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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변신’ … 입과 눈은 즐겁다

금쌀·은쌀·칼슘쌀 등 기능성 쌀 홍수 … “영양가 높다” 기대감에 비싸도 매출 쑥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쌀의 변신’ … 입과 눈은 즐겁다

‘쌀의 변신’ … 입과 눈은 즐겁다

농약을 살포하는 대신 오리를 풀어 해충을 없애는 ‘오리농법’ 등 친환경적인 쌀 생산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인영씨(38)는 매일 저녁 아이들에게 다음날 먹고 싶은 밥의 종류를 묻는다. 아이들이 고를 수 있는 것은 금밥, 초록밥, 인삼밥 중 하나. 각각 카로틴 강화쌀과 녹미, 인삼 코팅 기능성 쌀로 지은 밥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같은 쌀밥이지만 색깔과 맛, 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밥 고르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며 즐거워한다. 김씨 역시 밥 한 가지로 다양한 식단을 구성할 수 있어 여러 종류의 쌀을 갖추어놓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쌀이 변화하고 있다. ‘쌀밥’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하얀 밥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지 오래. 이제는 황금색, 형광 초록색, 빛나는 은색 등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빛깔의 쌀이 식탁에 오를 태세다. 재배 방법도 오리나 우렁이를 이용한 방식, 숯과 게르마늄을 비료로 이용하는 방식 등 다양하다.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다양한 기능성 쌀들이 개발된 덕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79kg으로 1인당 135.3kg씩을 먹었던 1970년의 절반 수준이다. 90kg이던 98년과 비교해도 12%나 감소한 수치. 이런 상황에서 쌀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특수 성분 첨가 안 해도 본래 영양분 많아

92년 쌀 품질 인증제 시행과 함께 등장한 쌀 브랜드가 10년 새 1200여종으로 늘어났을 만큼 쌀 시장의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농민들은 저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브랜드, 포장을 내세우며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 쌀 중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쌀에 부족한 물질을 표면에 코팅해 만든 기능성 쌀들. 흰쌀의 표면에 특수 재료를 코팅하기 때문에 일단 색감부터 일반 쌀과 현저히 다르다. 베타 카로틴 비타민을 쌀 표면에 코팅한 카로틴 쌀은 밝은 황금색이다. 일반 현미에 인삼 진액과 순도 99.99%의 금·은, 허브 등을 흡수시켜 만든 금쌀, 은쌀은 이름 그대로 금빛, 은빛. 몸에 좋은 매실과 복분자를 즙을 내 쌀 위에 코팅한 매실쌀, 복분자쌀도 독특한 빛깔을 낸다.

그러나 이 같은 기능성 쌀이 인기를 끄는 것은 독특한 외관보다는 성분을 첨가한 만큼 영양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흰쌀에 우유와 헤모글로빈에서 추출한 칼슘, 철분을 첨가해 코팅한 칼슘철분강화쌀은 2.4kg에 1만5000원. 일반 쌀의 3배에 이르는 가격이지만 지난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자녀의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주부들이 가격에 관계없이 이 쌀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특수 성분을 첨가하지 않은 보통 흰쌀은 80kg에 16만원 선이다.

밥 먹기 어려울 때 식사 대용으로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인삼 성분을 코팅해 만든 인삼쌀, 원적외선 음이온을 코팅 처리하고 칼슘, 올리고당, 비타민 E 등을 첨가한 기능성 쌀 등도 구취 제거와 건강 유지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에 힘입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쌀 표면에 변질방지 특수 처리를 한 쌀, 금이 가거나 부서진 쌀을 빼고 완전한 쌀로만 가공한 ‘완전미’ 등의 제품도 보통 쌀의 2~3배의 가격에 팔리며 승승장구한다. 일반 쌀보다는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다.

‘쌀의 변신’ … 입과 눈은 즐겁다

기능성 쌀 생산이 늘면서 조리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금색쌀, 은색쌀도 등장했다.

식품의 단계를 넘어서 아예 ‘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쌀도 있다. ‘알앤엘 생명과학’이 서울대와 공동연구해 개발한 ‘소당미’는 뽕잎과 구기자 등에서 뽑아낸 혈당조절 성분을 표면에 입힌 쌀로 동물실험 결과 이 쌀을 먹은 쥐의 혈당이 71%나 떨어졌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쌀은 3.2kg에 9만9000원으로, 보통 쌀의 10배가 넘는 가격에 미국으로 수출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특수 물질을 첨가한 쌀만이 쌀 소비 감소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쌀 자체의 영양이 다른 곡식에 비해 월등하므로 특수 성분을 첨가해 쌀맛을 바꾸는 것보다 원래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식품개발연구원 하태열 박사팀의 동물실험 결과에 따르면 쌀(백미와 현미)을 먹인 쥐는 밀이나 옥수수 등 다른 곡류를 먹인 쥐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았다. 일본의 영양학자 마쿠우치 히데오는 쌀밥, 국, 김치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인의 식단에 대해 “각종 성인병과 비만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자연건강식”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쌀에는 탄수화물, 단백질뿐 아니라 비타민 B, 비타민 E, 식이섬유, 인, 마그네슘 등의 무기질과 생리활성물질 옥타코사놀까지 들어 있어 완전식품에 가까운 영양의 보고라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 속에서 쌀 자체의 영양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유기농 재배 방식으로 재배된 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는 제초제를 쓰는 대신 우렁이를 방사해 잡초를 제거하고 생선아미노산과 현미식초 등을 비료로 사용해 생산한 전남 장성군의 쌀은 지난해 단일 품종으로 24억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시장개방·소비감소 장애물 뛰어넘기

‘쌀의 변신’ … 입과 눈은 즐겁다

쌀에 특수 영양물질을 첨가하거나 표면에 영양분을 코팅한 기능성 쌀 제품이 인기다.

오리를 방사해 해충을 잡아먹도록 하는 방식으로 쌀을 생산하는 무농약 유기농 ‘오리농쌀’은 전국 각지로 생산지가 확대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오리농법으로 쌀을 생산하고 있는 주형로씨는 “논에 모를 내기 전 자운영(보랏빛 꽃을 피우는 식물)을 키워 지력을 다진 후 이것들을 갈아엎어 퇴비로 이용하고 오리를 이용해 해충을 잡는 등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방법으로 쌀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반 쌀을 생산할 때보다 매출이 크게 늘었다”며 “93년 30만평의 땅에서 오리농법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오리농법 쌀을 재배하는 논이 135만평에 이른다”고 말했다. 홍성오리농법쌀연합이 지난해 이 쌀로 올린 매출은 50억원이 넘는다.

게르마늄, 녹즙, 목초액과 참숯 등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생산한 유기농 쌀들은 최근 일반 쌀의 5~6배에 이르는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농협중앙회 양곡부 양곡유통팀 박원용 과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능성 쌀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돼 벤처기업과 일반 농민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쌀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이들 중 성공을 거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쌀 소비자들 중 상당수가 ‘하얗고 쌀맛이 나는 쌀이 진짜 쌀’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쌀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쌀 자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유기농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흐름이 중심이 되고 독특한 향과 색, 맛을 가진 기능성 쌀들이 틈새를 메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우리 쌀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는 유기농법 모임 정농회의 임정희 사무국장은 “우리 쌀이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외국 쌀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우리 쌀을 지킬 수 없다”며 “기존의 ‘가마니 쌀’을 개량해 몸에 좋은 쌀, 고품질 쌀을 개발하는 현재의 노력들이 시장 개방과 소비 감소라는 장애물 앞에서 우리 쌀 시장을 살리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393호 (p36~3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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