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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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촬영명소’ 떴다 ‘로케이션 매니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4-17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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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았다 ‘촬영명소’ 떴다 ‘로케이션 매니저’

    최근 종영된 화제의 드라마 ‘올인’은 제주도 섭지코지를 올 봄 최고의 관광지로 탄생시켰다(위). ‘올인’의 배경이 된 섭지코지 성당 세트 전경.

    ”남은 건 가슴의 상처와 이 집뿐인데 그래도 괜찮니?” 인하(이병헌 분)의 질문에 수연(송혜교 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따뜻한 포옹과 키스를 주고받는 두 사람. 이들 뒤로 제주도의 푸른 초원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최종회 시청률 49.1%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린 드라마 ‘올인’의 마지막 장면이다.

    도박이라는 소재와 6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이병헌·송혜교 등 호화 캐스팅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뿌렸던 ‘올인’은 드라마 시작 후에는 아름다운 배경으로 관심을 모았다.

    푸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초원과 해안선 위로 실루엣을 드러낸 갯바위, 붉은 화산재로 뒤덮인 해안선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과연 누가 저렇게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냈을까” 궁금해했을 것이다.

    올 봄 최고의 관광지로 떠오른 제주도 섭지코지를 찾아낸 이는 바로 올인의 로케이션 매니저 이운수씨(46). 그는 ‘그대 그리고 나’로 경북 영덕 관광 붐을 일으켰던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로케이션 매니저’가 신종 인기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로케이션 매니저는 드라마, CF, 영화 등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섭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촬영장소를 찾아낼 뿐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까지 결정짓는 ‘배경 스타일리스트’를 뜻한다.



    올인의 섭지코지 관광객 발길 쇄도

    찾았다 ‘촬영명소’ 떴다 ‘로케이션 매니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헌팅맨’ 등으로 불리며 전문가로 대접받지 못했던 게 사실. 하지만 정동진의 ‘고현정 소나무’를 탄생시킨 ‘모래시계’에 이어 ‘그대 그리고 나’, ‘겨울 연가’ 등 인기 드라마의 배경이 선풍적 관심을 모으면서 로케이션 매니저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본 시놉시스가 나오는 때부터 감독, 작가 등과 함께 드라마의 방향을 논의하는 절대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때로는 로케이션 매니저의 의견이 드라마 전체의 설정을 바꿔버리기까지 할 정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남자 주인공 준서(송승헌 분)가 화가로 그려진 것도 로케이션 매니저 옥성일씨의 눈썰미 덕분이었다. 원래 대본에 정해져 있던 준서의 직업은 의사. 그러나 드라마 배경을 찾기 위해 강원도를 돌아다니던 옥씨의 눈에 그림 같은 폐교가 들어왔고, 화구가 가득 쌓여 있던 이 폐교에서 ‘필’을 받은 옥씨와 윤석호 PD는 준서에게 메스 대신 붓을 잡게 한 것이다. 이들의 선택은 옳았다. 드라마는 대성공을 거뒀고 드라마 속에서 준서의 작업실로 등장한 강원도 양양군의 이 폐교는 종영 후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사실 로케이션 매니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이처럼 드라마 속 배경이 인기 관광상품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드라마 ‘왕건’이 성공한 후 문경의 관광수입이 설악산보다도 많아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드라마 촬영지는 관광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 지역이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선택되도록 하기 위해 로케이션 매니저들에게 최고의 협조를 약속하기도 한다.

    찾았다 ‘촬영명소’ 떴다 ‘로케이션 매니저’
    최근 하루 2000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올인의 배경지 섭지코지도 제주도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드라마 촬영지로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촬영 전 제작진이 염두에 두었던 곳은 우도였지만 제주도가 세트 건설 등 전폭적 지원을 약속해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로케이션 매니저가 아름다운 장소를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인정도 받는 쉽고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02년 1월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로케이션 매니저 유영집씨(38)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준상(배용준 분)과 유진(최지우 분)의 ‘꿈의 집’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고 말했다.

    “유진이 머릿속으로 꿈꾸는, 현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집을 찾아야 했거든요. 오래 헤맨 끝에 거제도 옆 외도라는 개인 소유 섬에 집주인이 수십년간 가꿔온 환상의 저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촬영을 달가워하지 않는 주인을 삼고초려 끝에 설득해 방영했는데 드라마 방송 후 많은 분들이 정말 아름답다며 감탄했죠.”

    작품별 계약제 … 국내 30여명 활동

    김해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다시 배로 30분이나 들어가야 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의 이 저택은 방송 후 대만, 홍콩에서까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올인’의 후반기 장소 섭외를 맡았던 남경우씨(36)의 고생담도 만만치 않다. 그는 어려웠던 점을 묻자 대뜸 “제주도 전체에 포장마차가 몇 개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가 확신하는 정답은 서귀포항에 딱 하나 있다는 것. 남씨는 “포장마차 신 하나를 찍기 위해 제주도 전체를 헤맸다”며 “결국 트럭 포장마차를 발견해 제주도의 정반대 방향에 있는 촬영지까지 끌고 가니 어느새 오전 1시였다”고 말했다.

    찾았다 ‘촬영명소’ 떴다 ‘로케이션 매니저’

    ‘겨울연가’의 배경이 된 남이섬 유원지는 드라마 방영 이후 관광객이 10배 이상 늘었다(위).‘겨울연가’의 로케이션 매니저 유영집씨(아래).

    이들 외에도 로케이션 매니저들에게는 대저택을 섭외하기 위해 몇 주일 동안 집주인과 초인종을 통해서만 대화했던 일, 촬영 전날까지만 해도 협조를 약속했던 호텔 대표가 촬영 당일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안 되겠다고 통보해 당황했던 일 등 많은 뒷얘기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임금과 불규칙한 생활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문 로케이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30명 정도. 이들은 모두 철저히 작품 단위로 계약을 맺는 계약직이다. ‘잘나가는’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괜찮은 보수를 보장받고 작품 요청도 끊이지 않지만 아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신참들은 기본생활조차 어렵다.

    작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쉴 수 없는 것도 힘든 점이다. 차를 몰고 거리를 지나다가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내려 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장소 파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운수씨는 “로케이션 매니저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이씨는 “나는 작품을 맡으면 심야에 기차를 타 혼자 대본을 읽으며 주인공과 교감하려고 애쓴다. 날이 밝은 후부터는 내가 바로 그 인물이 되어 살아 숨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열정과 성실성 없이 ‘멋있어 보인다’는 마음만으로 뛰어든 이들은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배경이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때 보람을 느낀다. 바로 이 기쁨을 위해 그들은 오늘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환상의 장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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