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美, 테러 잡으려다 테러 키웠나

이라크전 1년 지났지만 끝없는 테러 행렬 … 파병국들 엄청난 희생에 ‘충격과 공포’

  • 워싱턴=이흥환/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4-04-01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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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테러 잡으려다 테러 키웠나

    2003년 3월20일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에 미국의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넘었다. 미국의 선제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부시 행정부가 만든 ‘선제공격’ 독트린이 이라크전의 동기이고, ‘9·11’ 테러가 선제공격 독트린의 모태가 되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미 8개월 전에 사실상 이라크전의 종전을 선언했지만, 이라크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대(對)테러전을 선언한 지도 2년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테러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9·11 이후 테러 발생 지역은 유럽, 아시아, 중동으로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의 피살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을 하마스의 주 공격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미국이 직면한 물음은 더욱 분명해졌다. 선제공격 독트린은 과연 잘한 선택인가. 세계는, 그리고 미국은 그만큼 더 안전해졌는가. 테러 종식이라는 미국의 세계 전략은 과연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이라크전을 주장했던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은 전쟁 전부터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점령 이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의 그림자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180억 달러의 재건 비용까지 마련해놓았지만 치안 유지마저 되지 않고 있는 이라크에서의 중간점수는 현재로서는 낙제점이다.

    이라크전 1주년 기념 연설을 하는 부시의 모습에서 패기 넘쳐야 할 ‘전시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반테러 담당 직원의 배신, 9·11 조사위원회를 통해 속속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 등 백악관은 안팎으로 연속되는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익살스런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참모들의 표정에는 예외 없이 수심이 가득하다.

    이라크전 마무리가 부시 행정부의 당면 과제다. 이라크전을 주장한 사람치고 종전 마무리가 이렇게 힘들게 전개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이라크전 종군기자들이 전하는 이라크 현지 상황은 치안 유지에 필요한 병력의 절대 부족, 갈수록 심해지는 반미 정서와 종족 분쟁 등 태반이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실수, 오판 같은 용어들이 미 언론에 등장하는 횟수는 점차 더 늘어난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 피살로 ‘엎친 데 덮친 격’

    한 달 평균 미군 사망자는 30~40명이다. 하루에 한 명 이상이 이라크에서 죽는다. 지난해 11월에는 한 달 동안 80명이 죽기도 했다.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스페인, 폴란드 등 외국군의 한 달 평균 사망자도 5명 선이고, 이라크 민간인은 지난 겨울 내내 한 달 평균 150명이 죽어나갔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공격 횟수는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해 가을에 비해 절반으로 줄긴 했지만 지금도 하루 평균 20건을 웃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이렇다. 폭탄 공격을 받기 전에 사전 수색으로 폭발물의 75%를 찾아내 제거하고 있다. 미 중부군사령부는 폭탄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는 ‘폭도’의 수를 3000~5000명 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짜놓은 시간표대로라면 이라크의 치안 유지는 올 6월에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래야 이라크 수렁에서 벗어나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시간이 빠듯하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의 피살은 부시 행정부를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지금까지 하마스는 미국을 공격대상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야신 피살로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알 카에다와 관련을 맺고 있는 아부 알마스리 여단은 야신 피살에 대한 보복공격 대상에 미국과 동맹국들을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대테러전의 전선이 넓어진 것이다.

    야신 피살은 이라크 재건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라크 재건은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돼왔으나 야신 피살로 이슬람권 결집이 유도되면서 이 역시 사정이 달라졌다.

    이라크전 참전국인 스페인 마드리드의 열차 폭탄 테러도 테러의 양상 변화를 예고한다. 스페인 열차 폭발사건이야말로 이라크전이 선제공격 독트린의 실험장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해준 사건이다. 열차 테러는 이라크에 동맹국을 끌어들여야 할 입장인 미국에 치명타를 안겼다.

    美, 테러 잡으려다 테러 키웠나

    2003년 11월27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격려하는 부시 대통령(왼쪽). 3월5일 뉴올리언스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민주당의 존 케리 대통령후보.

    대테러전의 실마리를 제공한 9·11 테러 사건 조사도 부시 독트린을 위협한다. 더구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 국내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인 데다가, 선제공격 독트린의 선봉장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궁지에 몰려 있어 미 언론의 호재가 되고 있다. 라이스가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 화근이 되었다. 라이스는 “저들(알 카에다)이 비행기로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저들이 민간항공기를 미사일처럼 사용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9·11 테러 사건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내뱉은 말인데, 부시 행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정반대되는 배경 설명을 한 꼴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후 8개월 동안, 즉 9·11 테러가 있기 전까지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백악관의 줄기찬 주장이었다. 그런데 “비행기로 들이박을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했으니 구설치고는 최악이다.

    게다가 미 중앙정보국(CIA)마저 9·11 이전에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미사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했다는 사실도 9·11 조사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났다. 콘돌리자 라이스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셈이다. 결국 그녀는 9·11 조사위원회의 민주당 소속 위원을 조용히 찾아가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으니 고쳐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여기까지는 구설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라이스의 백악관 부하 직원이었던 반테러 전문가 리처드 클라크라는 인물이 난데없이 등장했다. 역대 공화·민주의 4대 행정부를 거치면서 백악관에서 반테러 업무를 담당했던 클라크는 자신의 책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백악관은 2001년 9월11일 이전부터 참모들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 알 카에다보다는 이라크(전쟁)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게 그의 발언 핵심이다.

    백악관 출신 클라크, 저서 통해 폭탄선언

    클라크의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명분은 산산조각이 나는 셈이다. ‘9·11→대테러전→이라크전’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선제침공의 시차 논리가 ‘이라크전→9·11→대테러전’으로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은 9·11 이전에 이미 구상되어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9·11 테러 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이라크를 선제공격했다는 주전론자들의 논리는 허구가 된다.

    클라크의 폭로가 새로운 사실은 전혀 아니다. 부시 행정부가 9·11 이전부터 이라크전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클라크의 등장은 부시 재선의 고지를 향해 이제 막 오르막길을 뛰기 시작한 백악관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고 짓뭉개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웬만한 일에는 침묵으로 버티던 관행을 깨고 이번에는 백악관이 전면에 나서 총력 방어전을 폈다. 그만큼 클라크의 발언은 사안이 중대하고, 폭발성이 강하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9·11 조사위원회 출석까지 거부하면서 9·11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크의 입이 열리자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가며 클라크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공화당의 비난처럼 클라크가 존 케리 진영에서 한 자리 얻기를 바라고 한 발언이든 책을 팔기 위해 한 발언이든, 클라크의 증언은 공화당의 등에 꽂힌 비수가 되었고, 11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말끔히 아물기는 이미 틀려버린 깊은 상처를 안겼다.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독트린은 지금까지 세 가지 유형을 선보였다. 첫째는 이라크형이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나라에 대한 ‘선제침공’이다. 이 첫 번째 유형의 효과와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내릴 단계가 아니다. 주전론자들은 여전히 낙관론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부시 독트린에 바탕을 둔 미국의 외교정책은 어쨌든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비관론이 이미 대세다.

    둘째는 협상형이다. 북한이 이에 해당한다. 북한 역시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군사력으로만 따진다면 미국에 대적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선제공격 독트린에 핵 무기 프로그램으로 맞서고 있고, 미국은 이런 북한에 이라크와 달리 ‘협상’이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부시 행정부 내의 매파들은 6자회담이 동북아에 새로운 형태의 다자 안보 틀을 형성했다고 자화자찬한다.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북한 핵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매파들의 목표는 북한의 정권 교체이며, 협상 무용론이 지배적이다. 협상 의지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셋째는 리비아형이다.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가 후세인 정권 붕괴에 겁을 먹어 미국의 요구에 순응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리비아는 선제공격 독트린이 먹혀든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이 리비아의 선례를 따라주면 최상이지만,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다. 리비아의 무장 해제가 이라크전의 부산물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부시 행정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동문제 전문가 마틴 인딕은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이유는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진행시켜온 대리비아 외교정책의 산물이며, 외부의 자본 투자를 갈망해온 카다피가 선택한 결과이지 이라크전 때문에 카다피가 손을 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올해, 미국으로서는 수십년 만에 맞이하는 심각한 시기다. 바깥에는 ‘테러’라는 이름의 새로운 형태의 적들이 버티고 있고, 오랜 친구인 동맹국들의 대미 시각은 예전 같지 않으며, 경제는 여전히 뒤뚱거리고, 국내 여론은 반분되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전시 대통령’ 부시의 지도력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높고, 선제공격이라는 부시 독트린의 효용성은 이라크라는 덫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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