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8

2004.04.01

“국민 위한 길이라면 당적 바꿀 수도”

심대평 충남지사 “대통령 탄핵은 잘못 …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 견인차 역할”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3-24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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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위한 길이라면 당적 바꿀 수도”

    심대평 충남지사.

    3월 초 100년 만의 폭설로 속살이 찢긴 ‘충청남도’는 지금도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다. 한반도 상공에서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폭설은 중부, 그 가운데 충청지역만 집중적으로 난타했다. 수시로 찾아오는 자연재해에 충청 농심이 적응할 만도 하지만, 현장 농심은 지금도 그때의 충격에 치를 떤다. 이들의 일터를 복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심대평 충남지사는 요즘 “더 이상 땅을 파고 싶지 않다”며 천직을 떠나려는 농심과 수시로 부딪힌다. 파괴된 비닐하우스나 축사보다 무너져버린 농심이 심지사로서는 더 큰 아픔이다. 폭설 당시 고속도로에 갇힌 차량 탑승객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었던 심지사는 이제 갈기갈기 찢긴 농심을 어루만져 재기의 기운을 불어넣는 데 심혈을 쏟고 있다.

    그러나 탄핵 등 불안한 정국은 복구에 필요한 집중력을 흩뜨리며 심지사의 혼란스러운 속마음을 또 한번 난타한다. “지금이 정치놀음할 때냐”는 도청 직원의 지적이 심지사의 속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3월19일 대전의 충남도지사실에서 기자를 만난 심지사는 “탄핵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현재의 당적(자민련)을 떠나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폭설 피해보상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100년 만의 폭설이 충남지역을 강타했는데, 피해 규모는.

    “3474억원(3월17일 현재)으로 집계됐다. 통상 풍·수해는 도로 교량 등 공공시설물 파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폭설 피해는 시설원예하우스, 축산시설 등 사유(私有)시설에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딸기 방울토마토 등 동절기 고가작목과 알로에 양란 등 다년생 농작물이 직격탄을 맞았다. 영세농가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복구 현황은.

    “군, 경찰,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 연인원 15만명이 투입돼 복구에 나섰다. 특히 인근 군부대가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줘 복구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피해농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이번에 피해를 입은 농가는 대부분 농가부채를 안고 있는 영세농이다. 이들은 이미 상당한 부채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정부지원이 미흡할 경우 농업기반의 붕괴가 우려된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지을 힘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고건 대통령권한대행,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특별재해지역 지정을 요청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풍·수해 위주의 지원기준으로 이번 폭설 피해농들을 지원한다면 이들의 재기는 불가능하다. 100년 빈도의 폭설로 인한 피해인 만큼 정부가 규정을 고쳐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900여억원에 해당하는 생물(生物)에 대한 피해보상책도 탄력적으로 적용해 절망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비전을 줘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과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자연재해가 수시로 우리 농업을 위협하는데.

    “기본적으로 경작 규모 등에서 우리 농업은 선진국과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경제적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는 것은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농업과 농촌을 보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모는 작지만 균질의 상품을 생산하거나, 첨단생명기술의 산업화, 웰빙 트렌드의 도입 등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제 정부와 자치단체가 스러지는 우리 농업을 일으킬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 위한 길이라면 당적 바꿀 수도”

    폭설피해 농가를 방문 중인 심대평 지사.

    -행정수도에 대한 충청민들의 기대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은데, 행정수도 이전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행정수도 이전은 21세기 한국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차선의 대안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행정이 중앙에 집중돼 있다. 정치와 행정의 집중은 교육 경제 문화 SOC(사회간접자본)투자 등의 집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중앙집중의 가장 큰 요인인 정치와 행정의 분리를 촉진한다. 일극의 집중체제에서 거점이 다극화되면서 국가의 균형발전을 가능케 한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부동산 투기와 지역이기주의 극복이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03년 1월과 9월 대전시장과 충남·북 지사가 회동해 전문가가 내놓는 입지선정 등에 대해 승복키로 결의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제2의 서울을 만든다거나, 충청권 특정지역만의 발전을 위한 미시적 단견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충남도가 찾은 신행정수도의 적합한 후보지는.

    “입지는 우리가 관여하지 않고 전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들이 정치적 판단을 배제, 공평무사하게 입지를 설정해야 한다. 신행정수도는 국가 백년대계라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출발해야 한다.”

    “도민과 약속 지키려 지난해 정계 진출 포기”

    -김혁규 전 경남지사, 강현욱 전북지사, 박태영 전남지사, 우근민 제주지사 등 자치단체장들이 줄줄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는데, 또 하나의 철새 행렬로 보는가, 아니면 도정 수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는가.

    “그들의 선택에 대해 내가 얘기하기가 뭐하다. 내부적으로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단체장을 정치의 장에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열린우리당의 입당 제의를 받은 적이 있나.

    “(웃으며)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나는 지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행동을 보고 평가해달라.”

    -지난해 정계 진출설이 나돌았는데.

    “지난해 생각이 많았다. 정치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민들 만나 의견을 구하고 생각도 정리했다. 그때 만난 한 촌부가 ‘당신이 가면 나는 누가 보살펴주나. 당신을 믿었는데…’라며 나를 빤히 쳐다보더라. 생각해보니 임기 2년 반을 남겨놓고 도민들과 한 약속을 깰 만큼 나의 변신이, 국회의원 ‘심대평’이 가치가 있나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내 자리를 지켰다. 이 선택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2년 후에는 정치적 역할을 다시 찾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정치적 상황을 예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분명한 것은 그때가 되면 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고, 나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산은 없지만, 그때가 되면 나는 또 어디에서, 누군가와 무슨 일을 할 것이다.”

    -자민련 부총재인 심지사의 당적 변경설이 중앙 정치권에서 나도는데.

    “…역대 모든 정부가 개혁을 외쳤다. 문제는 어떤 개혁이냐 하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일관되게 가는 개혁인지, 정부나 정치 주체세력의 변화를 개혁으로 포장한 것인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과거에 매달리는 한(恨)의 정치로 오늘을 보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없다. 국가의 변화와 전진을 위한,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당적 변경 등)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탄핵정국을 어떻게 보나.

    “자치단체장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굳이 개인적 입장을 밝힌다면 이번 탄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탄핵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탄핵안을 가결했다. 그렇다면 이제 헌법적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탄핵에 찬성했는데.

    “자민련 부총재이지만 단체장 일에 얽매여 당무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4·15’ 총선에서 지역 구도가 깨질 것으로 보는가.

    “당위론으로 보면 깨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수십년간 고착된 지역 구도가 진통 없이 쉽게 깨지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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