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2003.10.02

“부안 발전 위한 일 vs 끝까지 철회투쟁”

김종규 군수 “방폐장 안전, 후회 없는 결정” … 김종성 위원장 “신념 아닌 망상, 우리 뜻 관철”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09-25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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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 발전 위한 일 vs 끝까지 철회투쟁”

    9월17일 코뼈 수술을 받은 김종규 부안군수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왼쪽) .18일 부안성당에서 만난 김종성 핵폐기장 반대 범부안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용하던 내소사(전북 부안군 부안읍 진서면)에 9월8일 ‘핵폭풍’이 불었다.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유치에 앞장서온 김종규 부안군수가 이곳에서 핵폐기장 유치에 격분한 군민들에게 폭행당해 전치 5~6주의 중상을 입은 것. 김군수가 전북대병원에 입원하면서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사업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고, 부안에서는 연일 ‘핵 반대’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갈등과 투쟁으로 번민하는 부안은 어찌 될까. 핵심 열쇠를 쥔 김군수와 핵폐기장 반대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김종성 집행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종규 부안군수

    ‘사탕군수’. 김종규 부안군수의 별명이다. 지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군민에게 일일이 사탕을 나눠주며 민선군수에 당선됐다. 부안군민들은 입지전적으로 군수 자리에 오른 그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7월 중순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유치 선언’으로 군민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매향노’로 바뀌었다. 폭행당한 후 얻은 육체적 상처보다 돌아선 민심이 김군수에게는 더 아플 듯하다.

    9월19일 10여명의 사복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는 전북대병원 4층의 입원실에서 어렵사리 김군수를 만났다. 이틀 전 코뼈 수술을 받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는 다친 폐 때문에 연신 가래 섞인 기침을 쏟아내며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안군청 백종기 기획계장의 도움으로 ‘서면인터뷰’가 동시에 진행됐다. 김군수는 “반핵단체나 환경단체의 선동에 너무나 쉽게 세뇌된 군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다”며 “나의 선택이 분명 전북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안 발전 위한 일 vs 끝까지 철회투쟁”

    취재기자는 전북대병원 병실에서 김종규 부안군수(오른쪽)와 20분간의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내소사에서 주민들에게 폭행당할 때의 심정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처음엔 당황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휘발유를 뿌린 승용차에 강제로 밀어넣으려고 할 때는 아찔했다. 진실로 부안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 마음을 군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소사에서 일부 주민들은 김군수가 피할 길이 있다는 것을 통보해준 것으로 안다. 일각에서는 위험을 무릅쓴 김군수의 선택을 ‘여론의 반전’을 위한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여론의 반전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겠는가. 그 자리에 섰던 것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이었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호도하지 말아달라.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야지 왜곡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신에 대한 평가가 ‘매향노’와 ‘순교자’로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나는 ‘매향노’도 ‘순교자’도 아니다. 아름다운 부안의 미래를 가꿔보고 싶은 군수일 뿐이다. 지금도 반핵단체 등 일부 강경파들의 왜곡된 주장이 주민들을 너무 쉽게 세뇌시키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내 결정이 개인의 이익이나 정치적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안군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것이란 것을 군민들이 이해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혐오시설이다. 모두가 꺼리고 기피하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부터 많은 국내외 전문가와 학자들을 만나 의문점에 대해 속시원한 설명을 들었으며,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또 확인해 안전성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0여개국 70여개 처분장에서 30~40년 이상 안전성이 입증되고 상용화된 기술로,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한 보관기술이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안전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산업자원부의 지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위도에 대통령 별장을 짓겠다고 했는데….

    “원전수거물 처리장의 안전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무 장관으로서 상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주민생활 통제나 개발제한 문제 등의 걸림돌을 해소하면서 위도 주민을 비롯해 부안군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결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의견을 가졌던 강현욱 전북도지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이나 지사도 각별한 애정으로 부안을 살펴주며 2대 국책사업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군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확고한 의지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부안군민들의 ‘등교거부운동’과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군민들의 분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학생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등교해야 한다. 또 찬반 양측 모두 공평하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 단계 높은 시위문화가 실현돼야 한다.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특정인을 음해하고 선동하는 일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이번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고집 때문에 유치한 것도 아니다. 부안이 전북의 4대 도시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현실로 만들겠다. 부안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이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책위 김종성 집행위원장

    9월18일 오후 8시, 부안에서는 핵폐기장 반대 시위가 변함없이 이어졌다. ‘촛불시위: 55일째, 등교 거부: 26일째.’ 시위 진행을 알리는 팻말이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부안읍 공덕리 ‘반핵민주광장’에는 김군수에 대한 분노가 담긴 낙서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대책위의 일부 구성원들은 경찰 수배를 피해 현재 부안성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부안성당에서 만난 김종성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병상에 있는 김군수를 극력 비판하며 “핵반대 투쟁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안 발전 위한 일 vs 끝까지 철회투쟁”

    전북 부안군 부안읍 공덕리 반핵민주광장에는 매일 평균 1500여명의 군민들이 촛불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김군수 폭행사건 이후 부안군민들의 과도한 공격적 태도에 대해 비판 여론이 많다.

    “부안주민들을 ‘폭력집단’으로 모는 언론보도에 안타까웠다. 내소사 점거 당시 대책위에서는 김군수가 주민들을 피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줬고, 그 사실이 김군수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하지만 김군수가 고집을 피워 주민 앞에 선 것이다. 목격자에 따르면 김군수를 처음 때린 것은 아주머니들이었고 김군수가 도망가는 과정에서 전경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600여명의 주민에게 둘러싸인 김군수를 구별해내지 못해 생긴 일이다.”

    -병상에 있는 김군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옳지 않은 것을 믿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망상이다. 김군수가 회장으로 있는 부안체육회마저 오늘 ‘핵폐기장 유치를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부안군민들을 먼저 배려하는 듯이 말하는 김군수의 발언이 가증스럽다.”

    -만약 부안이 유치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지역이 핵처리장 유치를 놓고 진통을 겪을 것이다. 투쟁 이후 대안을 고민한 적이 있는가.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우리 지역에 핵폐기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핵에너지 정책의 변환’이 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핵산업자들은 핵폐기장 건설이 왜 절실한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핵 사용을 늘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핵폐기장 건설은 핵발전을 늘리겠다는 핵산업자들의 음모다.

    부안의 투쟁이 승리한다면 다른 지역의 반핵운동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다. 과거 전북 영광, 고창군에서 ‘반핵 운동’이 일었을 때 강 건너 불구경했던 사실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투쟁의 승리를 확신하는가.

    “부안은 지금까지 감동의 연속이었다. 소를 팔아 200만원을 대책위의 운영비용으로 내놓은 할머니부터 매일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1500여명의 군민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승리에 대한 확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비폭력 평화시위로 우리의 뜻을 관철하겠다.”

    -이번 사업을 강행하는 정부에게 할 말이 있다면….

    “충분한 주민 여론 수렴 없이 군수의 자율적 판단으로 이뤄진 핵폐기장 신청을 그대로 받아들인 정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전경특공대를 투입해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참여정부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과 다름없는 부안지역 주민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 많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민주적 절차’를 통한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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