결혼할 수 있으며 사용주가 불법체류자의 임금을 체불할 경우 법원은 사용주에게서 체불임금을 받아주기까지 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세무서 직원이 불법체류자에게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받아간다는 사실이다.

또 평균 10년에 한 번꼴로 사면령을 내려 불법체류자들을 프랑스 사회에 편입시켜왔다. 1981년 13만명, 91년 17만명, 그리고 97년 7만7000여명이 합법화됐다.

외국인노동자 권리 제한한 새 법률

이는 이미 자기 나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이익이고,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엄격한 조치를 취하면 인권 차원에서 국내외적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정책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불법체류 노동자 문제로 끊임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기 위해 ‘새총’까지 준비하는 등 무자비하게 단속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는 데 있다. 불법체류자연대의 아미나타는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국물도 없다”며 프랑스의 외국인 노동정책의 비일관성을 꼬집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우파는 엄격한 반면 좌파는 너그러운 편이다. 시마드의 마르티네즈 소장은 “좋게 말하면 탄력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사코지 재무장관이 만든 외국인노동자에 관한 새 법률(사코지법)이 통과되면서 이들의 권리가 대폭 제한돼 외국인노동자들과 관련 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다. 그 법으로 인해 불법체류자가 결혼과 보건,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동거인의 주소만 써주면 가능했던 은행계좌도 만들 수 없게 됐다. 또한 체류허가 심사(상자기사 참조)도 까다로워졌다.

이런 모든 현상의 뒤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경제문제가 있다. 이주노동자나 상 파피에들에게까지 프랑스 사회가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경제적 기여도 때문이다. 모든 파리지엔들이 바캉스를 떠나는 여름철에 파리의 레스토랑과 슈퍼마켓을 지키는 이들이 대부분 값싼 노동력의 이주노동자들임을 정부 당국자들이 모를 리 없는 것이다.

일부에선 5월1일 신규 EU(유럽연합) 가입국들로 인해 외국인 노동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단견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OMI 알랭 마리엥발 이주담당국장은 “프랑스는 일자리가 부족해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민이나 이주노동은 점차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실업률은 2002년 8.8%, 2003년 상반기만 해도 9.2%에 이를 정도로 높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1%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도 노동자를 불러오기보다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게 더 이익이라고 여긴다.

OECD 사무국의 뒤몽도 “EU 통합 이후 서유럽에서 신규 가입국들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며 “그렇게 되면 그곳에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지 않은 프랑스를 찾는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외국인노동자들은 ‘더 나은 삶’이라는 꿈을 품고 끊임없이 파리 공항으로 밀려들고 한번 들어온 이들은 좀체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5월10일 오후 3시께 파리 북역. 파리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유레일을 탈 수 있는 곳이어서 언제나 외국인들로 북적거리는 지역이다. 흑인과 아랍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97년 프랑스에 온 르완다 출신 불법체류자 비나종(36)과 친구들의 얘기가 흥미롭다.

불법체류자 경제 기여도 커 시선 관대

프랑스 메탈유럽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요즘 뭐 해?”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

“체류허가는 얻었어?”

“못 얻었지.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가긴 싫어.”

“일자리도 없는데 뭐 먹고 사나?”

“그래도 이 나라가 이젠 익숙해졌는걸. 조만간 일자리가 생기겠지.”

고국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이들은 금세 뿔뿔이 흩어져갔다.

합법과 불법, 실업과 노동의 경계를 오가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영위해가는 이주노동자들. 이들의 존재는 프랑스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선진화된 사회, 고령화된 사회일수록 필요성이 더욱 커져가는 존재들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시마드 마르티네즈 소장은 “외국인노동자를 비하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그들이 설령 거짓말쟁이로 보인다 해도 엄연히 프랑스 사회의 필요에 의해 들어와 판매와 건축, 식당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바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얘기 아닐까. 외국인노동자들을 우리 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이처럼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반드시 필요할 듯하다.







주간동아 2004.06.10 438호 (p58~61)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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