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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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권한 오·남용 피해때 탄핵”

미국 헌법 수호 최후의 수단으로 해석 … 실제 탄핵 없어 대통령 독립성 보호

  • 뉴욕=김동기/ 뉴욕주 변호사 donkim1014@hotmail.com

    입력2004-03-24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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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회는 3월12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법 제65조 제1항에는 국회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심 이슈는 첫째 직무집행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 둘째 단순한 법률위반 행위, 예컨대 경범죄를 범한 경우에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아주 엄격하게 적용해 지극히 제한적인 위법행위만 해당하는지 등일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으면서 탄핵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거의 유일한 나라인 미국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헌법 제2조 제4항에는 대통령은 반역죄, 뇌물죄, 기타 중대한 범죄나 부당행위(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를 이유로 탄핵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해석의 초점은 과연 ‘기타 중대한 범죄나 부당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는 점이다.

    중대한 위법행위 한정 일반적 합의

    우선 misdemeanor는 ‘현대적’ 법률용어로는 중죄가 아닌 징역 1년 이하 정도가 선고될 수 있는 가벼운 범죄를 말한다. 하지만 탄핵 사유를 규정할 당시 쓰인 misdemeanor는 오래 전부터 영국에서 쓰여왔던 용어를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형법상 범죄가 아닌 ‘정치적 범죄(political crimes)’를 지칭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무원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국가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다. 만약 misdemeanor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미국 헌법 규정은 ‘중대한 범죄 그리고 가벼운 범죄(high crimes and low crimes)’를 사유로 탄핵할 수 있다고 하는 모순된 해석에 이른다.



    미국 헌법을 기초할 당시의 논란을 살펴보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중대한(great)’ 위법행위에 한정한다는 일반적 합의가 있었다. 또한 탄핵 대상이 될 위법행위는 주로 권한을 남용해 국가에 피해를 입히는 행위로 인식됐다.

    미국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례별로 탄핵 대상 행위의 의미를 명확히 해왔다. 여기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비록 이론상 형사범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탄핵할 수 있지만, 심판기관인 상원은 형사범죄를 범한 경우 더욱 쉽게 탄핵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탄핵 사건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핵심적인 유형은 직무상 권한을 남용한 경우다. 권한 남용 사건에서는 반드시 해당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와 부당행위 사이의 연관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이는 공무원에게 부과된 공적인 신뢰를 남용하거나 배반하는 경우다.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정치적 범죄(political crimes)이자 탄핵할 수 있는 위법행위(impeachable offense)다. 대표적인 예가 닉슨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닉슨은 재선 승리와 정적들을 누르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특권과 권력을 남용하고 그에 대한 의회의 정당한 조사를 방해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권한 남용의 경우가 아니라면 탄핵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원은 1843년 제10대 타일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127대 83으로 부결했다. 당시 타일러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된 사유는 그가 주요 직책에 임명할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의회에 제공하지 않고, 또 휘그당이 제출한 여러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타일러는 당시 대통령으로서 헌법상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고 정책적 판단을 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 행위가 비록 결과적으로 특정 정파에 우호적이지 않다 해도 그는 결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닉슨처럼 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않았다고 본다.

    또한 미국 상원은 1868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대해 제기된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남부의 재건을 둘러싸고 하원 다수파와 갈등하던 존슨이 의회가 만든 공무원임기보장법을 무시하고 다수파가 후원하는 장관을 해임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상원의원들은 존슨이 비록 형식상 법률을 위반했지만 악의적으로 권력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본 미국 조지아대학 역사학과 피터 호퍼 교수는 의회의 다수파가 자신들에게 해로운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소수파 대통령을 탄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970년 당시 하원의원이던 제럴드 포드는 대법관 윌리엄 더글라스에 대한 탄핵을 발의하면서 유명한 발언을 한다. 즉 ‘하원의 다수가 소추하기로 결의하면 어떤 행위든지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있고, 상원의 3분의 2가 결정하면 어떤 행위든지 탄핵사유가 돼 파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다수의 의사만이 중요하지 실체적 근거는 필요 없다는 도전적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하원은 더글라스 대법관의 생활 스타일이나 그의 의사결정 내용만으로는 탄핵 절차를 개시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드의 제안을 일축한다.

    더구나 하원 법사위원회는 닉슨에 대한 탄핵사건을 조사한 후 탄핵소추 사유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닉슨이 납세신고 때 사기를 범한 부분을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직무 때문에 저지른 범죄가 아니고 개인적인 납세의무를 이행하면서 저지른 행위라는 이유로 탄핵소추 사유로 택하지 않았다.

    1998년 위증 혐의 등으로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됐지만 상원에서 부결된 이유는 클린턴의 위증이 대통령의 직무와 직접 상관이 없는, 클린턴 개인의 성적 스캔들과 관련한 위증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직접 직무와 관련이 없다 해도 그 행위가 너무 지나쳐서 명백히 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탄핵이 가능하다는 게 미국 학계의 정설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재임 중 개인적 원한 때문에 살인을 한 경우, 직무수행과 관련은 없지만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기엔 법적 질서에 너무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미국 헌법이 탄핵사유로 두 가지 범죄, 즉 반역죄와 뇌물죄를 특정해서 예시한 것은 탄핵사유에 대한 일반적 지침이 된다. 반역죄는 대통령이 그 권한을 이용해 적국을 이롭게 하고, 뇌물죄는 대통령이 그 권한을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얻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 요소는 권한을 오용하거나 남용해 적국을 도와주거나 사욕을 충족해 결과적으로 국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미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예외적이고 보충적이며 최후적인 수단이라고 해석한다. 대통령의 독립성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가 몇 번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탄핵이 실제 이뤄진 적은 없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역사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엄격히 제한된 경우, 즉 대통령이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권한을 중대하게 오용하거나 남용해 국가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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