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뭐, 먼지 99.97%를 걸러내?

‘공기청정기’ 입자 큰 황사에는 효과적 … 미세먼지일수록 제거효율 낮아져

  • 박미용/ 동아사이언스 기자 pmiyong@donga.com

    입력2003-04-17 15: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뭐, 먼지 99.97%를 걸러내?

    먼지의 지름이 100배 차이가 나면 무게는 100만배 차이가 난다. 눈에 보이는 거대먼지는 대개 코와 기관지에서 걸러지나 미세먼지는 인체에 치명적이다.

    황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년과 달리 4월 들어서도 황사 소식이 없어 혹시 올해는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닐까 하고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기상청 발표나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는 연례행사가 잠시 미뤄졌을 뿐이다. 황사 발원지인 중국 네이멍구 지역에 지난 겨울 많은 눈이 내려 아직 모래바람이 크게 일지 않고 있지만 눈이 녹는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예전보다 더욱 심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요즘 공기청정기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 ‘봄철 황사주의보 완벽 대비는 공기청정기로’라는 광고문구도 쉽게 눈에 띈다. 서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수도 가운데 미세먼지 오염도가 최악이라는 보도 역시 공기청정기 구매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과연 공기청정기만 있으면 황사나 미세먼지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까. 광고 속 공기청정기의 허실을 알아보자.

    공기청정기 광고에서는 ‘먼지를 99.97% 걸러낸다’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기청정기에 100%의 먼지가 들어가면 0.03%만이 통과돼 나온다는 말인데, 99%도 아니고 99.97%라고 하니 소비자들은 공기청정기가 먼지를 거의 대부분 걸러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입자 수’로 평가기준 변경 요구

    여기에서 퍼센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기청정기의 집진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질량’이다. 즉 효율이 99.97%라는 것은 100g의 먼지 중 0.03g만 공기청정기 장치를 통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0.03g이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뭐, 먼지 99.97%를 걸러내?

    황사가 시작되는 봄철이 다가오자 공기청정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먼지 입자는 평균지름이 수십㎚(1㎚=10-9m)에서 수십㎛(1㎛=10-6m)까지로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공기 중에 지름이 0.1㎛인 먼지와 지름이 10㎛인 먼지가 섞여 있다고 가정해보자. 10㎛의 먼지 입자는 0.1㎛ 먼지 입자보다 지름이 100배 크다. 따라서 부피는 지름의 세제곱이므로 100만 배 차이가 나고, 질량도 마찬가지로 100만 배나 크다. 10㎛ 먼지 입자 하나는 0.1㎛ 먼지 입자 100만 개와 질량이 같은 셈이다.

    이 경우 질량 0.03%만이 통과한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100g의 먼지 가운데 공기청정기가 걸러내지 못하는 0.03g의 대부분이 큰 먼지라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만약 미세먼지라면 그 수가 100만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큰 먼지보다 인체에 훨씬 나쁜 영향을 미친다. 거대먼지는 폐로 들어가지 않고 주로 코와 기관지에서 걸러진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기관지, 폐로 들어가 각종 호흡기질환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 암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1982∼89년까지의 조사결과 대기오염이 최악인 지역의 주민 사망률이 최저지역의 주민 사망률보다 15%나 높다.

    미세먼지는 인간이 활동함으로써 발생한다. 불을 지필 때나 자동차를 운행할 때 배출되는 먼지가 바로 그것.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할 수밖에 없다.

    뭐, 먼지 99.97%를 걸러내?

    작년 봄 한반도는 중국에서 불어온 거대한 모래바람으로 뒤덮였다.

    3월31일 환경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OECD 30개 회원국 수도 가운데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서울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이유는 다목적 경유자동차 등 경유차 운행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환경부는 밝혔다.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가 시판되면 대기오염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공기청정기의 성능 평가의 기준을 입자 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가 공기청정기가 어느 정도의 먼지까지 걸러주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판중인 공기청정기 가운데 헤파필터가 채택된 고가의 제품에서는 먼지 입자의 크기를 명시하고 있다. 헤파필터는 2차 세계대전 때 방사능 낙진을 제거하기 위해 개발됐고, 가장 청정한 환경을 요구하는 반도체 클린룸에서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헤파필터의 먼지 입자 제거효율은 0.3㎛ 크기에 대해 99.97%다. 즉 0.3㎛ 먼지 입자 1만개가 헤파필터를 통과하면 3개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공기청정기의 또 다른 비밀을 찾을 수 있다. 공기청정기의 효율을 입자의 크기와 개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소비자는 이내 0.3㎛보다 작은 먼지에는 공기청정기가 별 소용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필터 교환·청소 게을리 말아야

    먼지 입자의 크기와 제거효율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마치 흙을 파낸 구덩이 모양의 곡선이 그려진다. 즉 어느 입자 크기를 기준으로 그보다 작거나 클수록 제거효율이 높아진다. 대개 공기청정기는 0.3㎛ 크기에서 이 같은 제거효율 특성을 보인다. 즉 0.3㎛ 전후로 한 0.1∼0.5 ㎛ 크기의 먼지 입자들이 가장 걸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까닭은 대략 0.3㎛를 기준으로 입자의 운동이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질량이 클수록 물질은 운동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이 커진다. 그리고 작을수록 불규칙적으로 이동하는 브라운 운동을 한다. 공기청정기로 유입된 공기는 배출되기까지 흐름을 타게 되는데, 먼지가 이 흐름을 잘 타면 공기청정기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런데 0.3㎛보다 큰 입자는 관성 때문에 그 흐름을 타지 못하고 공기청정기의 내부 벽면에 부딪히고 만다. 0.3㎛보다 작은 먼지의 경우에는 매우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기 흐름을 벗어나 벽면에 부딪히고 만다. 0.1∼0.5㎛ 크기의 입자는 관성과 브라운 운동에 완전히 지배받지 못하는 애매한 영역에 속한다. 때문에 가장 잘 걸러지지 않는 골칫덩이가 된다.

    그렇다면 황사먼지에 대해서는 공기청정기가 얼마나 효과적일까. 황사먼지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대개 거대먼지에 속한다. 2000년 봄 서울시 대기 중 먼지 입자의 크기 분포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황사가 있을 때는 10㎛ 정도의 큰 입자의 농도가 높다. 반면 평상시에는 1㎛ 이하의 미세먼지의 농도가 가장 높다. 따라서 큰 입자가 많은 황사에는 공기청정기가 효과적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가 알아둬야 할 점은 공기청정기가 초기 성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조사에 따르면 공기청정기를 쓰면 쓸수록 먼지 제거효율이 낮아진다. 10㎛의 거대먼지의 경우에는 시간이 흘러도 초기의 제거효율과 거의 비슷하지만, 먼지 입자가 작아질수록 제거효율이 낮아지는 폭이 크다. 1㎛의 먼지가 초기에 90%가 걸러졌다면 10주 후에는 50%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 시기 이후에는 필터식의 경우 주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해주고, 전기식은 제때 내부를 청소해주지 않으면 공기청정기가 오히려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돌변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