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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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오염식품 적발만 하면 뭐하나

유통된 물량 수거엔 무관심 … 공업용 살균 문어·가짜 고춧가루도 상당량 국민 입속으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2-24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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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오염식품 적발만 하면 뭐하나


    ‘나 어제 그거 먹었는데, 혹시 나도. 그럼 나머지는?’

    독극물이나 발암물질 등 인체 유해물질이 들어간 부정오염식품 단속 보도가 나오면 뇌리를 스치는 불안한 생각과 더불어 단속기관에 압류된 것 외에 도·소매점에 이미 팔려나간 나머지 부정오염식품의 뒤처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검찰이나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 등 단속기관이 발표하는 오염식품 총 판매량이 대개 압류물의 수십 배, 때로는 수백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시중에 유통돼 이미 소비된 제품도 있지만, 유통기한이 긴 경우 단속이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 판매될 가능성이 높은 제품도 적지 않다. 부정식품단속에 관한 법률은 이런 경우 단속 관청이 직접 수거에 나서거나, 힘든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부적합식품을 폐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등 부정불량식품 단속업무가 전문 영역이 아닌 기관은 대부분 각 지자체에 수거와 폐기 업무를 위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압류되지 않고 이미 시장에 유통된 오염식품에 대한 사후 수거와 폐기작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단속기관들은 단속 당시 적발된 압류물 외에 이미 판매된 식품의 수거와 폐기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업자와 업체의 불법 사실을 증명하는 데도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이라는 게 이들 기관의 변명이다. 결국 국민들은 오염식품 단속 보도를 접한 후에도 그 식품을 먹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주간동아’가 2003년 한 해 국민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엽기적’ 식품 오염사건들에 대한 추적조사 결과 사실로 입증됐다.



    식약청·지자체 수거 공조 제대로 안돼

    부정오염식품 적발만 하면 뭐하나

    유해농약을 넣어 압수된 콩나물(위)과 표백제가 들어간 연뿌리(아래).

    가장 최근의 사례는 공업용 살균소독제가 들어간 문어와 한치의 생산 및 판매 사건. 부산지방 식약청은 12월11일 공중화장실, 축사, 도축장의 악취 제거용으로 쓰이는 공업용 이산화염소를 문어와 한치의 표백과 살균에 쓴 혐의로 부산지역 식품업체 3곳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사용한 이산화염소 살균소독제는 악취 제거뿐 아니라 공업용수, 산업용폐수 등의 살균소독에 쓰이는 물질로, 몸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상할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이다. 업자들이 9월부터 3개월 동안 판매한 문어의 총량은 약 10t. 하지만 단속 시점인 11월28일 부산 식약청이 단속 현장에서 압수한 문어의 양은 130kg에 불과했다. 익힌 문어의 유통기한이 3∼5일 정도이고, 하루 110kg의 문어가 이들 업자를 통해 전국에 공급돼온 점을 감안하면 단속보다 이미 공급된 문어를 수거하는 일이 더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산 식약청은 문어 가공업체에서 공급처 장부를 압수하고도 해당 판매점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업체가 문어를 공급한 곳은 전국적 매장을 가진 대형 할인점으로 본사에만 연락하면 전국 28개 지점에 진열된 문어와 보관 중인 문어 전량을 폐기할 수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공급처에 연락한 뒤 각 지자체 위생과에 공문을 보내 문어의 폐기 상황을 직접 확인토록 해야 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단속에 급급한 나머지 이 모든 과정을 무시했다.

    해당 할인점들이 문어의 오염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12월11일. 식약청 단속결과가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다. 이 할인점 한 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언론 보도를 보고 자체적으로 진열 중이거나 보관 중인 문어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업체의 주장일 뿐 뒤늦게라도 문어를 진짜 폐기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 부적합식품의 폐기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야 할 지자체들이 식약청으로부터 그에 관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짧게는 며칠, 길게는 2주일 동안 소비자들은 먹어서는 안 되는 공업용 이산화염소를 먹은 셈이다.

    한치의 경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식약청은 문제가 된 한치의 회수를 지자체가 아닌 단속에 적발된 해당 제조, 판매업자에게 맡겼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 식약청 관계자는 “판매된 한치 1300kg 중 600kg을 회수했으니 거의 다 회수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부정오염식품 적발만 하면 뭐하나

    2003년에는 유난히 고춧가루 오염사고가 많았다. 주로 중국산 고춧가루의 색깔을 더 붉게 하기 위해 인체에 유해한 공업용 착색제를 넣은 경우다.

    검찰과 경찰의 반사회적 식품범죄 단속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5월9일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중국산 고춧가루에 공업용 착색염료(10t)를 넣어 가짜 고춧가루(102t)를 제조, 판매한 혐의로 김모씨(32) 등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중국산 고춧가루에 붉은색 광택을 내기 위해 사용한 착색염료는 구두약과 인쇄용 잉크에 사용되는 발암 의심물질로, 장기 섭취할 경우 구토, 위장장애, 안면마비 등을 일으키는 인체 유해물질이다. 경찰이 경기 김포시의 생산공장에서 압수한 가짜 고춧가루는 전체 판매량의 10%를 겨우 넘는 분량. 경찰은 이 고춧가루가 “서울, 경기도 일대 재래시장과 수십여 개의 음식점에 판매됐다”는 방앗간 주인들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거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부정오염식품의 수거, 폐기 권한과 의무가 지자체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적발된 불량 다이어트 제품 버젓이 판매

    때문에 서울시와 경기도는 관내에서 유해 고춧가루가 팔려나가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 경찰의 한 관계자는 “업자에 대한 조사만 하는데도 정신이 없었다”며 “지금껏 식품 범죄를 많이 다뤄왔지만 지자체에 협조공문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당시 추후 수거작업에 식약청이 참가했다고 주장하지만 식약청은 이 사실을 강력 부인했다. 결국 90여t(9만명 1년치 사용분)의 고춧가루가 국민의 입안으로 그대로 들어간 셈이다. 같은 시기 경찰과 별도로 가짜 고춧가루 단속에 나선 검찰(서울지검 형사2부)도 59t의 판매량만 확인했을 뿐 수거에는 실패했다. 서울지검은 아예 식약청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실적 위주 수사는 2월11일 불량 다이어트 제품 단속에서 극에 달했다. 검찰은 당시 4명의 건강식품 제조업자를 구속 기소했는데, 이들이 판매한 다이어트 제품은 각각 공업용 에틸알코올과 설사 유발제를 넣은 제품 40억원어치와 옷감 탈색용 공업용 소다회를 넣은 제품 6억2000만원어치, 대장균이 검출된 제품 20억원어치, 공업용 기계 나사가 나온 제품 70억원어치 등 총 13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제품 중 회수에 성공한 제품은 1억원 선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수사담당 이모 검사는 “식약청과 공조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에 연락하지 않았고, 이미 판매돼 유통되고 있는 제품에 대한 추적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남대문시장에서는 이들 다이어트 제품이 수입품으로 둔갑해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정오염식품의 수거작업을 의뢰받은 지자체도 열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5월31일 아스팔트 도색제로 쓰이는 공업용 염색제 아닐린 블랙 123.5kg이 섞인 냉면가루 200t과 감자 떡가루 40t, 메밀가루 60t 등 총 300t을 적발한 식약청은 즉시 서울시와 경기도에 수거조치 협조공문을 띄웠다. 섭취할 경우 현기증과 두통, 이명(耳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데도 이후 두 달 간 지자체가 수거한 제품 총량은 1.5t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시 위생과 한 관계자는 “각 기초자치단체들의 단속 역량에 한계가 있고 식약청과 검찰, 경찰에서 공문이 오는 데 2∼3일, 길게는 일주일이 걸려 그 사이 업자들이 오염식품을 숨겨버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돈벌이를 위해 먹는 음식물에 유해물질을 넣는 사람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효율적인 처벌을 위해 법의 손질도 검토하겠다.”(노무현 대통령, 11월14일 국무회의)

    ‘엽기적’ 오염식품 유통사건이 유독 많았던 2003년,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와 달리 실무기관에서는 대통령의 호통을 여전히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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