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2003.11.06

“당신은 웰빙하고 계십니까”

  • 박지선 / 웰빙 매거진 얼루어 (allure) 편집장

    입력2003-10-30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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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웰빙하고 계십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때에 따라서 욕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좋은 덕담도 없다. 최근 ‘따라 하고 싶은 매력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웰빙’의 참뜻은 ‘잘 존재하는 것’, 즉 잘 먹고 잘 지내는 것이다. 여기에 조금 살을 보태면 겉으로 보이는 1차적인 것에 대해서만 ‘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잘’이 웰빙이다. 그리하여 지금보다는 생활의 질을 좀더 높이는 것, 스스로를 배려하는 것, 자신을 귀하게 가꾸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웰빙은 시공을 초월해 존재해온 가치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그럼에도 새삼 웰빙이 조명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웰빙 뷰티’ ‘웰빙 라이프 스타일’ ‘웰빙 트래블’ ‘웰빙 푸드’…. 마케팅의 전도사로 맹렬하게 다가오고 있는 웰빙. 왜일까? ‘빠름’과 ‘성장’만을 미덕으로 여기던 우리에게 새로운 오아시스가 되어줄 것 같은 믿음 때문이 아닐까. 원정 출산까지 마다 않으며 ‘성선설’과 ‘성악설’이 아니라 타고난 ‘경쟁심’으로 버텨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로고가 선명한 명품 브랜드 백이 아니라 ‘건강, 휴식, 자연, 행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졸라맨 허리띠를 풀고 샴페인을 터뜨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웰빙은 지금의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산유국 왕비의 웰빙을 부러워하며 월급 생활자 신세를 한탄하는 것은 웰빙의 천적이다. 경쟁하듯 명품 백을 소유하기 위해 카드빚을 떠안음으로써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 역시 웰빙을 방해한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웰빙은 불가능하다. 명품족이 보여지는 것으로 승부했다면 웰빙족은 합리적으로 소비할 줄 아는 이들이다. 특정 브랜드의 구두를 사 신음으로써 행복감을 얻지만, 할인매장에서 1만원짜리 티셔츠를 사 코디하는 센스를 지닌 일명 ‘나비족’의 소비 태도가 웰빙인 것이다.

    웰빙이란 ‘잘 먹고 잘 사는 것’ ‘나를 위한 행복 찾기’

    지난해 11월,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에게 ‘웰빙’에 관해 질문했다. 당시만 해도 응답자의 70% 정도가 ‘잘 모르겠다’ 또는 ‘복지(福祉)’가 아니냐고 답했었다. 그러나 올 10월 초에 있었던 또 한 번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나를 위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웰빙이라고 하는 등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의 웰빙은 딩크족, 보보스족과 같이 트렌드의 한 요소로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요가를 하고(요가 인구가 하루에 5000명씩 증가한다고 한다), 오가닉 푸드를 즐기고, 친자연주의 브랜드의 제품들을 구입하고, 스파와 마사지를 정기적으로 즐기는 이들이 웰빙족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른 비즈니스도 확대되고 있다. 건물이 생길 때마다 스포츠센터가 문을 열 만큼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오가닉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등장하고, 다양한 유기농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스포츠 웨어를 시티 캐주얼에 접목시킨 ‘캐포츠 스타일’ 또한 웰빙 트렌드와 함께 떠오르는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뷰트니스’(뷰티와 피트니스를 결합시킨 단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대기업에서도 ‘웰니스’(wellness·웰빙을 근간으로 한 뷰티, 레저, 리빙을 총괄하는 단어) 사업팀을 발족시키고 있다. 호텔 등도 유기농 식사와 스파 등을 패키지로 묶은 ‘웰빙 상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갖추고 누려야만 웰빙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산책하고, 건강을 위해 비타민을 챙겨 먹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발 마사지를 받고, 여자 친구들끼리 유방암 검사를 받으러 가고, 동호회에 참여해 주말여행을 떠나거나 맛집을 순례하는 일. 이 모두가 웰빙이라는 커다란 퍼즐을 완성하는 작은 조각들이다. 각자의 개성에 맞게 건강과 안정을 추구하는 삶. 나의 독특한 개성과 취향을 반영해 행복을 찾아가는 일. 웰빙은 그저 따라 하고 싶은 새로운 가치가 아닌, 즐기고 누려야 할 삶의 기준이다.



    웰빙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잡지의 편집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당신은 어떻게 웰빙하죠?”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야근과 스트레스가 웰빙의 가장 큰 적이지만 도저히 그것을 피하지는 못한다. 단지 나는 내 나름대로의 웰빙을 즐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점 기웃거리기,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연장 가기(친구들과 ‘문화회’를 조직했다), 아로마향 느끼기, 한 달에 한 번 스파에서 마사지 받기 등 내가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기쁘게 즐기는 게 웰빙이 아닐까?

    ‘당신은 웰빙하고 계십니까?’라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당신이라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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