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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거부당하는 미국

제국 일방통행 STOP!

반미·반세계화 투사들 굳건한 국제 연대 … 다양성 가치 설파 인터넷이 주요 무기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제국 일방통행 STOP!

제국 일방통행 STOP!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서 참가자들이 성조기를 태우고 있다.

색동 앵무새 과카마야. 과카마야는 왜 오색 날개를 갖게 됐을까.’ 마야 원주민의 전설은 이렇게 전한다. “최초의 신들이 과카마야의 날개를 형형색색으로 칠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색깔은 다채롭다’는 것과 ‘생각들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지도자 마르코스가 지은 우화(‘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한 토막이다.

이라크 침공 반대 범지구적 ‘길거리 권력’ 탄생

이 이야기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철학의 일단을 보여준다. 바로 다양성이라는 가치다. 이들은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의 패권주의가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붕괴, 전 지구적 환경파괴, 인간성 말살과 감시사회의 도래를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이들에게 반세계화, 반패권, 반미국 중심은 ‘같은 말’이다.

물론 ‘반미(反美)’와 ‘반세계화’라는 용어를 완전히 동일시해 사용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양자 간에는 미국의 ‘무장한 세계화’(칸군 ‘무역과 전쟁’ 포럼 발제문)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반미 열풍을 준비해왔다. 그중에는 세계적 석학도 있으며 정치인, 과학자, 저널리스트, 환경운동가, 무장게릴라, 금융전문가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말과 글, 행동, 무엇보다 국제적 연대를 무기 삼아 미 패권주의 몰락을 예언하고 그 가능성을 증진시키는 데 힘써왔다. 이들은 ‘그날 이후’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외친다.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세계사회포럼’ 표어)

하지만 반미를 전 지구적 현상으로 폭증케 한 일등공신은 인터넷이다. 2003년 2월15일 세계 60여개국, 600여개 도시에서는 일제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참여한 ‘세계시민’의 수는 약 1000만명. 인터넷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시위를 두고 미국이란 슈퍼파워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범지구적 차원의 ‘길거리 권력’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는 인터넷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다. 노트북 컴퓨터와 검은색 스키마스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1994년 1월1일 0시, 북미자유협정 발효일이던 그날 마르코스는 멕시코 치아파스주 라칸돈 정글에서 ‘죽음의 인터내셔널’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4차 대전’을 선포했다. 이는 최초의 반세계화 투쟁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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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인터넷 게릴라이자 커뮤니케이션 게릴라’인 마르코스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주장한다. 정글 속 전장에서 퍼져나오는 현란하고 해학적인 언어는 마르코스를 전 세계 진보·좌파 진영의 우상이자 이 시대 저항담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오사마 빈 라덴도 인터넷을 적극 활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라덴은 전용 제트기 대신 아프가니스탄 사막의 참호를 택했다. 1992년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을 계기로 확고한 반미주의자가 된 그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테러집단 ‘알 카에다’를 조직, 마침내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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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그러나 그는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중동의 대표적 민중지도자이자 군사전략가, ‘성전(聖戰)’의 투사다. 미국으로서는 이보다 더 두렵고 증오스러울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미국은 국제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 국가”

월든 벨로(필리핀대학 사회학 교수)는 아시아의 대표적 진보주의 석학이자 반미운동가다. 그의 저작 ‘어두운 승리’는 지구 남반구를 통째로 종속시키려는 미국의 ‘야만적 음모’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아울러 1980년대 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이 겪은 ‘상실의 10년’과 1990년대 한국 등 동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를 접목, 양자 모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려는 미국 자본의 완벽한 승리였음을 밝힌다. 제3세계 경제위기 때마다 ‘구원자’로 등장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안이란 실은 미국기업의 이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벨로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영국 금언을 빌려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과 이웃 나라들이 ‘오늘 함께 매달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내일 하나씩 목 매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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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학자가 이매뉴얼 월러스틴(미국 빙햄튼대학 사회학과 수훈교수)이다. 1974년 펴낸 ‘근대세계체제’ 1~3권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말하는 근대세계체제란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경제’다. 그 속에서 잉여분은 핵심국가가 독차지하고, 이로 인해 주변국가는 더욱 허덕이게 된다. 최근 번역된 책 ‘미국 패권의 몰락’에서 월러스틴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미국의 쇠퇴를 말한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초강대국,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미국의 성장이 곧 그 헤게모니를 소멸시킬 조건들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노암 촘스키(미국 MIT 언어철학부 석좌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29살 때 쓴 책 ‘통사구조’로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지만, 그는 상아탑 속 학자가 아닌 비판적 지식인의 삶을 택했다. 촘스키는 “미국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제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라고 몰아붙인다. 그의 책 ‘불량국가’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독재정권을 지지하거나, 민중이 선택한 권력을 전복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불사하는 미국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번역된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는 미국의 정치, 경제, 언론권력의 잘 짜여진 프로파간다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2002년 10월, 룰라 다 실바 노동자당 후보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자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말했다. “룰라 당선은 신선한 충격이자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예고하는 경사다.”

그의 당선 이후 에콰도르(루시오 구티에레스), 아르헨티나(네스토르 키르츠네르)에도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세계 4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이미 확고한 반미주의자다.

룰라는 ‘다섯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브라질 북동부 벽촌에서 태어나 7살 때부터 행상을 하고 15살에 선반공이 됐다. 19살 때 프레스 기계에 한쪽 새끼손가락을 잃었으며, 24살 때는 돈이 없어 만삭의 아내와 자식을 한꺼번에 잃어야 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세 끼 밥’을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던 그는 이제 ‘미국의 앞마당’에서 거대한 반역을 꾀하고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지만 그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브릭스(Brics: 브라질 인도 중국 러시아) 협력 시대’ 개척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맞서려는 전략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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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주의)의 이론적·실천적 지도자인 반다나 시바(과학·기술·생태학 연구재단 리더)를 반미주의자라 칭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을 위한 세계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정확히, ‘식량 전체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을 향해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를 ‘생명과 다양성의 딸’로 거듭나게 한 것은 칩코운동(1973년 히말라야의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시작된 벌목 반대운동)이다. 벌목공들이 전기톱을 휘두르려 하자 여성을 주축으로 한 지역민들은 나무에 자신의 몸을 묶고 외쳤다. “나무를 베려면 우리 몸도 함께 베라!”

히말라야 여성들의 결연한 저항은 인도 정부로부터 15년의 벌목금지 조처를 이끌어냈다. ‘칩코(chipko)’는 인도어로 ‘껴안다’는 뜻이다.

시바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자유무역은 부국이 빈국의 식량권과 생명권을 강탈하기 위한 구실이며, 특허와 지적 재산권은 자연의 수확을 약탈하는 생물해적행위라는 것이다. “지구의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소수의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하다.” 시바가 자주 인용하는 간디의 말이다.

이들 외에도 세계에는 수많은 반미·반세계화의 이론적·실천적 투사들이 있다. 미국 금융의 ‘채권자 독재’를 실증적 연구를 통해 비판한 경제학자 프랑수아 셰네(파리8대학 협력교수), 세계적 문제작 ‘제국’으로 ‘죽은 공산주의선언’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탈리아 좌파 지식인의 태두 안토니오 네그리,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평화연구의 창시자 요한 갈퉁(초월적 평화네트워크 소장), 사회생태학의 창시자로서 현대 아나키즘의 맥을 잇는 머레이 북친(미국 사회생태연구소 명예소장).

미국의 앞마당에서 반역 꾀하고 있는 룰라

더욱 실천적인 인사들로는 지속가능한 경제혁명을 주장하는 프랑스 녹색당의 이론가 알랭 리피에츠, 외환위기 상황에서 월가의 금융전문가들과 일전을 치러 ‘항복’을 받아낸 말레이시아의 개발독재자 마하티르, 환경운동의 고전이 된 ‘오래된 미래’의 저자로서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를 이끌고 있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난해 유전자조작작물 파괴행위로 유죄를 선고받아 세계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프랑스의 대표적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등이 있다.

세계은행 부총재 재임 시 아시아 외환위기에 대응하는 IMF의 고금리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는 반세계화가 아닌 선별적 세계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다른 인사들과 노선 차가 크나,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확고한 비판으로 인해 세계 진보세력의 든든한 우군으로 인정받고 있다.







주간동아 437호 (p24~28)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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