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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모호 民辯 앞날 고민 중

참여정부 인재 풀 구실 견제 대상 … 업계 생존경쟁 가열 젊은 피 새 역할·활동 주목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정체성 모호 民辯 앞날 고민 중

정체성 모호 民辯 앞날 고민 중

2003SUS 11월 열린 우리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

월 10만원씩 회비 내고 참여할 이유를 상실했습니다.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 오히려 친목단체라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젊은 변호사가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을 평가한 말이다.

최근 들어 권력과 가까워지고 있는 선배들을 걱정하는 후배들의 목소리가 민변 주위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후 민변은 청와대와 행정부에,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핵심인력을 다수 배출했다. 과거 ‘상도동’과 ‘동교동’ 같은 구실을 민변이 대신하는 셈이다.

특정정파에 몸담지 않고 활동해온 변호사 출신인 노대통령의 이력을 고려하면 민변의 부상은 예고된 일이지만 폭과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민변은 행정부에 그치지 않고 17대 국회에 13명의 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정권에 참여한 민변 출신 인사들의 화려함에 비해 민변 자체의 활동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5월29일, 민변 제17차 정기총회가 충남 아산의 한 콘도에서 열렸다. 430여명의 회원 가운데 이날 총회에 참석한 회원은 100여명으로 주요 안건은 지난 2년간의 임기를 끝마친 최병모 회장의 후임을 선출하는 일이었다.



단독 출마한 이석태(51·사시 24회)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신임회장으로 선출됐고 부회장단에는 백승헌(41·25회) 윤기원(44·26회) 이기욱(48·법무관 5회) 변호사가 선임됐다. 그러나 전임 회장의 노고를 치하하고 차기 집행부를 격려하는 축제 분위기보다는 향후 민변 기능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면서 무거운 분위기가 모임을 감쌌다. 과연 정권의 한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민변의 고민은 무엇일까.

친정부 단체? 순수성 의심받아

정체성 모호 民辯 앞날 고민 중

5월 29일 열린 제17차 민변 정기 총회에서 이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최병모 전임 회장.

민변 인사들이 정부 요직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개혁’이라는 참여정부 화두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전문성을 지닌 신선한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민변이 노대통령과 함께 현 정권의 성패에 ‘올인’한 모양새로 비쳐졌다. 정권과 민변의 긴밀한 인적 교류는 보수 인사들의 견제 대상이 됐고 동시에 민변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각종 환경문제에서부터 이라크 파병문제까지 민변은 결국 선배들과 싸워야 하는 곤혹스러운 위치로 몰렸다.

민변의 조심스러운 행보는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탄핵정국 당시 노대통령 변호인단 구성에 최병모 회장이 0순위에 올랐지만 민변 내부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민변 회장이 앞장설 경우 ‘민변=참여정부’란 이미지를 더욱 가중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결국 유현석 한승헌 변호사 등 원로 인권변호사를 포진시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신임 회장단은 민변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고육책을 내놓았다. 국회의원 및 공직자 회원에 대한 회원자격 정지안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 또한 없지 않다.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최재천 변호사는 “악법이 남아 있는 한 민변의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면서 “개혁입법을 민변 출신 의원들과 함께 처리해나가야 하는데 회원권한을 정지하는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총회에서 이 안건은 부결되고 말았다.

민변은 ‘개혁’과 ‘인권’이라는 동일한 목표의식을 지닌 변호사 430여명의 모임이다. 그러나 민변의 정체성은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모호해졌다. 민변 김인회 사무차장은 “민변은 앞으로 인권단체로 활동하며 개혁입법에 앞장서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시국사건 변호와 소수자 인권문제를 주창해온 활동이 인권단체가 아니고 무엇이었냐는 반론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또한 과거 이익단체에 머물러왔던 변호사협회(이하 변협ㆍ변재승 회장)가 점차 제 구실을 하는 점도 민변에는 ‘악재(?)’인 셈이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배출한 민변이 사법개혁 문제에 대해 오히려 침묵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변협은 내부 혁신과 함께 사법개혁 등 현안에 대해 개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업계의 경쟁 심화, 민노당의 급부상

정체성 모호 民辯 앞날 고민 중

현재 민변은 1세대 인권변호사 선배들과 진보적인 3세대 후배들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사진은 5월 25일 작고한 유현석 변호사 장례미사 장면.

지난해 구성된 변협 회장단은 민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변의 창립회원이기도 한 변협 김갑배 법제이사는 “민변이 변협을 장악했다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치적 편향성을 극복한 변협의 목소리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결국 민변은 시민단체와 변호사모임이라는 어정쩡한 양다리 걸치기에서 벗어나 자기 구실을 새롭게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법조계에는 민변 계열이라고 불리는 중소 로펌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돈명, 최병모 변호사를 배출한 법무법인 ‘덕수’와 강금실 장관을 배출한 ‘지평’, 그리고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를 배출한 ‘해마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로펌은 소속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여타 로펌으로 확산되지 않고 오히려 축소되는 형국이다. 국내 변호사업계의 생존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각 전문 인권단체의 외곽 지원에 머무르다 보니 민변보다 민노당 등 외곽으로 발길을 돌리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면서 민변에 참여하는 젊은 변호사의 열기는 저조한 편이다.

해마루의 박갑주 변호사(34)는 더욱 적극적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도 민변이 사회·노동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인권변호사들의 활동무대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5월25일 우리나라 1세대 인권변호사라고 할 수 있는 유현석 변호사(77)의 영결식이 있었다. 민변 창립 때부터 조직의 가장 큰 어른이었기에 장례식은 민주화운동을 이끈 인사들과 법조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세대(1920~40년대생) 인권변호사가 하나 둘씩 무대 뒤로 사라지고, 2세대(40~50년대생) 변호사들의 시대가 활짝 꽃피우고 있다. 과연 3세대(60~70년대생) 젊은 인권변호사들은 민변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갈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4.06.10 438호 (p46~47)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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