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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거부당하는 미국

지구촌 곳곳 美軍 군화 소리

전쟁 위험 없는 곳도 ‘미군기지’ 대대적 확충 … 2001년부터 중앙아시아·중동 기지 급증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지구촌 곳곳 美軍 군화 소리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군에 들어와 이라크인 수감자에게 자위행위를 지시하는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학대행위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 이전엔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할 만큼 성실한 시민이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학대사건으로 구금된 잉글랜드 일병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대학 등록금을 벌고자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미군은 잉글랜드 일병처럼 미국을 위해 일할 신병을 뽑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군대를 소재로 한 PC게임을 공짜로 나눠주거나 군 경력의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강조한 광고를 거액을 들여 만드는 등 미군이 젊은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쓰는 예산은 엄청나다.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에 배치된 ‘잉글랜드 일병’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유지하고 또 과시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동안 ‘잉글랜드 일병’을 원하는 미군기지의 수가 매우 빠르게 늘고 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세계의 다수가 반대하는 전쟁을 일방적으로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당장의 군사적 목적’과는 무관한 새로운 기지를 ‘전리품’으로 대거 획득했다.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미군기지 확대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의 기지 수 증가가 특히 눈에 띈다.

‘선제공격 독트린’ 지구 전역 통제 야심

미국 국방부(펜타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100명 넘게 주둔한 국가는 38개국(725개 기지)에 이른다(2001년 9월 기준). 미국 군사력의 원천인 세계 전역의 미군기지의 정확한 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펜타곤에서 간헐적으로 발행하는 ‘기지보고서’ ‘인력배치현황’ 등에서 대략적인 수치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공식간행물은 ‘공식적인’ 것만 담고 있게 마련이다. 이들 보고서에서 공공연한 비밀인 이스라엘 내 미군기지 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아프리카·유라시아 휘감는 ‘기지의 띠’ 구상

미군기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주한미군을 포함해 자국군의 해외기지를 재조정하고 있다. 조정 규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로 알려졌으나 미군의 해외주둔기지 현황과 마찬가지로 공식 발표된 바 없으며 미국 언론에 의해 윤곽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선제공격 독트린’에 따라 지구 전역을 미군에 의해 통제하겠다는 것이 재배치 전략의 핵심이다. 세계 어느 곳에나 즉시 투입이 가능하도록 군을 경량화하고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거점망(기지)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미군기지가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과거 냉전시기 해외주둔 미군의 임무는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재래식 군사력을 미국이 원하는 지역에 투입 △유사시 핵 전쟁 준비 △인계 철선(한국과 옛 서독) 역할 △미국의 힘 상징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은 냉전 이후 미군의 해외주둔 임무가 △전 지구적 군사적 우세 유지 △세계적 통신 감청 △석유자원 통제 △군산복합체의 일거리 확충 등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미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미군 재배치 전략은 존슨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새로운 기지는 국지적 분쟁과 테러집단의 준동이 활발하다고 지목된 북아프리카-유럽발칸지역-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이른바 ‘활모양 불안정 지대(arc of instability)’를 따라 배치된다. 요컨대 서유럽과 동북아시아에 집중 배치된 미군을 동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해외 미군기지는 기능별로 △전력투사근거지(PPH) △주요 작전기지(MOB) △전진작전기지(FOB) △안보협력대상지역(CSL) 등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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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미군기지 통제센터

현재 유럽 주둔 미군 11만여명 가운데 7만여명이 독일에 배치돼 있다. 아시아의 미군은 주한미군 3만7000여명, 제7함대 병력 1만5000여명을 포함한 주일미군 5만여명이 핵심이다. 이라크를 제외하면 재래식 병력의 대부분이 한국 일본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것. 미국 언론에 따르면 독일 주둔 미군 가운데 상당수가 동유럽 국가들로 옮겨진다. 소규모 정예부대 혹은 인근지역에 즉시 투입 가능한 형태로 기지 수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전 세계적 미군 재배치가 부시 행정부의 구상대로 이뤄지면 ‘기지의 띠’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휘감는다. 석유 부국인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세네갈 가나 말리 케냐(‘LA타임스’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 미군기지 신설이 검토 중이다)를 거쳐 남유럽(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전통의 우방인 영국, 현재 7만여명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을 거쳐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지나 곧 나토에 가입할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이어진다.

유럽을 종횡으로 관통한 이 띠는 석유의 보고인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를 지나 이스라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찍고, 또 다른 석유의 보고인 카스피해 인근의 카프카스3국(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을 거쳐 상가포르 태국을 지난 뒤 한국과 일본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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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미국 제15 해병원정군 기지 앞의 판지에 매직으로 써넣은 도로방향 표지판. ‘정의의 기지’라는 명칭과 함께 미국과 호주 및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와의 거리, 사방에 깔린 탈레반을 나타내는 표지가 적혀 있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기지의 띠’는 석유자원을 통제하면서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원천 봉쇄할 수 있다. 유럽 언론들은 “미국이 ‘구 유럽’에서의 입지 약화를 옛 공산주의 국가들에게서 보상받고 석유 송유관 벨트인 이라크 코소보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전체를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의 최근 행보는 ‘기지의 제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해외주둔지에서 수도승같이 생활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장교들과 잉글랜드 일병처럼 군을 선택한 사병들은 ‘기지의 제국’을 떠받친다. 미국의 진보적 학자들은 미국의 해외기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꼽는다. 제국주의는 미국의 정치 전통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단어다.

로널드 레이건은 ‘기지의 제국’이던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전 지구적으로 확대돼가는, 전쟁이라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지역에까지 똬리를 틀고 있는‘미군기지’는 팍스아메리카를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로부터 거부당하기 시작한’ 미국 또한 지구를 거쳐간 역사 속 ‘기지의 제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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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함





주간동아 437호 (p34~36)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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