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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일제부터 인권유린 상처 생생 … 60살 넘은 병력자들 이젠 궁핍과 사투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한센병력자들의 정착촌인 인천 C농원.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한센병력자들이 1961년에 지어진 허름한 집에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1967년 9월의 일이구먼. 경남 삼천포 영복농원에 모여 살던 한센병력자 40명이 삼천포 앞바다의 비토리섬을 개간하려고 했어.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어느 날 옆동네 주민들이 낫과 대창을 들고 몰려왔어. 우리들이 큰 천막에 숨자 화가 난 주민들은 그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지. 매캐한 연기에 질식하거나 모진 매질에 죽어간 사람이 20명은 족히 넘어. 나는 가까스로 배를 타고 도망을 쳐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도 매질 후유증에 시달려. 머리에 검은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구먼. 보상받았냐고? 누가 그 사건에 책임을 지겠어.”

37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한센병력자 강모씨(73)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직도 그 핏빛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센병에서 회복한 강씨가 타인에게 병을 옮길 위험은 없었지만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평생 한센병력자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80여곳 정착촌서 힘겨운 생계 이어

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

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C농원의 어돈 대표.

한센병 발병률이 극도로 떨어진 지금도 강씨는 ‘생존의 위협’과 싸우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그가 한 달에 받는 돈은 40여만원에 그친다. 게다가 67년 당시 폭행의 후유증으로 허릿병을 앓고 있지만, 치료비의 보험 혜택은 전혀 없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받기는커녕 한센병력자들의 존재마저 잊혀져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센병은 나병, 또는 문둥병이라 불리던 ‘천형(天刑)’과 같은 질병. 현재 의학기술의 발달로 한센병의 치료와 회복이 비교적 쉬워졌지만 한센병자들은 신경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과 안면 및 손, 발의 변형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서 배척받으며 살아왔다. 한센병에서 완전히 회복한 사람들 역시 주변의 오해와 국가의 무관심으로 어두운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한센병력자들의 모임인 한빛복지협회(대표 임두성)는 “과거 국가와 사회에 의해 한센병자들의 인권이 무참히 유린돼왔다”며 “한센병력자들의 불안한 삶을 국가가 보장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국내의 한센병력자들은 1만6666명. 510명의 한센병 활동성 환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병력자들 중 5845명이 전국 80여곳에 이르는 한센병 환자 정착촌에 머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센병력자들은 대부분 60살이 넘는 노년층. 한센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고향에도 돌아갈 수 없게 된 이들은 버려진 땅을 개간해 채소를 심고, 가축을 키우며 자립 근거를 마련해왔다. 농장을 운영하는 한센병력자들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으나, 실제 이들이 운영하는 농장의 70%는 경영난으로 빚더미에 앉아 있다. 경제적 빈곤과 편견이란 이중고가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5월27일 오전 찾아간 인천의 C농원은 침묵이 감돌았다. 빈 공장과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눈에 띄었다. 인천시 외곽에 위치한 이 농원은 61년 한센병력자들의 자립과 정착을 위해 만들어졌다. 과거 축산단지였던 C농원은 공업화의 열기와 더불어 80년대 공장지대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지대에 들어선 영세기업들이 경제난으로 줄줄이 도산했고, 임대업으로 살아가는 한센병력자들은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현재 공장지대가 절반 넘게 비었어요. 더 문제는 뭔지 압니까? 국가에서 농원의 임대료에 대한 세금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는 거요. 한센병력자들이 운영하는 축산농원은 농림부의 규정에 따라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업종이 바뀌면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거지. 거참 이 나라 법은 형평성의 원칙이란 것도 모르나 봅니다. 관할 세무서의 재량으로 ‘면세혜택’도 가능하다는데, 우리 얘기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아요.”

C농원 허돈 대표의 말이다. 한센병력자들은 “지금껏 우리가 국가의 지원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 힘으로 생계를 꾸려온 만큼 최소한의 노후 생계는 보장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던 한센병력자들은 그동안 겪은 ‘편견과 고통’에 대해 묻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케케묵고 어두운 기억을 들춰 차마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편견 이어 가난 한센병 ‘100년 고통’

C농원에 살고 있는 70대 한센병력자 신모씨는 정신지체인 딸과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름도 알려 들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마. 우리 자식들이 보면 큰일 나니까. 옛날 얘기를 꺼내서 오히려 편견만 환기시키지 말라고.”

한 60대의 한센병력자는 꾸짖는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자녀가 자신의 존재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까 봐 고심하고 있었다.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한센병력자들이 자녀를 낳아 키워도 별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센병력이 있는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로 자녀들이 학교 수업에서 격리되는 등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자녀를 결혼시키면서도 길거리를 나서면서도, 한센병력자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한센병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조장하는 목사들의 설교나 일부 언론의 보도는 이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허돈 대표는 “목사들의 단골 설교거리로 등장하는 ‘문둥병자’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고 있다. 일부 언론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한센병자들의 고통을 과장하고 희화화하면서 오히려 병력자들의 상처를 깊게 했다”고 주장했다.

“역사 규명 상처 치유 국가 의무”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인권유린과 노동착취의 역사는 100년에 이른다. 1916년 일제는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 한센병자들을 모아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센병의 전염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1000여명에 달하는 한센병자들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목숨을 건 탈출이 줄을 이을 만큼 한센병자들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우리 정부의 한센병자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 소록도에서 한센병자에 대한 정관절제수술이 자행됐고, 한센병력자들은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60년대 오마도 간척사업은 국가가 이들의 꿈과 희망을 어떻게 빼앗아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62년 한센병력자들은 소록도 인근 지역의 갯벌을 구부러진 손으로 메우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갯벌이 땅이 되어갈 때쯤 외부인들이 이 땅을 점령했다. 한센병자들을 이끌며 함께 개간작업을 벌인 조창원 원장은 오히려 군사정권의 압력에 의해 소록도에서 쫓겨나야 했다. 62년부터 3년간 한센병력자들이 흘린 피와 땀이 고스란히 남의 손으로 넘어가버린 것. 이러한 과정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자세히 묘사되기도 했다.

2001년 5월11일, 일본의 한센병 환자들이 제기한 강제구금, 격리, 정관절제수술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패소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여 과거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사과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에게 1인당 1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지급한 것은 물론이다.

이에 따라 일제시대 소록도에 강제로 격리수용된 한국인 117명도 일본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손해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수십년간 자행된 한센병자들의 인권유린에 대한 보상은커녕 소록도 84인 학살사건, 삼천포 비토리섬 사건, 오마도 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조차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한빛복지협회 임회장은 “일본인들처럼 집단소송을 진행할 여력도 없는 우리 한센병력자들을 위해 국가는 과거의 고통스런 역사를 규명하고, 한센병력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의무가 있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애라도 별 걱정 없이 한번 살아보는 게 한센병력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4.06.10 438호 (p54~55)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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