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2003.05.29

“아픈 추억·꿈꾸는 내일 … 글로 담았어요”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5-21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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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추억·꿈꾸는 내일 … 글로 담았어요”
    평소 함박웃음을 잘 터뜨리는 낙천적인 성격의 그였지만 2002년 여름은 웃음으로 넘기기에 너무 힘겨웠다. 서리 꼬리도 떼지 못한 채 21일짜리 총리로 전락했다는 사실, 그것도 ‘부도덕’을 이유로 국회에서 총리인준안이 부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64)이 받은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처음에는 충격 때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서서히 온몸에 피멍이 들고 아파오는 것처럼 날이 갈수록 마음이 아팠어요. 부도덕이라는 단어만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죠.” 울고 싶었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사자보다 더 가슴 아파하며 청문회를 지켜본 남편 박준서 교수(연세대·신학)가 대변인 노릇을 자처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우린들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습니까. 때가 되면 하겠습니다”라며 조심스럽게 거절하던 그였다. 청문회 파동 후 처음 맞은 생일에 장 전 총장은 남편으로부터 오뚝이를 선물받았다. “근데 왜 두 개야?”라고 묻자 남편은 “당신과 나”라고 대답했다. 자신보다 더 다치고 아팠을 가족을 생각하며 그는 다시 일어섰다.

    1996년 이화여대 최초의 기혼 총장,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지명자. 화려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장 전 총장은 1년 동안 차분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장상이라는 이름에 부끄러운 일을 했던가. 기도와 명상으로 마음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니 수많은 기억들이 샘솟았다. 두 번의 계절이 바뀌고 아픈 상처들이 아물어갈 무렵 자전적 에세이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썼다가는 고치고, 지웠다가는 다시 쓰고 열 번도 넘게 손을 봤다. 그는 “글을 읽다 보면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고치게 됐다”고 회상한다. 그래서 책을 쓰는 동안 자신이 ‘삭았다’고 말한다. 삭았다는 말에서 잘 우러난 국물이 연상된다. “60년을 살아온 삶을 한약보자기에 넣고 꼭 짜면 감사라는 두 글자가 뚝뚝 떨어질 것이다. 성공했을 때 감사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실패했을 때 감사는 사람을 용기 있게 한다”는 그의 말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인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5월10일 이화여대 자매학교인 미국 셰년도어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장 전 총장은 5월23일 모교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남편 박교수와 함께 ‘자랑스러운 동창상’을 받기 위해 21일 출국할 예정이다. 자서전 출간 축하 인사를 건네자 장 전 총장의 표정이 소녀처럼 밝아진다. “제가 원래 잘 웃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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