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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신학철 ‘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 展

민중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민중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민중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모내기’와 함께 압수됐던 ‘바우고개’(미완성). 돌려받은 당시의 상태대로 전시됐다.

‘1989년 8월17일 아침 6시경 낯선 사람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낯선 사람들은 ‘모내기’와 판화와 소품 몇 점을 압수하고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겹눈을 가진 화가-신학철의 무장된 시선’, 황지우와의 대담 중)

농촌의 풍경을 그린 ‘모내기’는 서울시경 대공과에 압수되었고 작가 신학철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9년에 일어난 ‘모내기 사건’은 단지 그림의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법부가 작가를 감옥에 집어넣은, 전례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내기’는 80년대 반문화적 역사와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3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2000년에야 사면복권된 작가 신학철이 지금 문예진흥원 대표작가 초대전 기획으로 ‘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12년 만으로, 폐기 선고를 받았던 ‘모내기’의 ‘그 후’가 우선 궁금했다.

“아직은 검찰에서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심의하는 동안 작품을 폐기하지 말라고 법무부에 통보했거든요. 하지만 작품 자체는 그 사람들이 접어 갖고 다녀서 완전히 망가졌어요.”

70년대 초기작부터 ‘이라크전’까지



민중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신학철씨.

‘모내기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미술관 세 개의 전시실 중 하나는 ‘모내기 사건’에 할애되어 있다. 그림 ‘모내기’의 복사 프린트, 경찰이 ‘모내기’와 함께 압수했다 돌려준 소품, 동료 작가들이 항의의 뜻으로 ‘불온한 상상력’전을 열며 그린 불그죽죽한 그림들, 길고 지루한 재판의 기록 등. 그 중심에 선 신학철은 과거 민중미술의 성취와 그 미래에 대한 고민을 증명해주는 작가다.

1970년대 초 ‘아방가르드 그룹’에 속해 있던 신학철은 홍익대 서양학과 출신답게 처음엔 서구 모더니즘에 깊이 경도되었다. 그는 1971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앙데빵당전’에 화초의 밑둥을 잘라 광목천 위에 올려놓았고, 다음해 ‘AG전’에서는 관처럼 생긴 상자에 살아 있는 닭 8마리를 넣어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잘려나간 화초는 죄가 없어요. 단지 나한테 잘못 걸린 거지. 신은 그 화초가 잘리도록 방관한 게 아닐까, 결국 질서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닭을 관에 넣은 건 뭔가 답답하단 기분에…. 하여간 이 전시가 문제 되어 작가 하나는 ‘붉은 방’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나왔죠.”

아방가르드에서 형태와 색을 제거하는 미니멀리즘까지 갔던 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캔버스 위에 형상을 되살려냈다. 오브제를 사용하던 그는 화면 위에 기성품 사진을 오려붙이는 포토콜라주 작업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가 ‘본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쁜 모델, 비싼 상품이 나오는 광고 사진, 에로틱한 포르노를 보면 그것이 노리고 있는 것이 보이면서 역겨움이 느껴지는 거예요. 또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이 내 눈에 똑똑히 영상으로 들어옵니다. 그건 군사독재이기도 하고 미국이기도 하고 돈이기도 하지요. 물론 보통의 ‘갑돌이’와 ‘갑순이’들은 그저 모른 채 살아가요. 그래서 나 보고 초현실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존재하는 걸 그린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이라고 말합니다.”

1980년 콜라주 기법으로 ‘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을 완성한 작가는 이후 현대사의 사건들을 시간순서에 따라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오르게 한 연작을 시작한다. 야만적 본성과 기계문명의 결합에 대한 경고가 담긴 ‘근현대사’ 연작 중 하나인 ‘한국근대사 6’에는 기모노를 입은 코카콜라와 장영자, 이철희, 박동명이 보이고 의령양민학살 때의 경찰과 부패공무원의 모습이 숨가쁘게 흘러간다.

이처럼 80년대 한국근현대사 연작이 수직 구도에 주요 사건들을 계기별로 형상화한 반면, 광주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된 20m 길이의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는 왼쪽에 군부독재, 오른쪽에 재벌을 두고 그 유착이 생성한 한국의 현실을 수평 구도로 폭넓게 구현한다. 그 중심엔 판도라의 상자와 강간의 포르노가 놓인다. 덕분에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는 ‘민중적 상상력의 코드가 군사적 상상력의 원리를 복제’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묻기도 했다.

“80년대 민중 미술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주려고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디다. 이젠 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그려보자고 다짐한 결과가 ‘갑순이와 갑돌이’입니다.”

70년대 초기작에서 ‘갑순이와 갑돌이’를 거쳐 ‘이라크전’(2003)에 이르는 신학철의 개인전은 한국 민중미술의 궤적을 단절 없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2월21일까지. 전시문의 02-760-4605

민중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 2002.





주간동아 413호 (p86~8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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