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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 변호사 겸 헌법학자 신평

“사법개혁” … 외로운 10년 투쟁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사법개혁” … 외로운 10년 투쟁

“사법개혁” … 외로운 10년 투쟁
”어이할꼬 어이할꼬, 이 많은 사법 피해자를 어이할꼬…. 변하지 않는 법조계는 또 어이할꼬.”

나긋나긋한 말씨, 어딘지 민요가락을 닮은 목소리에 ‘사법개혁’ 주장을 싣고 있는 재야 법조인이 있다. 경주 땅에 묻혀 지내 ‘농사짓는 변호사’라는 별칭을 얻은 신평 변호사(47)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뼛속까지 판사였고 그 역시 판사를 ‘천직’으로 여겼다. 성실한 성품에 집안까지 좋은 그의 인생은 누가 봐도 탄탄대로였다. 물론 1993년 여름까지의 얘기다. 현재 그는 판사가 아닌 재야 법조인일 따름이다. 만 10년간 그는 농사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고주의’에 대항하는 투사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왔다.

판사란 지극히 외로운 직업이다. 수천장에 이르는 소송자료를 밤새 읽으며 홀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문득 자신의 입만을 바라보는 두 사람, 혹은 수천명의 인생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편한 길로 가고픈 유혹에 시달린다.

판결 하나에 사건 당사자의 인생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그 누구도 판사에게 화려한 조명을 비추지는 않는다. 판사는 그저 묵묵히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새로운 피고인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상적인 얘기일 뿐이다.



“판사는 판결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판사 역시 한 사람의 직장인이고 자신의 욕망을 좇는 한 마리의 동물인 게 세상사의 섭리죠.”

93년 사법부 비판했다 법복 벗어

고인 물은 썩는 법. 위계질서를 생명으로 여기는 법관 사회의 폐쇄성은 내부비판을 원천적으로 막아왔다. 이런 경직된 대한민국 판사 사회를 바꿔보고자 했던 그는 결국 천직인 ‘판사직’을 박탈당했다. 그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조용해 보이는 신변호사는 10년 간의 판사생활을 열정으로 버텨냈다. 남들은 쉬러 가는 일본연수 기간에도 그는 오로지 공부만 했다. 그는 대개의 공무원이 싫어하는 지방 발령 또한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다며 오히려 반긴 특이한 촌사람이다. 그러나 판사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이 따랐다. 그 역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한 마리의 동물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무슨 성인 군자겠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이지요. 임용 초기 늙은 변호사가 봉투를 가져왔던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거절했지요. 당황하던 변호사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는 결국 그 봉투를 받아 들었다. 한번 받아들인 ‘관행’은 자연스럽게 습관이 됐다. 한동안 죄책감 없이 ‘떡값’을 받기 시작했다. 문화란, 환경이란 혹은 권력이란 그토록 무서운 법이다.

“한번은 때가 됐는데 봉투를 가져오지 않는 이가 있었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더군요. ‘아니, 이 자식이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데 다음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다른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 내가 왜 이럴까?’”

그때부터 그는 동료 법조인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군대 내무반보다 더한 숨막히는 위계질서와 공공연히 행해지는 접대. 권력에 줄을 댄 ‘정치판사’부터 판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특정 업체를 봐주는 ‘고문판사’까지…. 인맥과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대한민국 사법부는 정의의 편이 아닌, 사법부 자신과 권력의 편이었다. 처음부터 투사인 사람은 없는 법. 그는 자신이 법조개혁의 물꼬를 트는 자그마한 역할을 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사법개혁” … 외로운 10년 투쟁

인근 신라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오래 맡아온 신변호사를 동네 아이들은 잘 따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93년 5월27일 그리고 6월10일, 그는 사법개혁의 염원을 담은 두 편의 글을 한 언론에 기고했다. ‘법관 조직의 과도한 관료화 계급화는 사법부 만악의 근본’이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의 글이다.

이에 대법원에 계신 ‘윗분’들은 말 그대로 격노했다. 그해 8월 그는 재임용되지 못한 판사라는 ‘가시면류관’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를 분노케 한 것은 판사직 박탈뿐이 아니다. 그의 언로를 막아버린 사법부의 비민주성, 자신의 가족사와 과거의 치부를 조작하는 비열함, 서슴없이 ‘왕따’시키는 사회의 봉건성에 그는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주위의 모진 시선을 감내해가며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경주에 정착했다.

이후 국회 법사위에서는 그의 재임용 탈락을 두고 국정감사가 열렸고, 2000년에는 민주화보상 심의위원회에까지 상정되어 ‘신평 파동’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아직도 사법부의 망령은 유령처럼 엉겨 붙어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고 있다.

그는 대구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나이 많은 형들 덕에 일찍 글과 사상에 눈떠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보였으며 엘리트 코스인 경북중 경북고에서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그에게 법학이란 학문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술을 한잔 먹어야 법학책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법학을 끔찍이 싫어했지요.”

오히려 그에게는 학자가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기어이 조교생활을 해낸 특이한 사법고시생이었다. 이후 석사와 박사과정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헌법학과 명예소송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을 정도로 공부에 애착이 큰 판사였다. 결국 그는 ‘헌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신명나게 걸어온 판사의 길. 그 유명한 사시 23회,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종훈, 강신섭 변호사 등이 그와 함께 판사의 길을 걸은 동기들이다.

작년 시민단체 결성 법조계 압박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이름이다. 그는 26살 때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생을 살고 싶다는, 삶에 대한 의지의 표상인지 물어보아도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평(平). 평민처럼 평평하고 반듯하게 살고 싶어 이런 이름을 붙였지요. 그런데 성명학에 따르면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고 웃어 넘긴다.

그는 88년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에서 일을 하면서 경주와 연을 맺었다. 그는 평생 경주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별채에 ‘재경당(在慶堂)’, 경주에 살다, 혹은 즐거움이 있다는 이름을 붙인 건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멋과 풍류를 좋아하기에 이름을 올려놓은 경주 지역 학술, 문예 단체가 헤아리기 어렵다. 교수직까지 수행하느라 돈 되는 변호사 일에 전념하기가 어렵다. 헌법과 명예소송을 전공한 그에게 어울릴 만한 굵직한 사건이 없는 것도 지방에 사는 대가다. 그러나 남편과 세 아이의 아빠로서 제 역할을 하기에 더없이 행복하다. 그에게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배어 있지만 가족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물씬 풍겨난다.

그러나 지방에 있다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그는 이미 작년 ‘사법개혁국민연대’를 발족시키며, 평생 사법개혁의 외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4월에는 대구에서 사법개혁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며 법조 삼륜, 특기 사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비리 판사가 공공연히 제 욕심을 채우며 나태한 법관생활을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법개혁 위해 사법 수뇌부가 먼저 퇴진하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는 순교자의 숭고함이 배어나온다. 그러나 공격당하는 이는 묵묵부답이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된 셈이다.



“직접선거제도와 배심원제도는 민주주의의 2대 기틀이지요. 그러나 ‘무결점주의’ 신화를 신봉하는 우리 사법부는 배심원제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관징계위원회조차 없이 비리판사를 감싸주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사법부입니다.”

5월22일, 서울지방법원에서는 문흥수 판사를 비롯한 26명의 소장판사들이 사법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변화를 거부하는 서열주의와 성적에 의해 승진이 결정되는 구조를 문제삼고 나선 것. ‘신평사건’이 일어난 지 10년 만이다. 그는 용기를 낸 판사들이 너무나 고맙다.

“한 지인이 그러더군요. 가만히 있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진다고…. 양심을 지키고픈 판사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현 사법 현실은 이제 변해야 합니다. 만악의 근원인 연고주의가 사법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영원히 반쪽짜리가 될 것입니다.”



주간동아 392호 (p60~61)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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