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3

2003.07.17

대학이 시험 거부 나섰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7-09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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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이 시험 거부 나섰다?

    2003년 대교협 학문 분야 평가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세미나.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시험만 많이 본다고 성적이 오르나.” 재정지원사업 평가, 학문분야 평가, 교육개혁 평가, 지방대 육성사업 평가, 대학종합 평가…. 국내 대학들은 매년 교육인적자원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한국교육개발원, 각종 학술단체와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수십 개의 각종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간 경쟁을 촉진하고 교육과 연구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지만 평가기관의 난립과 평가 남발로 인해 ‘대학평가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반발도 크다. 올봄 건국대 오성삼 교수(한국평가학회장)는 한 신문칼럼에서 “건강검진 자주 해서 나쁠 것이야 없지만 시도 때도 없이 건강검진을 하려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전문성 없는 대학평가는 약이 아니라 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국 올해 들어 ‘평가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하반기 대교협(회장 김우식·연세대 총장)가 실시할 예정인 ‘2003년도 대학 학문 분야 평가’에 대해 각 대학 경제·물리학계가 ‘무기한 평가 연기’를 요구했다. 올 5월 대교협이 주최한 ‘2003년도 학문 분야 평가 추진 전략 과정’ 연수에서 두 학과 교수들이 연대해 ‘대학 서열화를 심화하는 상대평가’ ‘학문 분야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연구업적 평가’ 등 대교협 평가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처음에는 평가방식만 문제 삼았으나 점차 논의가 확대되면서 평가를 무기로 대학 위에 군림하는 대교협 자체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6월에는 ‘대교협 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려 대교협 성토장이 되었다. 대교협은 1992년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를 시작으로 매년 학문 분야 평가를 실시하고, 94년부터 대학종합평가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평가 거부’ 사태는 지난 10년 동안 받은 대교협 평가가 학문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 ‘평가 그 자체를 위한 평가’로 전락했다는 대학 구성원들의 불만에서 비롯됐다. 이미 지난해 수학과 평가 결과에 대해 몇몇 대학들이 이의를 제기한 바 있고 ‘특정 대학 봐주기식 평가’라든가 ‘획일적 잣대로 구색 맞추기 평가’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또 학문 분야 평가 2주기에 접어들면서 대교협측이 평가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꾸고, 평가영역 중 교수평가 비율을 지난해 20%에서 30%로 높이면서 교수의 연구업적 부담이 크게 늘어나자 불만이 폭발했다. 특히 상대평가제 도입으로 결과에 따라서는 지방 중소대학의 비인기 학과들이 구조조정 위기에 몰릴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대교협 이현청 사무총장은 “대교협의 대학평가는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개발에 참여했고,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라크 인도 몽골 태국 등에서 배워갈 만큼 널리 인정받고 있다”면서 “건강진단을 미룬다고 약해진 체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또 “그동안 평가의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이 있어 상대평가제를 도입한 만큼 의견 수렴 후 평가항목 등을 조정하겠지만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 평가 거부 사태가 벌어지면 단 1개 대학이라도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어쨌든 7월 중 세부평가 기준을 개발하려 했던 대교협의 평가 일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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