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밤새 긁는 아이 ‘꿈나라 소원’ 이루나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 ‘일말의 희망’ … 비스테로이드성 치료제 환자들 주목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5-27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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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긁는 아이 ‘꿈나라 소원’ 이루나

    대한피부과학회가 주최한 아토피성 피부염 무료상담에 참여한 환자 및 환자 부모

    서울 반포동에 사는 주부 김경희씨(41)는 딸 아림이(12)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어릴 때부터 심한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아온 탓에 그 흔한 과자 한번 먹어보지 못한 아림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흉측한 상처자국은 또래 아이들에게서 ‘왕따’당하는 이유가 됐다. 김씨는 아림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은 것도 모두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려움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키가 자랄 수 있었겠느냐는 것.

    딸아이의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김씨는 안 해본 게 없다. 키토산에서부터 오가피, 배독요법에서부터 체질을 바꾸어준다는 민간요법에 이르기까지, 아토피성 피부염에 좋다고 하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구해다 써보았다. 그러나 결국 내린 결론은 아토피성 피부염은 난치병이라는 것. 지금까지는 가려움증이 심해지면 임시방편으로 피부과에 가서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제제를 처방받아왔다. 스테로이드 제제가 딸아이의 피부를 쭈글쭈글하게 만들까 두렵기도 했지만 가려움증 때문에 아림이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성격이 예민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잠도 못 자며 아이의 피부를 어루만지고 긁어주기를 7년, 김씨 부부는 이제 우울증 증세마저 보이고 있다.

    밤새 긁는 아이 ‘꿈나라 소원’ 이루나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한 아이의 다리.

    아토피성 피부염은 주로 얼굴, 머리, 목, 팔, 다리 등에 생기는 만성피부염의 일종으로 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가려워서 긁다 보면 피부가 점점 두꺼워지고, 피부가 두꺼워질수록 아토피성 피부염은 더욱 심해진다. 가려워서 긁으면 더 가려워지고, 그래서 또 긁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그까짓 피부병쯤이야”라고 말할지 모르나 아토피성 피부염의 가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이런 아토피성 피부염이 전 국민의 15%에서 발생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성인에게서도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년 동안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는 6.7% 증가했으며 그중 10대는 30%, 20대는 22%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부작용 없이 염증·가려움 완화

    존재 자체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수 있으나, 존재로 인한 괴로움은 무엇보다도 큰 병인 아토피성 피부염.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만 무성하며, 병원에 가도 가려움증과 염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스테로이드 제제나 항히스타민제만 처방되고 있다. 그외 손상된 피부를 통한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특히 스테로이드 제제는 장기간 사용할 경우 피부가 얇아지거나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며, 심한 경우 어린이들의 성장에 큰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 환자나 그 부모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피부과를 찾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면역성 약화, 항생제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다른 질환에 걸리기 쉽고, 질환에 걸려도 잘 낫지 않는 것도 부작용 중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 비(非)스테로이드성 치료제가 나오면서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후지사의 프로토픽과 한국노바티스사의 엘리델이 바로 그것. 이 두 약물은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면역세포에 직접 작용해 아토피성 피부염에 나타나는 염증과 가려움증을 완화시켜준다. 또한 비스테로이드 제제이기 때문에 기존의 스테로이드 제제가 갖는 부작용이 없다는 게 큰 장점으로 꼽힌다.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들 준영이(10)에게 5~6개월 전부터 프로토픽을 이용한 치료를 받게 하고 있는 주부 김현미씨(37)는 “수많은 방법을 써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어 프로토픽에 대해서도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약을 바른 지 한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가려움증을 덜 호소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피부 자체가 몰라보게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밤새 긁는 아이 ‘꿈나라 소원’ 이루나

    (위)와 아토피성 피부염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지난 4월 국내에 출시된 엘리델의 임상에 참여했던 노영석 한양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프로토픽이나 엘리델 같은 면역조절제는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부담이 없다”며 “아토피성 피부염 조짐이 보일 경우 바로 사용하면 재발을 억제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로토픽이나 엘리델은 모두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며, 반드시 2살이 넘은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에게만 투여가 허락된다.

    한편 아토피성 피부염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과민반응을 일으켜 보통사람들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는 음식이나 흡입성 물질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대표적 면역성 질환. 때문에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공해와 대기오염, 인스턴트 음식, 증가하는 스트레스 등 면역체계를 교란하는 생활 환경을 피하는 게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하는 기본자세다. 가급적 아토피성 피부염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애완동물, 담배연기와 집먼지 진드기 등은 멀리하거나 제거하는 게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환자 부모의 인내심이다. 박천욱 한림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자녀의 고통에 애가 탄 부모들이 이것저것, 검증되지 않은 치료 방법들에 현혹돼 쫓아다니는 것”이라며 “‘체질 개선이다’ ‘완치할 수 있다’ 등의 광고문구에 휩쓸리지 말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으로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것만이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의 정도(正道)”라고 주장했다.

    면역체계 교란 생활환경 피해야

    대한피부과학회(이사장 김형옥·가톨릭대 의대 피부과 주임교수)가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환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주부와 아이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을 직접 방문,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한 무료상담을 실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 등에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지만, 오히려 잘못된 정보로 인해 환자들만 골탕 먹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의사들이 발벗고 나선 것. 5월13일과 15일 이마트 분당점과 성수점에서 실시한 아토피성 피부염 무료상담에는 할인점을 찾은 고객 중에서만 100여명의 환자들이 몰렸으며, 이들은 학회 소속 피부과 전문의들한테서 상세한 진단을 받았다.

    박천욱 교수는 “지금까진 병원에서도 스테로이드 제제나 항히스타민제 등을 이용, 아토피성 피부염의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게 현실이지만, 최근 비스테로이드성 면역조절제와 같은 약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만큼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도 희망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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