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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하투(夏鬪) 태풍 강타

현대차 노조 작전상 후진?

산별노조 전환 부결 ‘쇼크’ 파업 철회 … 대정부 투쟁보다 임단협에 우선순위 둘 듯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현대차 노조 작전상 후진?

현대차 노조 작전상 후진?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지난 5월2일 울산공장 본관 앞 광장에서 ‘2003 임단투 출정식’을 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가 ‘똥을 밟았다’.”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한 임원은 현대차 노조가 7월2일로 예고된 전면파업을 전격 유보하고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결렬 선언으로 중단됐던 노사협상을 조합원들의 결속력 약화 등으로 인해 7월1일 재개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노동위원회 조정까지 마친 상태에서 전면파업 돌입을 철회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현대차 노조가 파업 수위를 낮추고 교섭을 재개한 것은 올 ‘하투(夏鬪)’는 물론 향후 노동운동 전반에 영향을 미칠 일대 ‘사건’이다.

현대차 노조는 예상치 못한 노조 조합원들의 결속력 약화로 현재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이헌구 노조위원장이 호소문까지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벌였는데도 6월27일 산별노조 전환을 묻는 찬반투표에서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연초부터 각종 간담회를 열어 교육 홍보를 강화하고 산별노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산별노조 전환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현대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투표 부결은 6월24일 실시한 이 회사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찬성률이 1987년 노조 설립 이래 가장 낮은 54.81%에 그치면서 이미 예견됐다.

“왜 파업이 필요한지도 생각지 않고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지침에만 따라가느냐.” “우리 조합원들은 정치를 모른다.” 현대차 노조와 현대차 노조 판매본부 홈페이지 게시판은 현재 조합원과 네티즌들의 노조 지도부 성토 의견으로 뜨겁다. 조합원들이 현 집행부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계속돼온 ‘정치적’ 투쟁에 반감을 느꼈고, 산별노조로 전환할 경우 집행부나 상급단체의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뿐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대기업 노조로서의 실익은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린 정치 모른다” 지도부 성토



예년에 비해 시기 집중 투쟁 일정이 늦게 잡힌 게 현 집행부가 흔들리게 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노조 내 권력싸움으로 온건파뿐만 아니라 강경파로부터도 비토를 받았다는 것. 현 노조 집행부는 비교적 강성이지만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민투위) 등 노조 내 강경파 모임에 비해선 온건한 편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차기 노조 집행부를 차지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일부 조합원 집단이 현 노조를 비판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현대차에서 노조의 파업 돌입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임단협이 시작된 5월 노조의 한 관계자는 교섭 전망을 묻자, “늘 그렇듯이 파업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측 역시 “늘 그래왔듯이 10여회 교섭을 거친 뒤 파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측이건 노측이건 교섭은 ‘당연히’ 결렬할 것이고 파업 찬반투표는 ‘반드시’ 찬성 쪽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며 잔업 거부-부분파업-전면파업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이 같은 예상은 현대차 노조가 94년, 97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 동안 매년 파업투쟁을 벌여왔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그동안 ‘춘투’ ‘하투’ 등 민주노총의 시기 집중 투쟁 일정에 맞춰 이뤄져왔다. 민주노총과 재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전개됐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현대차 노조를 조종하고 민주노총을 이끄는 게 바로 현대차 노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의 계획에 우리가 맞췄다기보다는 민주노총이 현대차의 일정에 맞춰 투쟁계획을 짜왔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매년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기 집중 투쟁을 벌여왔고, 현대차 노조가 그 선봉 역할을 해온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그동안 민주노총의 첨병 역할을 하며 강성 노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대차는 생산공정의 한 부분만 멈춰도 전체 공정이 정지하는 조립생산 방식의 산업 특성상 노조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조립 공장에선 노조 대의원 대표들이 왕(王)이다. 공장이 움직이지를 않는다”고 했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도 “어셈블러 공장(조립 공장)은 파업에 대한 협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가 그동안 노조에 계속 양보를 해온 것은 파업에 견딜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고 노무관리 능력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노무관리는 노동계에서 ‘양반’으로 통한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두산 같은 꼴통에 비교하면 현대차는 파업을 많이 경험해서인지 합리적인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입장을 바꿔보면 현대차의 노무관리가 그만큼 엉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영진 역시 엔지니어 출신이 많아서인지 노무관리엔 취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정책에 대해서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뿐 현대차 나름의 노무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노조의 각 세력들간의 선명성 경쟁도 계속된 파업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현대차 노조에는 민투위를 비롯 민노투, 노연투, 실노회, 동지회, 자주회, 현장투, 현노투, 전진회 등 노조 내부 조직이 무려 10여개에 달한다. 복잡한 노동조직 간의 노노(勞勞)갈등도 심하다. 민투위가 “현 집행부가 근골격계 관련 질환 투쟁에서 회사측을 감싸고 있다”며 집행부를 공격하는 등 올해도 일부 노조 내부 조직들이 임단협 진행사항에 대한 비판에 나서며 현 집행부를 강경노선으로 몰아갔다. 서강대 남성일 교수는 “현대차 노조가 방어적 파업이 아닌 공격적 파업을 벌여온 데는 노조 세력들간의 선명성 경쟁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매년 파업을 벌여온 데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기 교수는 “크고 작은 파업에 정부가 개입해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파업이 당연시돼온 이유 중 하나”라며 “현대차의 경우 독과점기업인 데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정부가 ‘레드카드’를 꺼내지 못해 문제를 악화시켜왔다”고 말했다. 올해 현대차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 중 주 40시간 근무와 비정규직 문제 등은 정부가 나서 법적 제도적 정비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현대차를 비롯해 일부 사업장의 파업의 경우 노조가 사용자가 아니라 사실상 정부를 대화 파트너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 투표는 올 하투의 분수령 중 하나였다. 노동계는 단위노조의 산별노조 전환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앞으로의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노동계의 ‘맏형’인 현대차 노조가 산별노조 전환에 역량을 집중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들을 설득해 다시 강경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올해만큼은 민주노총 차원의 대정부 투쟁보다는 임금 인상 부분에 중점을 두고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차의 파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정비된 것은 아니다. 이헌구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산별노조는 현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지속돼야 한다”며 “투표 결과에 위축되지 않고 계속 산별 노조로의 전환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상당수 조합원들의 반발로 ‘작전상 후퇴’한 현대차 노조는 여전히 한국 노사관계를 뒤흔들 ‘휴화산’이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반발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현대차 노조가 당초 방침을 바꿔 다시 ‘전면파업’으로 힘을 보태줄 가능성도 있다.



주간동아 392호 (p32~3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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