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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는 개각 盧 집권 2기 ‘삐끗’

고건 총리 ‘각료제청권’ 거부 첫 단추 진통 … 체감경기 회복·안보 불안 극복 ‘발등의 불’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꼬이는 개각 盧 집권 2기 ‘삐끗’

꼬이는 개각 盧 집권 2기 ‘삐끗’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월15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제는 항해를 시작할 때.”

5월20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이정우) 측이 참여정부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기 대장정인 셈. 정책기획위원회 측은 참여정부가 지난 1년간 만든 105대 국정과제 로드맵을 항해지도로 제시했다. 105대 국정과제의 핵심은 사회 전반의 개혁과 참여민주주의 확산, 혁신에 바탕을 둔 지속 가능한 성장, 격차의 완화와 공정한 분배 등 세 가지. 정책기획위원회는 이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지난 1년간 42차례의 국정과제회의 등 5000여회에 걸쳐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총선을 끝낸 노대통령의 자신감 뒤에는 이 같은 준비작업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대장정에 나선 노대통령의 첫 번째 작업은 개각. 구상은 일찌감치 끝났다. 남은 건 실행. 그런데 상황이 매끄러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고건 총리가 ‘도장 찍기’를 거부, 항해에 제동이 걸렸다. “물러날 총리가 새 각료를 제청하는 것이 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이 고총리의 입장. 청와대가 압박을 가하자 고총리는 ‘사퇴’로 맞섰다.

고건 벽에 막힌 청와대는 할 말이 없다. 원칙론으로 보면 틀린 주장이 아닐 뿐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도 같은 주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5월 중순, 총리 제청 문제와 관련 “순리대로 해야 한다”며 고총리 각료제청권 행사를 ‘있을 수 없는 일’로 표현했다.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열린우리당 당선자)도 TV에 출연 “참여정부는 형식적인 절차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鄭-金’ 파워게임 양상에 곤혹

그러나 노대통령이 5월 말 개각으로 결심을 굳히자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고총리 제청권 행사에 대해 “위법이 아니다”거나 “(고총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쏟아냈다. 총리실도 청와대의 상황 변화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고총리의 원칙론에 막힌 청와대 측은 개각 시기를 6월 말로 연기할 예정이지만 집권 2기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너무 많은 힘과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개각 명분이 분명치 않은 점도 혼선을 부채질한다. 노대통령은 5월20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지도부와 함께한 만찬에서 개각 얘기가 나오자 “아직 총리하고 비서실장하고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23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 자리에서 “(지난 18일) 국무회의 때 그리고 이후 또 한 번 고건 총리를 만나 각료제청권 행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노대통령이 개각 진행 상황을 공개하기 꺼리는 이유에 대해 “명분이 없기 때문”으로 잠정 추측한다. 특히 언론의 경우 “노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며 개각에 나섰지만 우리당 차기 주자들의 경력관리 차원에서 추진하는 개각”이라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유력 차기 주자 진영에서는 “나는 쭛쭛쭛로 갈 것”이라는 등 마치 장관직을 골라 가겠다는 듯한 입장이 터져나오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교체 대상자들 주변에서는 “인사조치를 당할 정도로 큰 실수를 저질렀거나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개각과 관련 차기 주자들의 신경전은 때 이른 파워게임 양상으로 비화, 갈 길 바쁜 노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 ‘정동영-김근태’의 때 이른 라이벌 의식이 화근이다.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 모두 통일부 장관직을 원했다. 앞으로 ‘통일’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국민 지도자로 변신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5월23일 현재 정 전 의장 측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반면 김 전 대표 쪽에서는 불만이 터진다. 특히 김 전 대표 쪽에서는 “김 전 대표가 (정 전 의장 측에) 당한 것 같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꼬이는 개각 盧 집권 2기 ‘삐끗’

2004년 4월8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지구당 사무실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상임위원회의에 정동영 전 의장(오른쪽)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손을 잡고 들어서고 있다.

김 전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통일부 장관을 하겠다면 민족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삶에 배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정 전 의장 측은 “인사는 대통령이 하는 것이며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랫사람의 도리”라는 말로 맞받았다. 정 전 의장 측은 김 전 대표 측이 “언론플레이를 심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같은 비난이 김 전 대표 측에서도 터져나온다.

신경전이 가열되면서 상대편을 폄하하는 발언도 난무한다.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김 전 대표의 형들 문제와 관련 “통일부 장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뒤를 “청와대가 다른 부처 장관을 제의하자 정 전 의장 측이 직급이 낮다고 버텨 청와대 측이 못마땅해한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당내에는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재야세력들과 정 전 의장 측 인사들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세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꼬이는 개각 盧 집권 2기 ‘삐끗’

5월24일 고건총리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세종로종합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당사자인 통일부는 정치인 출신 장관 등장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외교와 통일 문제는 열정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통일부의 시각. 정치인들에게 떡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중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노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뽑아 든 ‘김혁규 총리’도 화약고로 등장했다. 6·5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목적 외에 다양한 경험과 경륜, 국제감각 등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집권 2기 내각을 진두지휘할 총리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판단이다. 그러나 그런 김 전 지사가 야당 앞에 서면 ‘배신자’일 뿐이다. 야당은 그런 배신자를 ‘찍어’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이 공개적으로 이 흐름에 동참한 것이 노대통령으로서는 아픈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자 우리당 내부 분위기도 미묘하게 흐른다. 주화(主和)파들은 “17대 초반부터 굳이 야당과 충돌해야 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야당과 진검승부를 할 정도로 ‘김혁규 총리’ 카드가 가치가 있느냐는 회의론이다. 노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김혁규 카드’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혁규 카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개혁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리당 내 개혁파 심상찮은 견제

한 언론이 22~24일 우리당 당선자 152명을 상대로 김 전 지사의 총리 지명에 대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120명 중 찬성이 81명, 반대 5명, 판단 유보 21명 등으로 나타났다. ‘판단 유보’ 및 ‘답변 거부’ 입장을 밝힌 당선자 중 일부는 “김 전 지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고 밝혀 의외의 결과를 시사하기도 했다.

‘김혁규 총리’ 카드는 야당 반대를 전제로 할 때 당내에서 2명만 반대하면 자칫 부결될 수 있다. 총리 인준은 무기명 비밀투표가 원칙이다. 청와대는 최근 이런 기류를 읽고 당내 인사들의 의중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한 초선의원은 “불쾌해 의견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 문제뿐만 아니라 실용주의에 입각, 우향우 행보를 벌이는 친노(親盧) 우파 세력에 대한 개혁파 세력의 견제도 심상찮다. 이라크 파병과 국가보안법 등 현안들을 둘러싼 우리당 내부의 갈등은 갈수록 골이 깊게 패일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은 문희상 당선자 등을 통해 정치적 조율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욱일승천하는 초선 국회의원들의 힘은 생각처럼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당과 정치를 적절하게 조율, 최적의 집권 환경을 만들어야 할 청와대는 내부 문제로 복잡하다. 노대통령은 정무수석을 배제하는 새로운 청와대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는 정치적 직관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노대통령의 구실이 커질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청와대는 집권 1년에서 가장 훌륭한 치적으로 새 인사시스템의 도입을 꼽고 있지만 여전히 의욕이 앞선 ‘아마추어리즘’으로 정책 결정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386 등 코드 인사를 배제하는 대신 전문 관료들을 대거 발탁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의문부호를 품고 있다.

대장정에 나선 노대통령의 골칫덩어리 가운데 하나는 경제문제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바닥을 기고 있고, 여론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는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여기에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로 인한 안보 불안도 부담이다. 자주국방론이 등장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국방비 부담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이 집권 2기의 시작과 함께 자기 앞에 가로놓인 이런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437호 (p42~4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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