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8

2004.04.01

침몰 한나라 탈출구 찾기 아우성

분노한 민심 총선 참패 ‘최악의 위기’ … 각자 위치 따라 다른 목소리 내분 심화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3-24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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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 한나라 탈출구 찾기 아우성

    한나라당 수도권 소장 공천자 17명이 3월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옆 한강 둔치에 천막을 치고 탄핵정국 돌파 등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3월20일 KBS가 서울지역 20개 지역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단 한 군데에서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날 조선일보 여론조사는 이보다 조금 나았다. 20개 지역 가운데 3곳에서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전통적 한나라당 안방인 강남과 서초, 송파구 등도 오차범위 내의 릴레이였다. 한나라당 부대변인 K씨는 이 조사결과가 의심스럽다며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K씨가 이 관계자에게 들은 말은 더 심했다. “3월20일 현재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경쟁이 되는 지역은 10여 군데 정도에 불과하다.”

    K씨는 “결국 노욕(老慾)이 당을 망쳤다”며 비난의 화살을 당 지도부로 돌렸다. 최병렬 대표 등 몇몇 지도부 인사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둬 당을 재기불능 상태로 빠뜨렸다는 원망 섞인 불만이다.

    “점수차 큰 9회말 투아웃” 구원투수가 당 구할까

    TV토론의 단골 논객인 한나라당 H의원은 3월15일경 모 방송사로부터 “TV토론에 참석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선거운동 때문에 바쁘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워 거절했다. 그러나 나가봤자 할 말도 없고 여론의 뭇매만 기다린다는 것이 더 큰 이유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N, P의원 등 다른 논객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TV에 얼굴 내미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없지만 이들은 요즘 한사코 TV 출연을 꺼린다.



    서울지역 원외위원장 P씨는 3월 중순 술집에서 만난 한 30대 유권자한테서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이 유권자는 “술맛 떨어진다”며 P씨가 따른 술잔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 동행했던 부인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고, P씨는 곧바로 지역구 활동을 접었다.

    그는 중앙당에 대책을 호소해놓고 있지만 큰 기대는 않는다. 어느새 ‘더블’로 벌어진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후보와의 지지율 차이를 줄이기 힘들다는 게 지역 사정에 정통한 그의 분석. 그는 총선 후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마음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한나라당의 무기력증이 심각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탄핵안에 분노했던 민심이 되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여론이 반대로 달리자 이곳 저곳에서 혼란이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4∼5일, 길어도 일주일 정도면 정리될 것”이라던 홍사덕 전 원내총무의 탄핵민심 단명론은 빗나갔다고 확언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주를 계기로 민심은 한 차례 조정기를 맞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탄핵 민심이 최대 이슈 자리를 내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역구 출마를 노리다가 최근 여의도연구소로 돌아온 A씨의 진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탄핵 민심은 여전히 분노의 색깔이 주류를 이룬다”며 “조정기를 거친 이 여론이 곧바로 안정기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40%대 후반을 오르내리는 우리당의 지지도가 일정부분 빠지겠지만 ‘4·15’ 총선의 최대 이슈는 탄핵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 될 것이라는 것.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의 제대로 된 대응책이 없을 경우 선거결과는 뻔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점수차가 벌어진 9회말 투아웃 위기상황”이라며 “영남 등 전략지역까지 다 포함해도 한나라당의 의석은 80석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80석’은 지난해 11월 내홍상태를 겪던 당 지도부 일각에서 슬림화를 주장하며 내놓았던 수치. 수도권 소장파들이 ‘무슨 짓’이든 하려는 이유가 A씨의 설명에 녹아 있다.

    3월19일 전여옥 대변인의 인식도 비슷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대안이 없는 게 아니다. 다 준비가 돼 있지만 지금은 단지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며 대안이 확보됐음을 강조했다.

    백약이 무효인 한나라당의 대안론은 임시전당대회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9회말 투아웃 이후를 관리할 새로운 구원투수를 등판시킨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조정기에 접어든 탄핵 민심은 구원투수의 활동 상황에 따라 재조정될 수도 있다. 70을 바라보는 이상득 사무총장이 구걸에 가까운 처절한 모습으로 ‘방송’에 읍소한 것도 한나라당의 구원투수에게 포커스를 맞춰 힘을 모아주자는 몸부림이다.

    침몰 한나라 탈출구 찾기 아우성

    3월 16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상득 사무총장이 한나라당 천안연수원의 국가헌납에 관한 서류를 들고 있다.

    여의도연구소의 다른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통해 정책정당, 수권야당의 면모를 과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는 “전당대회를 통해 지지도를 10%+α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탄핵안 가결 후 친노(親盧) 또는 중립지대로 빠져나간 전통적인 친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되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들이 돌아오면 20% 후반, 또는 30% 초반의 지지도를 유지, 경쟁력 있는 후보들의 경우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 그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지만 우리에게도 마지막 한 번의 기회는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전 분위기만 형성되면 탄핵안 가결의 정당성을 집중 홍보, 다시 한번 정면돌파를 시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갈수록 증가하는 탄핵반대 여론 때문에 실무진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탄핵철회로 탄핵 후폭풍을 잡자는 탄핵철회론이 비등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원점으로 돌려놓으면 돌아선 민심도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란 단순 계산이 탄핵철회론의 배경이다. 안상수 의원이 이 문제를 언급했을 때만 해도 눈치를 보던 수도권 인사들이 대거 동참했고, 김문수 의원이 공론화에 불을 당기면서 당내 동조세력이 늘고 있다. 수도권 공천자 27명은 천막당사에서 3월21일 비상회의를 연 뒤 성명을 내고 탄핵안 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철회 여부를 떠나 수도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철회론자 입장에선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윤여준 의원은 “탄핵안이 철회돼도 이탈된 지지자들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소장파들의 탄핵안 철회 주장에 부정적이다. 윤의원이 내놓은 해법은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 때가 되면 움직일 민심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한나라당 바람이 미풍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영남지역에 근거를 둔 동남풍의 세력을 키워 북상시키겠다는 전략도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텃밭인 영남도 탄핵 후폭풍에 짓이겨져 남을 보살필 여력이 없어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 영남 지역구 반 이상이 이미 우리당 수중으로 넘어갔거나 넘어가기 직전의 위기상황이다.

    그럼에도 당은 여전히 분열과 대립의 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소장파들은 중진들에게 더욱 과감한 당 개혁을 요구한다. 이들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중심세력이 교체돼야 한다”는 주도세력 교체론까지 거론한다. 이런 소장파 주장에 중진들은 “열린우리당식 이벤트 정치”로 폄훼한다. 이벤트 정치로는 보수안정 성향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결속할 수 없다는 것이 중진들의 셈법. 중진들은 점진적인 변화라야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본다.

    중진과 소장파가 대립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총선전략에 대한 시각차에서 기인한다. 수도권과 영남권의 다른 입장도 마찬가지. 어느 길이 자신의 선거에 유리한가라는 판단을 우선시하면서 당내의 분란은 갈수록 커진다. 여기에 최병렬 대표가 욕심까지 내 당을 더욱 혼란 속으로 빠뜨렸다. 최대표는 3월18일 운영위에서 공천심사위 구성안을 상정, 일부의 반발을 누르고 표결 끝에 통과시켰다. 11명의 심사위 명단도 확정했다. 대표경선 후보로 나선 박근혜·박진·김문수·권오을 의원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노욕의 정치인’으로 몰아붙였다.

    당직자 L씨는 비장한 어투로 한나라당의 미래를 설명했다. 그는 “3월 초, 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개헌 저지선 100석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이제 우리가 그 노래를 차용해야 할 때”라고 한나라당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는 요즘 민주당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본다.

    ‘백약이 무효’인 한나라당의 전신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대표는 최근 “폭설이 내릴 때는 눈을 쓸지 말고 그냥 놓아둬야 한다”며 탄핵 민심이 지나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폭설은 총선 때까지 이어질 기세고 여기에 한나라당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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