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6

2003.10.23

헌혈 홍보 절호의 기회 대통령 헌혈 불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0-15 13: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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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즈 수혈사고 파동으로 각 병원의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자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헌혈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노대통령은 9월22일 청와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랑의 헌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비서실동 앞에 마련된 채혈 장소를 직접 찾았으나, 문진 과정에서 허리통증을 줄이기 위해 소염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헌혈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헌혈은 날로 감소해가는 헌혈인구를 늘리기 위해 적십자사가 전략적으로 실시하는 일종의 홍보성 행사로 예전에는 매년 1~2회 실시하는 게 관행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현직 대통령의 나이(65세 이상은 헌혈 대상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채혈을 하지 못한 적십자사로서는 노대통령의 헌혈이 실로 오랜만에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였다.

    대통령이 헌혈하러 왔다 돌아가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헌혈 당시 문진을 한 간호사에게 시선이 쏠렸다. 적십자사 혈액원의 한 관계자는 “간호사로서는 헌혈하러 온 사람이 대통령이든 누구든 할 일을 한 것뿐이지만 일부에서 대통령한테까지 까다롭게 문진을 해 일을 그르쳤다는 비난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수년간 헌혈시 전문적으로 문진을 해왔던 해당 간호사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통령이 헌혈한 다음날부터 문진 간호사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즉 대통령의 헌혈은 홍보성 행사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문진한 후 혈액을 받아 폐기하면 되는데 간호사의 공명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이야기다.

    적십자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헌혈 해프닝에 대한 책임은 청와대 헌혈 행사를 기획한 적십자사 간부들의 책임”이라며 “청와대 전체를 대상으로 한 헌혈이 대통령의 헌혈 일주일 전부터 계속됐기 때문에 비서실에 연락해 대통령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일주일 후 계획대로 헌혈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헌혈시 문진을 담당했던 간호사는 “대통령의 헌혈 실패와 관련해 적십자사로부터 어떤 부당한 대우나 비난을 받은 적이 없다”며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대통령의 헌혈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 문제는 비켜가려는 분위기다.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측은 “대통령의 약 복용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던 점 등 대통령의 헌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것은 사실이지만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적십자사는 건국 이후 최악이라는 혈액파동 와중에 가장 큰 헌혈 홍보행사를 스스로 무산시킨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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