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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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D업종서 죽도록 일만 하세요!

“복지혜택은 불가” 노동자 유치 캠페인 … ‘노동력만 챙기려는 발상’ 비난 봇물

  • 런던=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입력2004-04-01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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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3D업종서 죽도록 일만 하세요!

    영국 런던 거리의 공중전화 부스 옆에 붙어 있는 윤락녀들의 연락처(위). 영국은 3D업종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극심하게 겪고 있다.

    ‘영국으로 일하러 오세요. 그러나 복지혜택은 청구할 수 없습니다.’

    최근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의 신규 회원국이 되는 중ㆍ동부 유럽 8개 나라를 대상으로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 유치 캠페인의 문구다. 섬나라 영국과 아일랜드는 기존의 EU 회원국과 달리 아직도 국경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신규 회원국 노동자들이 비자도 없이 영국으로 들어가 일할 수 있다고 유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의 기존 EU 회원국이 신규 회원국 근로자가 비자 없이 자국으로 와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최소한 몇 년간 금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획기적인 조치다. 이른바 3D업종의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ㆍ동구권 유럽의 저임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영국의 이런 저임 노동자 유치 캠페인은 최소한의 사회복지 혜택도 주지 않는 조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3개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8개 중·동구권 국가와 몰타, 키프로스 등 모두 10개국이 5월1일부터 EU 회원국이 된다. 지난해 상반기 가입조약을 체결한 후 각 나라에서 의회비준과 국민투표를 실시해 통과가 되었다.

    55만개 일자리 급히 주인 찾아



    가입조약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던 난제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언제부터 허용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신규 회원국은 자유 이동을 금지하는 과도기를 되도록 짧게 하려고 했고 기존 회원국은 이를 좀더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했다.

    기존 15개 회원국 국민들은 원하는 회원국 어느 나라에든 가서 정착해 직업을 얻어 생활할 수 있다. 비자는 필요 없다.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은 물론 노동력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가입한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등 3개국의 경우를 보면 당시 EU 회원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7년 정도의 과도기를 두었다. 즉 이 기간에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국민들이 독일이나 영국 등 기존 회원국으로 가서 일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했다.

    이번에 가입하는 10개 나라 가운데 몰타와 키프로스 2개 나라는 가입과 동시에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영국으로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인구가 각각 40만명, 77만명의 소국이어서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허용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ㆍ동구권 8개 나라는 문제가 다르다. 독일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정식 가입 전부터 동구권의 저임 노동자가 독일로 몰려와 건설 노동자, 청소부 등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해왔다. 이들은 대개 세금을 내지 않고 일해 세금 탈루를 해왔고, 독일은 최소임금 등 이들에 대한 복지혜택도 줄 수 없었다. 중ㆍ동구 8개 나라 중 리투아니아의 1인당 GDP는 8400달러, 기존 회원국 가운데 1인당 GDP가 제일 높은 룩셈부르크(4만8900달러, 각각 2002년 말 기준, CIA 월드 팩드북 근거, 구매력 평가 기준)와 비교해 거의 6분의 1 수준이다. 사회복지 수준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ㆍ동구 신규 회원국이 열악하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기존 회원국이 경제침체로 사회복지 비용을 줄이는 마당에 갑자기 동구권 신규 회원국 노동자들이 자국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존 회원국가로 몰려들 경우 이들 정부에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은 2011년까지, 즉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최대 7년 동안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금지할 계획이다. 이주 노동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펴온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도 몇 년 정도의 과도기를 둘 계획이다.

    그런데 아직도 국경 통제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과 아일랜드만이 중ㆍ동구권 노동자의 자유 이동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두 나라는 국경개방조약인`‘쉥엔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EU 회원국 국민들의 입국시에도 비교적 철저한 심사를 한다. 비회원국 국민의 입국시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에 발표된 영국 내무부의 계획을 보면 중ㆍ동구권 8개국 근로자들이 비자도 없이 영국으로 가서 일할 수 있다. 대신 관계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2년 동안 주택수당, 자녀수당, 의료보험 등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당국에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관계당국은 이들 노동자의 이동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필요하면 이들의 유입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 또 복지혜택을 주지 않는 것도 원래 2년일 뿐 자국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상당히 탄력적인 규정이고, 영국 정부가 얼마든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현재 55만개의 일자리가 급히 주인을 찾고 있다고 추산한다.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의 산업별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부는 정보기술 등 첨단업종이다. 그리고 상당수는 건설업과 농업, 청소부 등 이른바 3D업종이라고 영국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3D업종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사회복지 혜택이 더욱더 필요한 상황이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다칠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은 무료로 의료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국이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런 기초 복지서비스조차 주지 않고 일을 하러 오라고 중ㆍ동구권 근로자 유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제한적인 근로자의 자유 이동임에도 불구하고 ‘더 선’ 같은 타블로이드 신문은 정부의 조치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정부의 이런 조치로 ‘160만명의 집시들이 영국으로 몰려올 것이다’라고 아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 정부를 공격했다. 야당인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당수도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중ㆍ동구권 노동자의 자유 이동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현재 이주 노동자는 영국 인구의 8%에 지나지 않지만 이들은 GDP의 10%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자유 이동을 허용해도 영국으로 일하러 오는 중ㆍ동구권 노동자는 1년에 5000명에서 1만3000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경제논리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중국인은 자유주의적 일간지 ‘가디언’의 독자투고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영국에서 청소부나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외국 근로자들 상당수가 학력이 높다. 그리고 이들은 영국 사람들이 일하기를 꺼리는 업종에 종사하면서 영국 경제에 기여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니! 이러고도 영국이 사회통합이나 사회적 유대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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