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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삼국지’ 전쟁 뜨겁다 뜨거워

황석영 삼국지 출간 이문열에 도전장 … 김정산씨 10년 역작 ‘삼한지’도 완간 예정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올 여름 ‘삼국지’ 전쟁 뜨겁다 뜨거워

올 여름 ‘삼국지’ 전쟁 뜨겁다 뜨거워

창작과 비평사

황석영 ‘삼국지’(전 10권·창작과비평사 펴냄, 이하 창비)의 판매 속도가 놀랍다. 6월15일부터 보름 동안 인터넷서점을 통해 예약 판매된 책만 2000세트. 정식 발매 후 일주일도 안 돼 1만5000세트가 팔려나가 다시 1만 세트를 추가로 찍었다. 게다가 낱권보다 세트 판매 중심이어서 지금의 속도대로라면 곧 30만부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황석영 ‘삼국지’의 등장으로 1988년 초판 발간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이문열 ‘삼국지’(민음사 펴냄)가 강력한 라이벌을 만났다. 15년 동안 판매된 이문열 ‘삼국지’의 총 판매부수는 1400만부에 달한다. 매년 100만부 가까이 팔린 셈이다. 물론 한창 때(연간 150만부)에 비해 판매가 저조하다고 하지만 지금도 해마다 50만~80만부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과연 황석영 ‘삼국지’가 이문열 ‘삼국지’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황석영 대 이문열, 창비 대 민음사라는 라이벌 대결에 출판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창비 對 민음사 출판 라이벌 대결

2001년 말 열림원에서 조성기의 ‘삼국지’가 나올 때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다. 당시 열림원은 ‘정역’을 내세워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에 맞섰다. 하지만 독자들은 원본에 충실한 정역 ‘삼국지’보다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 가미된 평역 ‘삼국지’를 선호했다.

황석영씨는 ‘원문의 맛 그대로 느끼는 고전의 재미’를 강조하며 삼국지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창비측은 황석영 ‘삼국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원전의 판본(1999년 상하이 강소고적 출판사에서 출간한 ‘수상삼국연의’)을 내세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번역 혹은 평역된 ‘삼국지’들은 대만 삼민서국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은 것이 대부분이다. ‘삼국연의’는 이른바 모본(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청조에 모륜, 모종강 부자가 수정한 판본)이라 불리는 ‘삼국지’로 김구용의 ‘삼국지연의’, 황병국의 ‘원본 삼국지’, 이문열 평역 ‘삼국지’, 조성기 정역 ‘삼국지’가 모두 이를 원본으로 한다.



우석대 전홍철 교수(중문학)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중국 본토 출판물의 국내 반입이 어려워 대만 판본을 원본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90년대 이후 중국 본토 삼국지가 대거 유입되면서 대만본의 오자, 탈자,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전교수는 황석영씨가 번역한 내용을 다시 원문과 대조하며 교열하고 국내외 각종 번역본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맡았다.

황석영 ‘삼국지’의 또 다른 자랑은 210수의 한시가 수록됐다는 점이다. 장회(章回)소설이라 불리는 ‘삼국지’는 미니시리즈처럼 1회분씩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연결 부분에 ‘7언2구’의 한시가 삽입돼 있다. 예를 들어 유비를 업신여기는 동탁의 태도에 화가 치민 장비가 칼을 빼 드는 장면에서 끝나는 ‘삼국지’ 첫 장 ‘도원결의’ 편 뒤에는 다음과 같은 한시가 이어진다.

‘人情 勢利古猶今 인정이 이익을 좇음은 예나 이제나 한가지/ 誰識英雄是白身 초야에 묻힌 영웅 누가 알아보리/ 安得快人如翼德 장익덕 같은 호쾌한 사람을 얻어/ 盡誅世上負心人 이 세상의 의리 없는 놈들 모두 벨 수 없을까.’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의 손에서 다듬어진 한시 번역은 황석영 ‘삼국지’의 백미다.

올 여름 ‘삼국지’ 전쟁 뜨겁다 뜨거워

황석영씨는 “역시 ‘삼국지’를 읽는 맛은 가슴이 썰렁해지도록 밀려오는, 사람의 일생이 덧없다는 회한”이라고 말한다.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황석영 ‘삼국지’ 전 10권(왼쪽). 10년 만에 대하 역사소설 ‘삼한지’를 완성한 김정산씨. 나관중의 ‘삼국지’에 필적하는 ‘삼한지’(전 10권)와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구용의 ‘삼국지연의’ 개정 신판.



올 여름 ‘삼국지’ 전쟁 뜨겁다 뜨거워

중앙 M&B

황석영씨는 기존의 번역본에 불만이 많아 직접 ‘삼국지’를 번역했노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다”는 그의 말은 조조를 난세의 영웅이요 개혁가로 부각시킨 이문열 ‘삼국지’를 겨냥한 발언이기도 하다.

창비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민음사는 “새로운 번역본의 등장으로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평소보다 20~30% 정도 주문이 늘고 있다”며 본격적인 ‘삼국지’ 경쟁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김구용 ‘삼국지’를 펴낸 솔출판사도 새롭게 형성된 ‘삼국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인이자 한학자인 김구용 선생(2001년 작고)이 74년 완역한 이 ‘삼국지’는 원문을 완역했을 뿐 아니라 ‘삼국지’의 문학적 특성을 유장한 우리말로 온전히 살려내 ‘정통 삼국지’로 인정받아왔다. 이 책은 1981년과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을 냈다.

그러나 정역을 앞세운 황석영 ‘삼국지’의 등장으로 위상이 흔들리자 솔출판사는 재빨리 김구용 ‘삼국지연의’ 개정 신판을 펴내 ‘삼국지’ 시장을 3파전으로 유도했다. 여기에 연말쯤 ‘문화일보’에 연재중인 장정일의 ‘삼국지’까지 가세하면 ‘삼국지’ 시장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처럼 치열한 ‘삼국지’ 경쟁에 대해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씨는 “다양한 판본으로 경쟁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역자의 이름값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면서 “앞으로 ‘삼국지’를 쓰고 싶다면 새로운 해석과 문체를 선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중견작가들의 잇따른 ‘삼국지’ 출간을 문학적 외도로 본다. 이씨는 “중국 고전을 유명 작가들이 풀어내는 시도가 이미 넘쳐날 정도로 많은데 패러디도 아닌 단순번역에 너도나도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번역이 아닌 창작, 나관중의 ‘삼국지’에 버금가는 ‘우리 삼국지’를 가질 수는 없을까. 최근 대하 역사소설 ‘삼한지’(중앙M&B 펴냄)를 탈고한 김정산씨는 중국의 ‘삼국지’를 읽으며 느꼈던 부러움을 털어놓는다. 한마디로 역사는 있으나 문학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그를 움직였다.

“문학적 외도 중복 번역 이제 그만”

“고작 80년에 불과한 중국의 삼국시대 이야기가 국경을 넘고 대를 이어 읽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숫자로나 역사에 남긴 발자취로나 중국 인물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 삼국시대의 영걸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움은 통탄으로 바뀌었다.” 김정산씨가 10년에 걸쳐 완성한 역사소설 ‘삼한지’는 서기 580년경부터 신라가 나당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통일을 완성한 676년까지, 100년의 격변기를 무대로 한다.

“김유신, 김춘추,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 역사인물들의 이름을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당대에 이들을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사에 기록된 사건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 정리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김씨의 말에서 그가 들인 시간과 수고가 엿보인다.

소설의 1권은 용춘(태종 무열왕의 아버지)과 망국 가야의 왕자였던 서현(김유신의 아버지)이 우정을 맹세하고, 신라 왕족 만명(진흥왕의 조카)을 연모하던 서현이 결혼에 성공해 김유신을 낳는다는 내용이다. 2권은 진평왕의 세 딸 덕만(선덕여왕), 천명(용춘의 아내), 선화(추문에 휩싸여 대궐에서 쫓겨나 마동왕자와 사랑에 빠진다)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다. 중앙M&B는 8월까지 ‘삼한지’ 10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원고지 1만2000장에 달하는 소설을 쓰면서 의기소침할 때마다 계백장군 묘를 찾았고, 소설 탈고 후에는 제일 먼저 문무왕의 무덤이 있는 대왕암을 찾았다는 김씨의 말은 그가 무(無)에서 출발한 ‘삼한지’가 탄생하기까지 힘겨운 사료와의 싸움을 벌여왔음을 느끼게 한다. 김씨는 “중국 ‘삼국지’도 수백년간 민간에 전해져온 이야기를 나관중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이니, 이런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살이 붙고 이야기가 풍성해지면 우리 역사를 담은 불후의 명작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제2, 제3의 ‘삼한지’를 기대했다. 여름 출판 시장에서 벌어질 중국 삼국지와 한국 삼한지의 맞대결 또한 자못 흥미롭다.



주간동아 393호 (p54~55)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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