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제주도 발자국 화석 나이 틀렸다”

문화재청 5만년 전 구석기인 것으로 발표 … “상황 고려할 때 4000년 전 신석기 후기에 형성”

  • 강순석/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연구원·박사 kss4389@provin.jeju.kr

    입력2004-04-0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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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발자국 화석 나이 틀렸다”

    사람 발자국과 동식물 화석들이 대거 발견된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바닷가(큰 사진). 지난 2월6일, 문화재청과 한국교원대 김정률 교수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작은 사진 위). 상모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사람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

    2월 초, 문화재청은 제주에서 5만년 전 구석기인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구석기인이라는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문화재청이 발표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가는 듯하다. 지역 연구자들을 무시한 문화재청의 독선과 독단이 불러일으킨 평지풍파였지만, 역으로 제주도의 특수한 자연환경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애당초 화산섬인 제주도에 5만년 전 구석기인이 살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첫째는 5만년 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다. 이 시기는 지질학적으로는 신생대 제4기인 홍적세 후기에 속하고, 고고학적으로는 중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빙하기다.

    빙하가 가장 번성한 1만5000년 이전까지는 바닷물이 약 150m나 내려가 지금의 제주도 해안은 대부분 육지로, 당시 해안선은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람 발자국이 발견된 퇴적층은 하모리층으로 조간대의 바닷가에서 만들어진 지층이다. 그런데 5만년 전 빙하기에 이곳은 바닷가가 아니라 육지였기 때문에 고(古)환경적으로 적절치 않다.

    5만년 전 빙하기 때 제주 해안은 육지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현재의 해안선 모습과 같은 환경에서 송악산 화산이 바닷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석 발견 지점이 현재의 모습대로 해안선에 위치한 시기는 적어도 1만년 이후인 충적세 시기다. 더구나 지난번 발표한 발자국 화석들 가운데 코끼리는 충적세 기간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 않았다.

    만일 발견한 화석의 시대가 5만년 전의 빙하기라고 한다면 코끼리는 더욱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송악산 응회암 하부의 재동 퇴적층에 포함되어 있는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 결과는 4000년 전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둘째는 사람 발자국 화석과 동물 발자국 화석들이 동시에 산출된다는 고환경 해석의 문제. 필자는 1999년 이번에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인근의 송악산 응회암에서 새 발자국을 확인하여 학계에 발표했다. 더욱이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2001년 해안선 지질조사를 통해 사슴과 말 등 수많은 동물 발자국들이 발견된 곳이다.

    당시 이 발자국 화석들은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약 2300년 전의 상모리 유적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그 근거로 상모리 패총에서 사슴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 뼈와 이빨이 조개껍데기와 함께 출토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사람 발자국의 흔적 화석은 패총에 포함되어 있는 동물들을 사냥했던 사람들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생물학자에게 화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화석 발견 당시 상상했던 다양한 지질시대에 따른 고환경 해석이 후에 이루어지는 분석결과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5만년이라는 빙하기와 당시의 지리를 고려할 때 이 발자국 흔적들이 형성된 시기는 후빙기인, 즉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제주도 발자국 화석 나이 틀렸다”

    두 사람이 걸어가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의 보행렬(A·B).

    제주도는 고려 중엽인 1002년과 1007년에 화산활동의 기록이 있는 휴화산(休火山)이다. 고문서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제주도 서남부 바다에서 화산이 분출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제주의 화산활동이 역사시대에까지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지구 46억년의 역사에서 한반도의 지질은 대부분 수억년 전에 형성됐다. 우리나라에 공룡이 살고 있었던 1억년 전 중생대에 제주도는 지구상에 없었다. 약 200만년 전인 신생대 제4기에 들어서야 제주도는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신생대 제4기라고 하는 시기는 전 세계적인 빙하의 시대이자 인류가 막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이 시기는 대부분 구석기시대에 속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발견했다고 하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거의 인정되기 어렵다. 제주도의 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현무암의 분출이 대부분 수십만년 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연속적인 용암이 분출되는 환경에서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곤란했다.

    화석이 발견된 송악산 주변지역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인 신석기 후기에도 해안선이 위치하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송악산이 폭발하여 주변 바다에 화산재 퇴적층이 쌓여 넓은 갯벌 조간대가 형성됐다. 주변에 살고 있던 신석기인들은 이곳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고 동물을 사냥했다. 사슴, 말 발자국과 함께 찍혀 있는 사람의 발자국 흔적들은 이들이 남긴 발자국으로 추정된다.

    이번 화석 발견지 뒤편에는 사구층을 형성하며 패총이 출토된 상모리 유적이 있다. 상모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인 2300년 전의 유적으로 패총에서 사슴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뼈와 이빨이 많이 출토됐다. 화석으로 산출되는 사람과 동물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후에 형성된 상모리 유적에서 그 유해들을 남기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질학에서 1만년 이후의 시대는 현세(現世)에 속한다. 제주도 화산활동은 최근까지 계속돼왔다. 당연히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 제주도에는 화산활동과 함께 선사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번에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화산과 함께 살아온 제주 선사인들의 발자취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를 비롯하여 화산지질학자, 고고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와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번 화석 발견이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화산과 제주 선사인들의 연관성을 밝히고, 제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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