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드라마 웨스트윙 “대통령 고마워요”

백악관 이야기 다룬 美 시리즈물 … 노대통령 “자주 본다” 언급 후 관심 고조, 앙코르 방송 돌입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5-27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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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웨스트윙 “대통령 고마워요”

    노무현 대통령의 드라마로 불리는 ‘웨스트 윙’의 한 장면

    개각을 구상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찾는 사람은 아마도 레오, 샘, 조쉬가 아닐까. 지난 3월 탄핵이란 장벽 앞에서 그가 떠올린 것이 바로 미국의 백악관 참모진 이야기를 다룬 ‘웨스트 윙’(케이블 캐치온에서 방송)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도대체 뭔지 한번 보자’며 찾는 프로그램도 ‘웨스트 윙’이다.

    지난해 8월, 그리고 올해 3월11일 탄핵 정국의 불씨가 된 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해 화제가 된 미국 NBC 드라마 ‘웨스트 윙’의 시사회가 5월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홀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대개 노무현 대통령 지지 사이트로 유명한 서프라이즈 회원들과 탄핵 국면에서 이름을 날린 디씨인사이드 회원 등 네티즌들이었다.

    1999년 미국 NBC에서 처음 방송된 ‘웨스트 윙’은 영화 ‘대통령의 연인’을 쓴 아론 소킨과 인기 시리즈물 ‘ER’의 프로듀서 존 웰스가 함께 만드는 시리즈물. 제목 ‘웨스트 윙’은 백악관 서쪽 별관 대통령의 보좌관 및 비서실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사실상 미국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지다.

    ‘웨스트 윙’은 딱딱한 정치적 소재를 대통령과 참모진들이라는 ‘사람’ 이야기로 바꿔 보여줌으로써 방영 후 매년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웨스트윙 “대통령 고마워요”

    시사회에 앞서 열린 서프라이즈 시상식.

    ‘웨스트 윙’의 대통령은 민주당 바틀렛(마틴 쉰)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백인 엘리트이며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약점’이 있다. 농담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언론 담당 비서실장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지병이 있는 것을 숨겨 후에 청문회까지 간다. 게다가 딸은 흑인과 사귄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또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할리우드를 사랑하는 자유주의자’, ‘무례한 애들’이라고 맹공을 당하는 ‘웨스트 윙’의 참모진들도 청와대의 386 참모진들을 떠올리게 한다.



    시사회엔 정치인들도 참석 ‘북적’



    시사회에서 상영된 에피소드 ‘소신 있는 대통령’은 재선을 의식해 매사 타협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대통령에게 ‘왕수석’인 레오가 “선거보다 중요한 건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공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켜 그 결과를 우리 것으로 만들자”고 합의하는 데서 끝난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8월 처음 ‘웨스트 윙’을 언급한 지 나흘 만에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개방형 브리핑제 등도 백악관에서 상당 부분 따왔다. ‘웨스트 윙’의 형태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그의 참모진들이 정책과 정치, 언론 홍보 등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던 인재들로 이루어진 ‘웨스트 윙’에 필적할 만한가? 그들도 대통령에게 ‘감히’ 직언을 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백악관의 참모진들만큼이나 ‘쿨’한가? 노대통령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웨스트 윙’은 사실 미국적 애국심에 기초한 드라마다. 참모진들은 이혼했거나 알코올중독이었거나 콜걸과 사귀는 등 ‘인간적’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그뿐이다. 그들은 미국에 충성하는 성실한 슈퍼 엘리트들일 뿐이다.

    드라마 웨스트윙 “대통령 고마워요”

    유시민 의원이 참석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날 시사회는 탄핵 정국과 총선에서 활약한 네티즌들에 대한 시상을 겸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패러디 고수’ 네티즌들은 노대통령이 청와대로 복귀한 것을 축하하는 패러디 작품을 액자로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웨스트 윙’ 시사회 후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과 문성근씨가 토론회를 연다고 공지됐지만 두 사람 모두 일찍 자리를 떠 토론회는 무산됐다. 토론회를 보러 온 사람들과 행사를 후원한 워너브라더스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단지 유시민 의원이 “향후 당의 진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텐데 이것이 혼선으로 나타나도 흔들리지 말고 지지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약속과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거는 ‘웨스트 윙’의 참모들은 역시 드라마에만 있는 인물들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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