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전쟁 몰고 온 ‘강간치사 사건’

베냐민 지파 불량배들의 범행이 화근 … 나머지 종족 연합 ‘씨 마를 정도’로 초토화

  • 조성기 / 소설가

    입력2004-04-01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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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몰고 온 ‘강간치사 사건’

    국립서울과학관 ‘인체의 신비전’에서 실제 인간의 시신을 세로로 자른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강간과 토막 시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몇 년 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인체의 신비전’에서 한 서양인의 시신이 세로로 14개의 절편으로 쪼개져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정교하게 쪼개지고 방부제 처리가 잘 되어 있어 섬뜩하다는 느낌은 덜한 편이었다.

    그런데 다른 남자들에게 강간당한 첩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토막내어 전국 각지로 보낸 사람이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 있었다. 그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사사기 19장 서두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정욕과 고집대로 방자하게 행동해도 통제하기 힘든 시대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때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레위 지파에 속하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여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간통을 저질러 남편을 떠나 다시 베들레헴 친정으로 돌아가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그 여자를 내쫓았는지, 그 여자가 남편 보기 민망하여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갔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넉 달쯤 지나자 남편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여자를 다시 데려오기로 하였다.

    남자가 하인 한 명과 함께 나귀 두 필을 끌고 베들레헴 장인 집으로 내려가서 여자를 만났다. 성경에서는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라고 하였는데, 다정히 말했다고 하는 것은 용서와 화해의 말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자기 잘못으로 인해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아내는 감격하여 남편을 친정집으로 들였다. 장인도 사위를 환영하여 융숭하게 대접해주었다.



    남자가 사흘을 머물다 여자를 데리고 에브라임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인이 하루 더 쉬었다 가라며 간곡히 만류하였다. 그러기를 장인이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결국 며칠 더 머무르게 되었다.

    첩 잃은 남자, 첩의 시체 토막낸 뒤 각 지파에 보내

    남자가 장인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여자와 하인과 함께 에브라임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기브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어느 노인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고 발을 씻고는 잠을 자려고 하는데 동네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노인에게 그 남자를 내어놓으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이때 그들은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동성애적인 표현인 셈이다.

    이 장면은 천사들이 소돔의 롯의 집에 머물 때 일어난 사건과 아주 비슷하다. 소돔 사람들도 손님을 끌어내어 ‘상관하겠다’고 하였다. 롯은 손님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딸을 내어주겠다고 하였는데, 기브아에서도 노인이 남자 손님을 구하기 위해 자기 딸을 내어놓겠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노인의 제안을 거부하자 남자가 할 수 없이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놓았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 여자를 상대로 윤간(輪姦)을 저질렀다. 여자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돌아가면서 성폭행을 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여자를 범하였는지 모른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그 짓을 하다가 불량배들이 여자를 놓아주었다. 여자는 기다시피 하여 남편이 기거하는 집 문 앞에 이르러 고꾸라지고 말았다. 남자가 아침 일찍 나가보니 여자가 엎어져 있어 일어나라고 하였으나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남자는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에브라임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칼을 들어 시체를 열두 개로 토막내었다. 왜 열두 토막으로 쪼개었느냐 하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자기 첩에게 어떤 짓을 했느냐 하는 것을 그 시체 토막을 증거로 하여 생생히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 시체 토막을 전해 받은 각 지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자의 시체를 열두 토막으로 내어 전국을 상대로 일종의 극렬 시위를 벌인 일도 없던 사례였다.

    전쟁 몰고 온 ‘강간치사 사건’

    8mm 스너프 필름(실제 살인 장면을 담아 은밀히 유통시키는 필름)을 손에 넣은 사립탐정이 악몽 같은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8mm’의 포스터.미국 더 홀사의 성폭력 반대 공익광고(아래).

    하긴 요즈음도 시신 시위라는 것이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해 투쟁하다가 장렬하게 자기 몸을 내던진 사람의 시신을 앞세우고 시위를 계속 이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런데 시신을 열두 토막 내어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시위를 벌인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토막 시체를 본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 지파에서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칼을 들고 모여들어 순식간에 40만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기브아 지방으로 몰려가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행한 불량배들을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그 불량배들만 처단하려고 하였으나 기브아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자 결국 베냐민 지파 전체를 상대로 싸우게 되었다.

    칼을 들어 싸울 수 있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수는 대략 3만3000명 정도 되었다. 3만의 병력으로 40만의 대군과 맞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작전을 잘 짜서 초기에는 40만 대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투가 계속될수록 베냐민 지파가 불리하게 되어 마침내 씨가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종전 후엔 베냐민 지파 종족 보존 협조 ‘아이러니’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와 싸워 대승을 거두고 나서 베냐민 지파가 안쓰러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다. 눈물을 흘린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하였다고 한다.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비록 전쟁에서는 적으로 싸운 베냐민 지파이긴 하지만 그들은 같은 동족이 그와 같이 씨가 마를 정도로 처참하게 된 사실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도록 할 것인가 민족 전체가 고민하며 묘수를 짜냈다. 말하자면 한때 적이었던 베냐민 지파에 대해 햇볕정책을 펴기 시작한 셈이다.

    우선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얼마 남지 않은 베냐민 남자들이 아내를 얻어 씨를 퍼지게 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전쟁 중에 베냐민 여자들이 거의 죽고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들도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는 자기 딸들을 주지 않기로 성급하게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은 베냐민 남자들이 아내를 얻을 길이 묘연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지파들이 묘책을 짜내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그곳으로 쳐들어가 남자들과 유부녀들을 다 죽이고 처녀 400명만 포로로 잡아와서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 아내로 주었다. 그래도 여자가 모자라자 이번에는 베냐민 남자들에게 실로 지역에서 명절 축제가 벌어질 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춤추러 나오는 여자들을 보쌈해오라고 부추겼다. 그 여자의 아비나 형제가 항의를 하면 자기들이 잘 수습해주겠다고까지 하였다.

    베냐민 남자들은 그 조언대로 실로의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서 춤을 추러 나오는 여자들을 납치하여 자기 아내로 삼아버렸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는 보존되고 이스라엘 각 지파도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사사기 끝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다. 사사기 마지막 구절을 한번 더 소개하겠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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