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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 한전 구조 개혁 표류중

노대통령 “다시 토론” 발언 이후 추진력 상실 … 시장 신뢰 잃고 혈세 3217억원 날릴 판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할까 말까’ … 한전 구조 개혁 표류중

‘할까 말까’ … 한전 구조 개혁 표류중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4월28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 모습.

공기업 개혁의 핵심인 한국전력(이하 한전) 구조 개편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개혁 대상인 한전이 오히려 ‘저항’하면서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와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을 보이는 데다 노무현 대통령마저 구조 개편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치면서 추진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 구조 개편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공공부문 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

정부가 1998년 8월부터 작년 말까지 한전 구조 개편작업을 위해 쏟아 부은 혈세는 모두 1277억원. 여기에 앞으로 사용할 예산만도 1940억원이나 된다. 자문 및 연구 용역비, 전력거래소 및 발전 자회사 설립 비용, 홍보 비용 등으로 들어갔거나 들어갈 예산이다. 결국 한전 구조 개편작업의 표류는 국민 혈세 3217억원을 그냥 앉아서 날리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우려는 4월28일 한전 구조 개편과 관련한 노대통령의 발언 이후 심화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 “철도산업과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에 있어서 기존 방침대로 밀고 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토론하고 검토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한전 구조 개편 전체를 재검토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었다.

“민영화 의지 없는 것 아니냐”

당연히 노대통령의 이 발언은 ‘혼선’을 불러일으켰다. 뒤늦게 청와대 정책실 쪽에서 “철도산업의 경우 민영화하지 않고 공사화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경우 남동발전소의 발전시설 민영화는 예정대로 진행하지만 송전·배전 등 망(網·네트워크)산업은 공영 형태의 경쟁체제가 좋은지, 민영화가 좋은지 토론해서 검토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노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한전 구조 개편 ‘후퇴’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이 한전 강동석 사장도 다음 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배전부문 분할은 일단 보류한 후 전면 재검토하기로 정부 쪽과 얘기가 됐다. 발전 자회사 민영화도 억지로 하지 않겠다”고 언급, 시장의 우려를 증폭했다.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망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노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정책 자문을 맡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를 역임한 김대환 인하대 교수는 “부정적이라기보다는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한전 구조 개편에 부정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은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보좌관이 3월 초 윤진식 산자부 장관, 권기홍 노동부 장관 등 관련 부처 장관 및 청와대 보좌진이 참석한 자리에서 “구조 개편작업은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것을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 때문. 김보좌관은 그동안 한전 구조 개편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펴면서 반대해왔다.

김보좌관은 또 3월15일 열린 산자부 과장급 이상 간부 워크숍에 참석, ‘구조 개편 시기 상조론’을 언급해 산자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이에 대해 김보좌관은 “노대통령에게 소신을 밝힌 것은 노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을 뿐이고, 그 이후 노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 또 산자부 워크숍에서는 ‘나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얘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산자부 관계자들은 아무리 학자 시절의 소신을 밝힌 것이라 하더라도 적절하지 못한 언급이었다고 비판했다. 산자부 전기위원회 이승훈 위원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김보좌관을 만나 ‘한전 구조 개편 문제는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관할 분야도 아닌 만큼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달라’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할까 말까’ … 한전 구조 개혁 표류중

4월29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한전 기업설명회 장면(위).2002년 3월23일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파업중인 발전노조 노조원들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들은 “한전 구조 개편이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하고 있다. 인수위 보고와 노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를 통해 구조 개편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 이승훈 위원장은 “발전 자회사 민영화와 배전·판매 부문 분할 및 민영화 등 남은 과제 가운데 배전부문 분할은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했고, 발전 자회사와 배전부문 민영화는 최적의 민영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에도 배전·판매 부문 분할이 규정돼 있다. 전기위원회 경쟁기획과 최민구 과장은 “2000년 말 제정된 전력산업 구조 개편 촉진법에는 ‘한전을 분할한다’고만 규정돼 있지만 이 법과 동시에 개정된 전기사업법에는 ‘발전사업자’ ‘배전사업자’ ‘송전사업자’ 등에 관해 정의해놓고 있어 배전·판매 분할을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 구조 개편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정부 스스로 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승훈 위원장은 “한전은 작년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을 내는 등 2001년 4월 발전 부문 분할 이후 구조 개편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구조 개편에 후퇴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전은 작년 21조479억원의 매출을 올려 3조59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산자부의 고민은 남동발전㈜ 매각이 3월 말 잠정 중단됨으로써 구조 개편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데 있다. 남동발전 매각 중단은 포스코 등 4개 입찰 예정 업체가 응찰을 포기한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에너지회사 엔론의 회계분식 사태 등으로 시장이 급격히 침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당분간 발전회사 민영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한전의 배전부문 분할 작업도 늦어지고 있어 산자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승훈 위원장은 “4월1일부터 한전의 배전부문을 내부 사업단으로 나눠 양방향 입찰시장을 모의 운영하기로 했으나 기술적 준비 부족 등으로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발전 자회사 분할과 함께 설립한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한전의 교묘한 ‘방해’ 공작도 늦어지고 있는 한 요인”이라고 털어놓았다.

산자부 관계자들은 한전 강동석 사장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조 개편 추진이 한전 사장의 임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강사장이 이를 부정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강사장이, ‘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해 배전 분할에 반대하는 한전 관리직들과 노조를 연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한전 노조가 강사장 연임 운동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한 강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한전 비서실과 접촉했으나 강사장은 끝내 해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한전 노조측에서는 “회사측에서도 뒤늦게 구조 개편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깨닫고 인수위에 설명한 것으로 안다”면서 “회사측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노조 입장과 비슷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조합원들이 강사장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전 노조는 또 굳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친노동자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한전 노조 관계자들은 또 김태유 보좌관을 지칭한 듯 “구조 개편 찬성론자들만 포진한 김대중 정부 때와는 달리 노무현 정부에는 반대론자도 포함돼 있어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노대통령이 발언이 신중치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그렇지 않아도 한전 구조 개편작업이 김대중 정권 말기 들어 추진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노대통령이 구조 개편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바람을 빼버렸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 보듯 구조 개편작업은 정권 초기에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욱이 노대통령의 태도는 산자부까지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전 구조 개편을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 윤진식 산자부 장관도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윤장관은 사석에서 ‘민영화를 꼭 해야 되느냐’고 묻는 등 한전 구조 개편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대중 정부 당시 한전 구조 개편이 추진력을 잃은 것에는 산자부 장관의 잦은 교체도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노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참여정부의 최우선 정책 순위가 고용안정에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 한전 구조 개편 추진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것이 한전 노조 등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전 노조가 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래에셋증권 변성진 애널리스트는 “구조 개편을 하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해외투자가들에게 한국 정부 정책은 정부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384호 (p36~38)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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