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2003.04.24

부실 … 인수설 … SK ‘시련의 계절’

SK㈜ 경영권 방어 가능 일단 한숨 … SK글로벌 부실 심각 갈수록 사태 악화

  • 김두영/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nirvanal@donga.com

    입력2003-04-17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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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 … 인수설 … SK ‘시련의 계절’

    2월17일 검찰수사관들이 SK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회계장부 등 압수물품을 승합차량에 싣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룹의 주력이자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SK㈜가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에 처한 데다 SK글로벌 사태도 갈수록 꼬이고 있기 때문. SK글로벌의 부실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해 SK그룹 내부에서도 SK글로벌을 더 이상 지원하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SK글로벌의 자력갱생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SK그룹에 대한 큰 위협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능력 없는 경영진을 퇴출시키는 의미에서의 적대적 M&A는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지 오래다(물론 최근 들어 적대적 M&A 시도에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SK㈜의 1대 주주로 부상한 크레스트시큐러티스(이하 크레스트)는 현재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고 장기 투자자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크레스트 “장기 투자자일 뿐”

    SK㈜ 내부에서는 크레스트측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 오히려 회사로서는 더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SK㈜ 관계자는 “SK㈜는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다른 계열사에 지원을 많이 해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지원하기 힘든 상황인데, 1대 주주로 떠오른 크레스트측이 부실 계열사 지원을 막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 크레스트측은 투자수익 제고 차원에서 SK㈜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것으로 관측된다. 크레스트를 움직이는 소버린 자산운용 관계자들은 SK㈜ 임원을 만나 “대주주로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경영감시인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 이는 SK㈜가 손해를 봐가며 계열사를 돕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마디로 계열사와의 거래 및 출자 관계 등을 모두 정리하고 고유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SK㈜측도 이미 SK글로벌을 지원해달라는 그룹측의 요구를 거부한 상태. 이 때문에 SK㈜ 황두열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을 대리해 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손길승 회장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4월8일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끝난 후 황부회장은 손회장에게 “어려움을 빨리 극복해야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 없다”며 그룹측의 지원 요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측은 SK㈜측에 SK글로벌 증자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1조원 정도 지원해주고, SK글로벌에 공급하는 석유 한 달치분(1조원 상당)을 외상으로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황부회장은 “SK글로벌에 대한 외상매출금이 1조2000억원 정도 깔려 있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은 어렵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측의 이런 요구가 알려지자 SK㈜ 내부는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도대체 SK㈜ 기업가치가 3조원대인 게 말이 되느냐. 앞으로 100조원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해온 최회장 자신이 정작 SK㈜ 기업가치를 갉아먹은 사람으로 드러났는데, 또다시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달라는 것은 너무 몰염치한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채권단 주변에서는 “SK㈜측의 이런 분위기 때문에 SK글로벌은 법정관리 또는 파산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회장은 그룹 지배권을 완전히 잃게 된다. SK글로벌 채권단으로선 최회장이 채권단에 맡겨놓은 계열사 지분을 처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최회장은 SK그룹을 지배할 현실적인 수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회장은 채권단에 SK글로벌을 위해 2조원대를 입보한 상황이어서 경우에 따라 최회장은 ‘알거지’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SK글로벌 사태는 노무현 정권의 재벌개혁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잣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 SK글로벌을 살리기 위해 다른 계열사를 동원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된 재벌개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우량 재벌 계열사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에도 맞지 않고 최회장의 경영권을 유지해주기 위해 우량 계열사를 희생시킨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는 최회장 개인에게는 ‘위협’이지만 SK㈜라는 회사 차원에서는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다. 크레스트측이 SK㈜ 경영에 참여, SK㈜가 다른 부실 계열사를 더 이상 지원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뜻을 피력한 상황이기 때문에 SK㈜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크레스트를 방패막이 삼아 그룹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면 최회장 입장에서 크레스트의 SK㈜ 경영권 참여는 최대의 위협이다. 자신의 경영권 유지에 필수적인 SK글로벌 자력갱생이 물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최회장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외국회사의 적대적 M&A 시도는 국내의 ‘국수주의적인’ 정서를 자극, 외국에 국내 재벌을 뺏기기보다는 최회장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SK㈜는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글로벌 지분을 38.68%나 보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SK텔레콤 지분 20.85%, SKC 지분 47.66%, SK해운 지분 47.81%, SK제약 지분 20% 등을 각각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SK텔레콤이다. SK㈜를 인수하면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사이자 매년 1조~2조원의 이익을 내는 ‘알짜배기’ 회사를 가질 수 있다.

    SK㈜의 작년 말 기준 장부상 주당가치는 약 4만2000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이 회사를 청산해도 주주들은 장부상으로는 4만2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실제 가치는 장부상 가치와 다를 수 있지만 기업가치가 실제에 비해 저평가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증권가에서도 이번에 SK글로벌 부실에 따른 손실을 감안해도 3만5000원은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크레스트측은 SK㈜가 부실 계열사 지원을 끊고 고유사업에만 몰두하면 SK㈜ 주가는 자연히 오르게 되고 이 경우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SK㈜는 경영권 방어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유권해석으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게 됐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공정위 이동규 독점국장은 4월13일 기자들에게 “최근 SK㈜의 외국 동일인(크레스트) 지분이 12.39%가 되면서 이 회사가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분류돼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예외 조항을 적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상황 바꾼 공정위 유권해석

    현행 공정거래법 제10조 1항은 순자산의 25% 이상을 타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출자총액 제한 대상 기업(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소속)이라도 외국인 투자 기업의 경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현재 최회장 등 특수 관계인과 SK그룹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SK㈜ 지분은 23.87%. 그러나 자사주 10.41%는 의결권이 없고 SK C&C의 지분 등 7.6%는 출자총액 제한으로 의결권이 제한돼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공정위의 유권해석으로 상황이 바뀐 것. SK측은 “의결권 제한이 풀려 13.46%인 특수 관계인과 계열사 지분의 권한을 모두 행사하고 여기에 임직원이 보유한 우리사주 4% 가량을 더하면 의결권이 있는 지분이 17%가 넘어 크레스트측이 적대적 M&A를 시도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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