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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포장마차, 2003 한국 자화상

가난한 그 시절 낭만을 돌려다오

인심 가득한 소주 한잔 힘겨운 삶 위로­… 요즘 기업형 '포차'에서 情을 찾을 수 있나

  • 이장호/ 영화감독

가난한 그 시절 낭만을 돌려다오

가난한 그 시절 낭만을 돌려다오

허가제로 운영되는 일본 포장마차. 낯익은 안주를 깔끔하게 조리해 내지만 우리들의 그 넉넉한 추억의 포장마차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부산에서 비행기로 30분도 채 안 걸리는 일본의 후쿠오카, 거기 하카다에 가면 옛날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같은 작고 아담한 포장마차들이 강변에 끝없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차림표에는 삶은 오징어와 어묵, 그리고 도가니, 곱창, 꼬치 등 이방인인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들이 적혀 있다. 이곳은 라면이 맛있다. 무엇보다 위생적이고 깔끔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포장마차를 뜻밖에 후쿠오카에서 만나니 신기하기까지 한데, 사실 일본 전체에서 이런 한국형 포장마차가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그런데 이곳의 포장마차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매우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간이 상·하수도 시설을 자체적으로 갖춰놓고 있고 포장마차 천장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발부받은 허가서를 붙여놓았다. 전혀 바가지요금이 없다. 한국에선 포장마차가 허가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엉뚱한 사람들이 자릿세를 받는다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했던 많은 영화인들의 머릿속에는 해운대 바닷가의 포장마차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백사장 바로 위 좁은 산책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포장마차들, 정말 특별한 장관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옛날의 소박한 모습이 아니라 아주 이색적인 초고급형 포장마차로,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 음향시설 및 네온사인까지 동원해 서울에서 온 손님들의 눈을 어지럽혔던 것이다. 몇몇 시설은 거의 기업형이라고 할까? 고급 노래방 시설은 물론 ‘호스티스’까지 준비되어 있어 멋모르고 술을 마신 영화인들이 나중에 계산할 때 상식을 초월한 술값에 모두 눈이 동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두어 사람이 소주 몇 병 ‘까고’ 그 흔한 해산물 몇 접시 시켜 먹었을 뿐인데 술값으로 10여만원을 지불해야 했을 때는 기분 좋게 취했던 술기운이 일순간 사라지고 만정이 떨어졌다. 오래 가지 않아 해운대의 그 악명 높았던 포장마차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외환위기를 맞아 타산이 맞지 않아 이렇게 저렇게 변모하다가 미관상의 이유로 철거되지 않았나 싶다. 이처럼 포장마차의 낭만이 사라져버린 대형 거리점거형 포장마차와 기업형 실내포장마차가 늘어나면서 추억 속의 정겨운 포장마차가 더욱 간절해졌다.

역시 가난했던 시절 서민들에게 술 한 잔의 위로를 주었던 포장마차의 술맛이 최고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잔술이어서 한 홉들이 컵으로 소주 한 잔을 시켜도 안주하라며 풋고추 하나 쥐어주는 주인장과 따뜻한 인심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꿈같은 공간이었다. 막걸리를 커다란 사발에 담아 팔고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과 김치가 더 맛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금도 변두리에는 이런 정다운 포장마차가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차림표에 올라 있는 음식들이 획일적으로 대량생산된 것을 구입해놓은 거라니 어쩐지 꺼림칙하다. 거기에선 특별한 손맛도, 정도 느낄 수가 없다.

전주서 만난 막걸리 ‘포차’ 아직도 서민들의 천국

그에 비해 내가 자주 들르는 전북 전주의 한 포장마차는 아직도 천국 같다. 막걸리 한 되 시키면 옛날 주전자에 그야말로 꽉꽉 눌러 넘치도록 준다. 친구와 둘이서 취하도록 마셨는데도 8000원밖에 나오지 않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죄송스런 마음에 만원짜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내빼듯 나왔는데 다음번에 찾았을 때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안주를 황송할 정도로 푸짐하게 내왔다. 생선매운탕이 서비스로 나온다. 서울서 내려온 손들이랑 어울려 열댓 명이 실컷 막걸리를 마셨는데 10만원이 채 안 나와 서울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렇게 장사하고도 밑지지 않는지 주인장은 그저 싱글벙글이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지 술 마시는 객들이 그 행복을 그냥 줍는다.



주간동아 414호 (p32~32)

이장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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