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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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갯벌의 가치’를 알아?

동식물 등 수천개 고유종 서식 … 새만금사업도 갯벌 생태계 관점서 타당성 조사해야

  • 고철환/ 서울대 해양학과 교수 kohch@plaza.snu.ac.kr

    입력2003-07-02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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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이 ‘갯벌의 가치’를 알아?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생태환경을 가지고 있다.

    갯벌은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나는 육지와 바다 사이의 해저 바닥으로, 우리나라에는 서해에 드넓게 발달해 있다. 서해는 간만의 차가 최고 9m에 달해 갯벌이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북쪽 지역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인천에서 목포까지 수km에 이르는 대규모 갯벌이 발달한 것이 우리 서해안의 특징이다.

    물론 조차가 크다고 어디서나 갯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갯벌이 만들어지려면 우선 모래와 뻘이 있어야 하는데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한강과 금강 만경강 동진강 등은 충분한 뻘을 공급한다.

    넓은 갯벌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지형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최대 규모인 와덴해(Wadden Sea) 갯벌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갯벌의 이러한 희귀성 덕분이다.

    희귀한 지형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갯벌이라는 원시적 생존조건은 여기에 사는 생물 입장에서 보면 ‘희귀한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는 대략 46억년으로 추론되며 최초 생물이 탄생한 것을 35억년 전, 계속 진화하여 육지로까지 서식처를 넓힌 것을 고생대인 4억년 전으로 보고 있다. 이후 생물은 남·북극의 혹한지와 히말라야의 고봉, 심지어는 1만m가 넘는 심해에까지 진출해 살고 있는 것이다. 생물 종끼리의 경쟁과 진화의 결과로 이렇듯 다양한 서식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종의 입장에서 보면 종별로 고유의 서식지를 갖고 있는 셈이고 서식지 입장에서 보면 서식지별로 고유의 종을 키운 셈이다. 갯벌에 빗대어 생각한다면 ‘갯벌은 갯벌 고유종을 가지고 있고’, 갯벌이 희귀한 만큼 갯벌 고유종 역시 희귀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새만금 갯벌 람사습지로 지정 의무

    갯벌 고유종은 모래와 뻘이라는 특수성과, 밀물과 썰물에 의해 드러나고 잠기는 ‘갯벌 고유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종이다. 갯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종들, 예를 들면 농게 방게 칠게 민챙이 서해비단고둥 개맛 눈깔망둑 등이 모두 이렇게 진화한 갯벌 고유종이다. 이런 특이한 종의 수는 박테리아와 다른 동식물까지 합치면 수천에 달한다.

    갯벌과 같은 희귀 서식지의 고유종은 ‘생물 다양성 보전’이라는 목표 아래 국제적으로 잘 보호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95년에 ‘생물 다양성 협약’에 가입해 이를 현실에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학자들은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보통 유전적 다양성, 종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의 세 가지 관점에서 보전 전략을 세운다. 유전적 다양성은 하나의 종이지만 개체군별로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말하며, 종 다양성은 하나의 서식지에 사는 상이한 종을 뜻한다. 생태계 다양성은 생물군집과 이와 상호작용하는 물리·화학적 환경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해서 그 다양함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은 약간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보전 전략은 주로 서식지 보전과 생태계 보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수만 가지 종을 각각 보전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전이 시급한 멸종 위기의 종이라 하더라도 그 개체에만 보전 노력을 집중하기보다는 그 종의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정받기 시작했다.

    생태계 보전이라고 하면 먹이사슬에서의 연계성을 포함하여 생물과 생물, 생물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까지 보전한다는 개념이므로 생물종의 자연에서의 역할까지 관리하는 총체적 개념에 따른 보전이라고 하겠다.

    니들이 ‘갯벌의 가치’를 알아?

    현장조사를 하러 갯벌에 나온 부녀. 새만금 갯벌에 서식하는 농게. 백합을 잡는 지역주민.간척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자생어족 백합과 말뚝망둥어.(왼쪽부터)

    갯벌생물 중에서 철새와 같이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은 종들은 람사협약(Ramsar Convention)에 의해 그 보전 방법이 강제성을 띠고 있다. 1971년 이란의 람사에서 맺은 이 협약은 어떤 서식지가 보전할 가치가 있으며 동식물, 물새, 어류 서식지로서 중요한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이 협약에 101번째 국가로 가입해 이 기준에 해당하는 새만금 갯벌을 람사습지로 지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새만금 생태계 4만ha를 인위적으로 통째로 없앤다는 점이 가장 문제이므로 ‘희귀지형’ ‘희귀서식지’ ‘갯벌 고유종’ ‘갯벌 종 다양성’ ‘갯벌 생태계 다양성’ 등의 관점에서 간척사업이 타당한지를 조사하고 그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부유동식물, 저서생물(새우류·게류·갯가재류·갯지렁이류 등), 미생물, 어류뿐만이 아니라 최근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도요새와 물떼새 등 생태계의 구성생물종과 각 종의 생물량, 생산성, 먹이사슬 등의 특성까지를 포함한 새만금 생태계가 간척으로 통째로 없어져도 되는지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기초로 최종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갯벌의 자연가치 연구 낙후

    해양수산부는 최근 ‘새만금 해양환경 보전대책을 위한 조사연구’라는 보고서의 요약본을 인터넷(www.saeman geum.re.kr)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2002년의 현장조사 결과를 요약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새만금 주변 조하대에 출현하는 저서동물의 종수는 435종, 조간대 갯벌의 경우 204종임을 알 수 있다. 자원생물로서는 트롤망 삼중자망 낭장망 등으로 채집한 생물 115종이 보고됐고, 왕복성 어류로 kg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실뱀장어를 중요하게 다뤘다.

    위 보고서는 새만금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각 종의 생활사, 서식밀도, 분포범위와 먹이사슬에서의 역할 등을 규명하고 종간의 상호관계와 외해생태계, 하구생태계와의 연계성, 나아가서 생물자원과 인간의 관계까지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새만금 문제의 핵심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서식지 희귀성, 종 희귀성, 종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이 파괴돼버린다는 데에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조석의 변화나 오염물질의 축적, 기타 예상되는 환경변화를 염려하는 것은 결국은 종과 생태계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사였던 새만금호의 수질과 경제성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수질과 경제성 평가는 간척사업을 하기 위해 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자료의 일부일 뿐이다. 만일 수질과 경제성에 문제가 있다면 계속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갯벌의 자연가치가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셈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이미 갯벌 연구 역사가 100년이 넘으며 곳곳에 산재한 갯벌연구소에서 갯벌이라는 자연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갯벌의 가치를 발굴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알려서 갯벌 보전의 타당성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갯벌은 자연가치, 생태가치가 있으며 이를 보전하는 것이 ‘생태적’으로는 물론, ‘주민경제’라는 면에서도 장기적으로 볼 때 유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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