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2003.11.06

LG 통신 사업 ‘위기일발’

‘하나로’ 인수 실패로 사업 구상 물거품 … 시장 불신·기업 이미지 추락 등 동반 후유증도 커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0-29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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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통신 사업 ‘위기일발’

    10월21일, 하나로통신 임시주총에서 외자유치안이 통과되자 환호하는 직원 및 소액주주들.LG그룹 구본무 회장(왼쪽).

    ”잘못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하나로통신 직원들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난 8월5일, LG그룹이 하나로통신 인수를 위해 임시주주총회(이하 임시주총)에 상정한 유상증자안이 부결되자 LG텔레콤의 한 상무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77일,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10월21일, 하나로통신 임시주총은 뉴브리지-AIG 컨소시엄과 체결한 총 1조3000억원의 외자유치(안)를 최종승인했다. 외자가 하나로통신의 새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로통신 임직원들은 결사적인 주주 위임장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인수전 과정에서 보여준 LG의 행보에 하나로통신 직원들이 강한 불신을 갖게 된 결과였다.

    건곤일척 승부에서 자만에 차 惡手 거듭

    이번 실패로 인해 LG는 향후 통신사업 추진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음은 물론 시장의 의심, 임직원들의 동요, 기업 이미지 추락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이는 곧바로 그룹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LG 통신산업 위기론’의 진원지가 다름 아닌 그룹 내부이며 “이번 딜의 결정적 패인은 그룹의 역량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구회장으로서는 총수 취임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사실 인수전 초기만 해도 승리의 여신은 LG 편인 듯했다. 우선 3월 신윤식 전 하나로통신 회장을 경영권 인수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6월에는 정홍식 전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차관을 통신부문총괄사장으로 영입했고, 이어 7월3일엔 1대 주주(15.88%)의 힘을 십분 활용해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안을 부결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LG의 투자 여력과 하나로통신 인수 의도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LG측은 “하나로통신에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 이를 바탕 삼아 명실상부한 통신 3강의 한 축으로 국가통신산업 발전을 위한 소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하나로통신 주주와 임직원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LG가 헐값에 하나로통신을 꿀꺽하려 한다. 그것도 통신산업을 잘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부채덩어리인 데이콤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밖의 시각이었다. 이는 점차 사실로 드러났으며 그 핵심에는 “데이콤 문제 해결 없이는 거래도 없다”는 구회장의 확고한 뜻이 숨어 있었다.

    데이콤 인수는 구회장의 총수 취임 후 첫 작품이었다. 구회장은 주당 28만원까지 돈을 지불해가며 데이콤 인수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현재 데이콤 주가는 8000원 선이며, 부채는 1조8000억원에 이른다. 데이콤 회생을 위해 8000억원을 들여 파워콤을 인수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하던 때에 하나로통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실 LG는 2001년 말과 2002년 초, 각각 3000억원과 2000억원에 하나로통신을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신윤식 당시 하나로통신 사장은 “주인이 있은 다음에 외자를 유치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봤다. 그런데 LG는 계속 ‘통신사업에 대해 아직 결심을 못했다’며 차라리 외자유치에 나서라는 답변만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2002년 말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엄청난 부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통신에 대한 외자의 ‘입질’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로통신 인수→데이콤 합병→외자유치→두루넷(온세통신 합병으로 덩치 키우기→정부의 적극적 지원 요구→유무선통합사업자 변신→기업가치 상승→해외 매각’의 로드맵을 그리게 된 것이다.

    LG 통신 사업 ‘위기일발’

    하나로통신은 10월9일 조선호텔에서 뉴브리지-AIG 컨소시엄과 11억 달러의 외자유치 및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

    이렇게 볼 때, 통신 부문은 물론 그룹 전체적으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로통신 인수는 LG의 미래가 달린 건곤일척의 승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대 주주인 만큼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나 LG는 무슨 마라도 낀 것처럼 거듭 악수(惡手)를 두었다. 마침내는 거래 당사자들이 “두 수는커녕 한 수도 못 내다본다”고 비아냥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첫째 요인은 이른바 ‘오너의 뜻’인 데이콤 문제 해결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이다. LG의 한 임원은 “‘하나로-데이콤 합병’이 빠진 안은 아예 올릴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내 패’를 거래 상대에게 고스란히 노출하는 실책으로 이어졌다. 8월 초 유상증자안 부결 직후 만난 정홍식 LG통신부문총괄사장 또한 “합병 문제를 먼저 치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의 빛을 내비쳤다. “통신산업 구조조정이란 명분이 있는 만큼 잘 되리라 생각했다. 자신감이 지나쳤던 점, ‘이지 고잉(easy going)’하려 한 점을 반성한다”고도 했다.

    ‘헐값 인수 시도’ 비난에 시달려

    실제로 LG는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정통부)의 지원만 얻어내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하나로통신 2·3대 주주인 삼성전자·SK텔레콤(이하 SKT)을 유효한 방식으로 설득하거나, 유상증자안 통과를 위해 지분을 인수하고 위임장을 모으는 등의 실질적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청와대측에 2차례나 자사의 입장을 강변하는 보고서를 올리는 등 과욋일에 더 많은 정력을 쏟아 부었다.

    이렇듯 근거 없는 자신감은 “최소한의 비용만 쓰겠다”는 방침으로 이어졌다. LG는 유상증자 안 상정 전 2대 주주인 삼성전자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을 벌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주당 평균 1만1000원에 인수한 주식을 9000원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LG는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대신 8월5일 임시주총에서 주당 2500원의 유상증자안을 제시했다.

    주주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이후 LG는 “5000억원은커녕 2000억원이라는 헐값에 하나로통신을 먹으려 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LG가 이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된 데에는 딜을 주도한 쪽이 통신전문 인력이 아닌, 구회장 직속의 지주회사(구 그룹 구조조정본부) 소속 재무전문가들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통신산업의 특성은 무시한 채 오로지 재무적 관점에서만 사안을 다룬 것. 큰 거래에 반드시 필요한 집요하고 끈질긴 협상과 다각도의 전략 수립은 무시되다시피 했다. LG의 한 임원은 “실무라인에서는 너무 비싸게 샀다는 책임 추궁에 직면할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렇듯 재무적 관점에서 짜여진 안에서조차 LG는 ‘재무적으로’ 큰 허점을 드러냈다. 7월 말, LG측은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만나 자사의 유상증자안과 통신구조조정안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진장관은 “데이콤과 합병하려면 주식매수청구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복안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나 LG측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진장관이 LG 안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고 한다. 이후 진장관이 직·간접적으로 “LG 안에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적 견해를 거듭 밝히기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아킬레스 건은 이른바 국부유출론. LG측은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안은 국가 기간통신망을 이익에만 눈먼 국적 불명의 헤지펀드에 헐값에 매각하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취재 결과 LG 안 또한 최종목표는 해외매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로통신-데이콤-파워콤-두루넷-온세통신 등을 한데 묶어 거대 통신그룹을 만든 뒤,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고 유무선통합서비스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구조를 확립해 해외자본에 매각한다는 것.

    이에 대해 정홍식 사장은 “잘 되면 2~3년 안에 결실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도 우리가 1위 사업자는 아닐 것이므로 오히려 (해외매각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LG는 10월21 임시주총을 앞두고 “외자유치안을 반드시 부결시키겠다”며 강한 결의와 자신감을 내비쳤다. 칼라일그룹과의 협상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때문. 실제로 LG는 임시주총 6일 전 전격적으로 “칼라일과 함께 하나로통신에 13억4000만 달러(약 1조5400억원)을 공동투자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순간 전세가 역전되는 듯했으나 시장은 냉정했다.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다 LG측에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까닭이다.

    또한 LG는 하나로통신 임직원의 소액주주 위임장 확보 노력을 수수방관하다 뒤늦게야 그 심각성을 인식, 허둥대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데이콤 직원들을 동원해 부랴부랴 위임장 확보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와 관련, 데이콤 노조는 외자유치안 통과 다음날인 22일, ‘위임장 확보 노역에 동원된 계열사가 실제적으로 데이콤뿐이었다는 데 마음의 상처를 넘어 분노가 치민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제 하나로통신은 영영 LG 품을 떠났다. 데이콤 인수, 그리고 2000년 12월 IMT 2000 비동기식 사업자 선정 무산 등으로 점차 심화되고 있는 통신산업 부문의 위기를 LG는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이미 2001년 말 LG는 SKT와 KTF에 비공식 라인을 통해 LG텔레콤 인수를 타진한 적이 있다. 결국 그 비슷한 해결책을 찾게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룹 내의 ‘심리적 위기’ 극복도 큰 숙제다. 오너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에 대한 임직원 신뢰 회복이 급선무인 것. 그룹의 통신사업을 담당하며 이번 일을 추진해 온 고위직 임원에 대한 대대적 인사설이 떠도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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