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2003.05.29

‘양고기’는 이슬람 문화로 가는 통로

  • 김재준/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artjj@freechal.com

    입력2003-05-21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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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준 교수는 경제학 박사이면서 전문가급 미술품 수집가이고 자신의 작품만으로 전시회를 열 만큼 능력 있는 화가다. 고급문화정보 웹진 아트라이프숍 닷컴(www.artlifeshop.com)의 대표로 활동하며 예술 분야의 폭넓은 식견을 과시해온 김교수가 ‘주간동아’에 정통 요리칼럼을 쓴다. 김교수의 ‘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는 이번 호부터 격주로 연재된다.
    ‘양고기’는 이슬람 문화로 가는 통로

    프랑스 식당 ‘라브리’의 내부는 푸른 나무와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 붉은 카펫이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달’의 홀 중앙에는 장미 꽃잎을 띄운 실내분수가 있어 낭만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부드럽고 환한 색깔의 창으로 장식된 ‘달’의 내실들은 홀과 맞닿아 있다. (왼쪽부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 less in Seattle)’이라는 영화가 있다.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로 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제목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양고기를 떠올린다. ‘Sheepless in Seoul(서울의 양고기 없는 나날들)’이라는 말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s’가 여러 번 나오는 단어를 사용해 말의 리듬을 살린 영화제목처럼, 양과 서울도 ‘s’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거의 양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 영화제목을 볼 때마다 양고기를 떠올리는 배경에는 내 개인적인 경험도 한몫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내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를 양고기 요리를 먹는 자리에서 들은 탓이다.

    내 친구들은 대학교 때 첫 미팅에서 만난 후 10년이 흐른 뒤 우연히 재회했다. 남자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혼자가 된 상태였고 여자는 미혼이었다. 이 만남 후 두 사람은 또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마치 영화처럼 다시 만난다. 그때 남자가 여자에게 한 첫 마디가 “우리 결혼하자”였다.

    이 로맨틱한 이야기의 주인공 여자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나를 만나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으며 이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로맨틱한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양고기 요리를 떠올리는 이유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는 거의 언제나 요리가 함께한다. 또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각자 속한 문화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양상이 달라지듯,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상당수가 채식주의자고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철저하게 종교의식에 따라 도살된 고기만 먹는다. 유대교도들의 금기는 더 엄격하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 갑각류, 조개류, 새우나 게, 장어, 오징어, 문어 등을 먹지 않는다.

    다행히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음식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먹는 음식의 종류가 매우 제한돼 있는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외식을 할 때 한식, 중식, 일식이나 파스타 같은 기본적인 이탈리아 요리의 폭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육류의 경우 한국인들의 쇠고기 선호는 좀 유별나게 느껴질 정도다.

    사실 나는 레스토랑에서 쇠고기 요리를 주문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미각적 호기심을 불태우며 평소에 먹어보기 힘든 음식을 시켜 먹는다. 보통 주문하는 요리는 오리고기와 양고기 요리. 가끔은 사슴, 비둘기, 메추리 요리에 도전하기도 한다.

    ‘양고기’는 이슬람 문화로 가는 통로

    ‘라브리’의 별미로 꼽히는 양갈비 스테이크는 풍부한 육즙과 담백한 가니시가 자랑이다. 인도 요리 전문점 ‘달’이 자랑하는 양고기 카레 ‘사그고스트’.(왼쪽 부터)

    물론 실험적인 시도가 종종 눈물 날 만큼 고통스러운 실패를 안겨줄 때도 있다. 토끼고기를 주문했다가 이가 아플 정도로 질긴 육질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었고, 마닐라의 한 중국식당에서는 비둘기 요리를 먹으려다 마치 해부학 도감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접시 위에 올려진 비둘기의 모양새와 아주 묘한 냄새의 소스 때문에 비위가 상해 거의 먹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도전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한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라크전쟁이 온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슬람 문화에 한 걸음 다가가는 방법으로 이슬람 요리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중동지방의 대표적인 요리인 양고기를 먹을 곳이 흔치 않지만 프랑스, 인도, 중동 요리 전문식당 등에 가면 다양한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광화문 근처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은 교보빌딩 2층에 있는 양식당 ‘라브리’다.

    지난해 인테리어를 새로 한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필기체 알파벳들이다. 나는 이 레스토랑 벽에 씌어져 있는 알파벳을 볼 때마다 문자가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품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이슬람 신전의 벽을 가득 채운 ‘꼬불꼬불한’ 글자들은 또 얼마나 멋스러운가.

    ‘라브리’의 양갈비 스테이크는 매우 ‘심플’하다. 소박한 가니시와 뼈가 길쭉하게 나온 세 덩어리의 양갈비가 요리의 전부. 하지만 적당한 육질과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담백한 맛은 ‘라브리’ 양갈비 스테이크의 자랑이다.

    양고기 요리뿐 아니라 다양한 메뉴와 와인이 준비돼 있는 ‘라브리’는 도심에서 한껏 분위기를 내고 식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종로구 사간동 화랑가의 전시회를 보러 갈 때면 자주 들르는 아트선재센터 1층의 인도 레스토랑 ‘달’도 맛있는 양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양고기 카레는 커다란 소 혀같이 생긴(또는 큰 잎처럼 보이기도 하는) 빵 ‘난’과 함께 나오는데 카레를 이 빵으로 싸서 먹는다. ‘달’의 카레가 아주 맛있기 때문에 나는 보통 ‘난’으로 바닥에 남은 카레까지 깨끗이 닦아 먹는다. 양고기 구이와 양고기를 갈아서 만든 빵도 이 식당의 인기 메뉴다.

    ‘달’의 홀 중앙에는 장미 꽃잎을 띄워놓은 실내분수가 있어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라브리’와 ‘달’ 모두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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