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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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차 방송 베테랑 ‘무대로의 외출’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7-10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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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아침 KBS 1TV의 ‘뉴스광장’에서 명랑한 목소리로 하루 날씨를 알려주는 이익선은 방송 외에도 한성대 영상정보학과 강사, 기업 강연 등으로 바쁘다. 그 바쁜 스케줄을 쪼개 굳이 연극무대에까지 서는 까닭은 뭘까.
    14년차 방송 베테랑 ‘무대로의 외출’

    연극계 ‘선배’들과 함께 연습중인 이익선(가운데). 그는 “연극계는 도제 시스템을 따른다. 나는 철저히 후배의 자세로 하나씩 배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삶은 지금까지 항상 도전이었어요. 내성적인 막내딸이던 제가 방송인이 된 것이나 TV 방송사상 최초의 여성 기상 캐스터가 된 것 모두 제 자신의 틀을 깨는 도전이었지요.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성공이나 실패,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익선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결코 실패를 걱정하지 않는, 아니 아예 실패를 예상조차 하지 않는 얼굴이다. 자신에게 ‘잘할 수 있어’라는 주문을 거듭 걸고 있다는 그는 요즘 저녁마다 대학로에서 연극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7월10일부터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연극 ‘우동 한 그릇’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이익선은 더블캐스팅으로 석 달간 공연되는 이 작품에서 B팀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공연은 7월10일에 시작되지만 저는 8월부터 무대에 서게 돼요. 그래서 요즘 한창 대사 연습중이에요. 제게는 연극 데뷔 무대인데, 시작부터 이렇게 좋은 작품에 참가하게 됐으니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년 연말이면 삿포로 우동집에 와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가는 가난한 세 모자 이야기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일본 열도를 울린 구리 료헤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우동 한 그릇’은 일체의 각색 없이 소설을 그대로 연극무대에 올려놓는 ‘픽션 라이브(Fiction Live)’ 형태로 공연된다. 쉽게 말해 책 한 권을 가감 없이 연극화하는 셈.

    미국에서는 출판사들이 신작을 홍보하기 위해 알 파치노 등 유명 배우들을 내세워 픽션 라이브를 많이 공연하고 있다고.



    소설을 각색하지 않고 공연하기 때문에 픽션 라이브에는 대사보다 내러티브가 더 많다.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이 내러티브를 나누어 맡는다. 방송인인 이익선에게는 유리한 셈이다. ‘우동 한 그릇’의 연출자인 김동수 대표는 “이익선이 딕션과 감성이 좋기 때문에 어머니 역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어서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사실 이익선의 연극무대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7년에도 박상아와 더블캐스팅돼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연극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방송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20여일의 연습 끝에 결국 출연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당시도 연출자가 김동수 선생님이셨어요. 어딘가에서 제 인터뷰를 보시고 먼저 ‘연극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너무 안타깝고 죄송했죠. 이번에는 다행히 방송 스케줄도 여유 있는 상태고, 또 역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결심했어요.”

    제대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익선은 EBS ‘고교세계사’에서 선덕여왕 등 몇몇 역사 속 인물을 1인극으로 재현해본 경험이 있다. 이때 ‘예상외로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사실 영화에도 한 번 출연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깜짝 출연했는데, 아쉽게 편집에서 잘렸죠.”

    14년차 방송 베테랑 ‘무대로의 외출’
    그가 본 ‘우동 한 그릇’의 어머니는 한마디로 강인한 여성이다. “한 해 마지막 날, 손님으로 붐비는 가게에 세 사람이 와서 단 한 그릇의 우동을 시키는 일은 쉬운 게 아니죠.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자존심을 버린 거예요.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결코 서러워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그만큼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 역할인데,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 해서 큰일이에요. 무대에서 울면 안 될 텐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사소한 사연에도 눈물을 흘린다는 그다.

    방송경력 14년차. 일기예보만 13년을 해온 베테랑 방송인이지만 이익선은 연극 연습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깍듯이 ‘선배’라는 호칭을 붙인다. 연극계에서는 자신이 신참이기 때문이라고. 같이 연습하는 연극계 선배들에게 조언도 많이 들었다. “예를 들면, 공연중에는 관객을 쳐다보지 말고 관객과 관객 사이의 공간을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관객과 눈이 마주쳐서 순간적으로 실수하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거죠.”

    매일 아침 KBS 1TV의 ‘뉴스광장’에서 명랑한 목소리로 하루 날씨를 알려주는 이익선은 방송 외에도 한성대 영상정보학과 강사, 기업 강연 등으로 바쁘다. 그 바쁜 스케줄을 쪼개 굳이 연극무대에까지 서는 까닭은 뭘까. 인터뷰 말미에서야 그가 조금 본심을 털어놓는다. “저 솔직히 요즘 정체기예요. 연극이 제 인생이나 방송에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방송에서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들, 다 보여주지 못했던 ‘이익선’을 연극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13년간 시청자들은 매일 비슷비슷한 내용의 일기예보를 반복하면서도 우비를 입고 우산을 흔들며 진행하거나, 때로는 기상천외한 발랄한 멘트를 들려주며 매번 다른 일기예보를 선보이는 그를 보아왔다. 그러나 이익선의 마음 밑바닥에는 아직도 더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고여 있나 보다. 그것이 무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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